2019년 출시되어 널리 호평받은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 도시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추적하며 여러 인물과 대화를 통해 특정한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는 주제의 게임으로 한국에서도 공식 번역이 제공되기 이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메타크리틱에서 97점을 기록했고, BAFTA와 DICE 어워드, 더게임어워드 등에서 상을 받았다.
개발사 자움(ZA/UM)은 <디스코 엘리시움>의 흥행에 힙입어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경영진이 회사 지분 다수를 투자 전문회사에 내놓는 결정을 한 이래로 사내 개발 그룹과 사업 그룹의 갈등이 비화됐다. 결국 2024년 2월 정리해고가 발표되면서 프로젝트 대부분이 공중분해됐고, 거의 모든 개발자들이 회사를 나간 사실이 알려졌다. 자움은 그렇게 공중분해됐다.
최근, 자움을 나갔던 사람들이 도발적인 선언문과 함께 새 게임 스튜디오 서머 이터널(Summer Eternal)을 설립했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작가였던 아르고 툴릭, 도라 클린지치, 올라 모스크비나 등이 참가 중이다. 이곳은 "크라우드 펀딩 아티스트 콜렉티브"로 "예술적 동기를 바탕으로 하는 창의적인 집단"이며 사업가가 아니라 "노동자와 플레이어가 소유'하는 형태의 그룹이다.
서머 이터널은 도발적인 선언문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창립과 함께 밝힌 글은"우리 예술은 산업으로 변장했고, 이 산업은 부패한 경영진에 의해 끝없는 욕망 속에서 인간의 연료를 태우면서 저속한 폭리를 취하고 있다"라는 경고로 시작한다. 이어서 "펜대 굴리는 사람(pencil-pushers의 의역)이나 사채업자들이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열정으로 진실된 예술 형식을 만드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어서 서머 이터널은 "크리에이터이자 게임 제작자로서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미래의 확정적인 예술 형식(게임)에 봉사하는 예술가로 정의할 권리에서 벗어났다"며 게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상기시켜려는 열망을 전하고, 소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빠르게 부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게임 크리에이터의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서머 이터널은 "비참하고 멋진 이 세상에 필적할 만한 복잡성과 야망을 가진 RPG를 만들 것"이라는 포부를 전했다. 서머 이터널은 곧 펀딩 캠페인을 시작할 계획이며, 참가자는 게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공개된 개발자일지는 더 도발적이다. 작가 도라 클린지치는 "아티스트의 위험과 저항을 감수할 때까지 게임은 (예술이 아니라) 냉소적인 소비자 (착취) 도구"라고 밝혔다. 이어서 "자본가가 설계하고, 소외된 인간이 만드는 게임은 플레이어 여러분의 시간, 흥미, 그리고 자본을 가난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현대 기업의 비디오게임은 노동자의 시간을 VC의 돈으로 전환하는 장치일 뿐"이라며 "스트리밍 서비스, 지루한 속편, 리메이크의 터무니없는 재활용은 문화의 공동묘지를 만들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무능, 과대망상적 야망, 망상적 기대, 또는 배신 등등의 이유로 실패할 수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실패의 원인은 탐욕 때문이 아닐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한편, 현재 자움 출신의 개발자들이 설립한 새 게임 스튜디오는 서머 이터널을 포함해 총 3곳이다. 다른 일군의 자움 출신 개발자들은 새 스튜디오 다크 매스 게임즈(Dark Math Games)를 설립하고 새 추리 RPG <XXX NIGHTSHIFT>를 발표했다. UI/UX에서 <디스코 엘리시움>과의 유사성이 다소 확인된다. 같은 날 발표된 새 스튜디오 롱듀(Longdue)는 최소 12명의 자움 출신 개발진이 재직 중인 스튜디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