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됐다. AI 규제 철폐, 무역 전쟁 선포, 정부효율부(DOGE)의 창설 등 테크 업계 전반에 강력한 변화를 불러올 행보를 빠르게 밟아나가고 있는 만큼 그 직간접적 영향권에 놓인 게임계의 시선도 워싱턴을 향한다.
이른바 ‘트럼프 2.0’ 정부가 미국(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 게임계에 가져올 변화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했거나 이미 시작한 정책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들을 살펴봤다.
(출처: 픽사베이)
미국 주도의 AI 질서를 강화하고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공고화할 목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기업들의 AI 개발 규제 철폐에 나섰다.
바이든 정부의 ‘AI 행정명령’ 아래 미국 AI 기업들은 국가 안보, 경제, 보건 및 공공 안전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 AI 기술의 경우 대중에 발표하기 이전에 안전 점검 내용을 연방 정부에 보고해야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해당 행정명령을 취소함에 따라 보고 의무는 사라졌다.
AI 행정명령의 실질적 이행을 위해 관료적으로 마련됐던 제도 및 직급의 향방은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로 ‘AI관련 미국 리더십에 대한 장애물 제거’ 행정명령에 서명함에 따라 전방위적 철폐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행정명령에는 “미국의 정책은 인류 번영, 경제적 경쟁력, 국가안보 촉진을 위해 미국의 AI 지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적혔다. 각급 당국자들은 행정명령에 따라 180일 이내 행동 계획을 수립, AI 기술 개발 및 활용 제약을 완화할 전망이다.
바이든 전 대통령도 미국의 AI 역량 강화와 중국 AI 기술 견제 기조를 분명히 했었다. 그러나 바이든이 ‘책임감 있는 개발’을 강조하며 AI 개발에 부수하는 여러 위험성을 억제하고자 했던 것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급진 좌파적 발상’으로 규정해 배척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억제하려고 했던 AI의 ‘위험성’에는 AI에 의한 노동자 권리 침해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AI 활용 정책 및 시스템을 투명하게 밝히고, 각 기업의 AI가 노동자 권익을 강화, 보호하는 방향으로 설계, 개발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AI의 일자리 위협은 게임업계에서 점점 더 부각되고 있는 문제다. GDC(게임개발자콘퍼런스)가 최근 발표한 업계 설문에 따르면 글로벌 개발자의 30%는 생성형 AI가 게임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하면서, 지식재산권(IP) 침해, 에너지 소비 증가, 품질 저하 등 문제를 짚었다. 구체적인 답변에서 개발자들은 AI가 종사자들의 생산성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하며, 일자리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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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의한 안보 위협을 근거로 바이든 정부가 통과시킨 ‘틱톡 금지’ 법안이 트럼프 취임 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함에 따라 업계의 관심도 쏠리고 있다.
틱톡 금지는 현지 게임 산업에도 어느 방향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되었던 바 있다. 틱톡은 미국 ‘잘파’ 세대의 스크린 타임(하루 중 전자기기의 스크린을 보면서 보내는 시간)을 장악하며 게임 매체와 직접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게임 기업들의 마케팅 수단으로도 적극 활용되어 왔다.
바이든 정권 당시 미국 상·하원은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가 틱톡을 매각하지 않을 경우, 틱톡의 미국 내 운영을 금지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바이든 전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함에 따라 매각 마감일은 지난 1월 19일로 정해졌던 바 있다.
이에 실제로 19일 틱톡의 미국 내 앱 다운로드 및 운영은 일시 중단되었다. 마감이 다가옴에 따라 바이트댄스가 법안 시행 전 자발적으로 앱 운영을 중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와중에 바이트댄스의 자회사 뉴버스가 퍼블리싱하는 <마블 스냅>의 미국 내 플레이가 중단되기도 했다. <마블 스냅>은 <하스 스톤> 개발자 출신 벤 브로드가 설립한 미국 회사 ‘세컨드 디너’에서 개발했다. 세컨드 디너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도 모르게 진행된 일”이라고 밝혀 이것이 바이트댄스의 일방적 결정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취임 후 행정명령을 통해 해당 법안의 시행을 연기하고 틱톡을 합작법인으로 전환하면서 미국이 50%의 소유권을 가져가길 원한다고 밝혔다. 이에 바이트댄스도 협상 테이블에 오르면서 틱톡의 미국 내 운영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상태다.
26일 트럼프 대통령은 다수의 기업과 틱톡 구매를 두고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실현될 경우 바이든 및 트럼프 정부가 공통으로 문제 삼고 있는 바이트댄스의 이용자 정보 부정 수집 및 전송 가능성을 미국 기업 측에서 감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양측 논의 덕분에 틱톡과 함께 미국 내 운영이 중단되었던 <마블 스냅> 역시 48시간의 중단 끝에 현지 서비스를 재개했다. 다만 모바일 환경에서의 다운로드와 인앱 결제는 아직 막혀 있는 상태로 전해진다. 벤 브로드는 이번 위기가 재현되는 일을 막기 위해 미국 내 서비스를 책임질 별도 퍼블리셔를 물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對)중국 강경 기조를 전방위로 노골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틱톡에 반감을 드러내 왔던 트럼프가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은 이목을 끈다. 이를 두고 트럼프가 대선 캠페인에서 틱톡을 활용하면서 틱톡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바꿨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미국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고 있는 틱톡을 금지하는 데 따른 부담감 때문으로도 해석된다.
리나 칸 위원장의 지휘 아래 빅테크들의 독점 규제 및 인수합병 저지에 앞장섰던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리나 칸은 퇴임을 한 달 앞둔 상태다. 칸은 ‘소비자 후생’을 기준으로 기업들의 독과점 행위를 규제하던 기존 관행에 변화를 주면서 거대 기업 규제에 집중했던 인물이다.
원래 미국의 전통적 독과점 규제는 기업의 ‘손실 회복’(recoupment) 행위를 감시하는 방식이다. 손실 회복이란 거대 기업이 파격적 가격으로 시장 경쟁자들을 몰아낸 뒤, 내렸던 가격을 다시 인상해 입었던 손해를 충당하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들은 일시적으로는 인하된 가격을 누리지만, 장기적으로는 단일 기업이 지배한 시장에서 낮아진 품질의 서비스/제품을 더 높은 가격으로 구매해야 한다. 결국 소비자 후생이 악화하는 셈.
칸은 아마존 등 거대 기업들의 경우 이런 규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방식으로 독점을 시도할 수 있다고 봤다. 다양한 산업에 걸쳐 지배적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기에, 한 시장에서 경쟁자를 몰아낼 때 발생한 비용을 다른 시장에서 충당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하면 해당 시장에서는 소비자 후생 저하가 두드러지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 따라 칸은 기업들의 플랫폼 소유 및 합병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왔다.
한편 새로 위원장 자리에 임명된 현 FTC 위원 앤드루 퍼거슨, 그리고 FTC와 함께 반독점법을 관할하는 미 법무부(DOJ)의 반독점 국장 게일 슬레이터는 전통적인 소비자 후생 중심의 규제 방식에 호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새로운 행정부가 기업 간 합병 및 인수 시도에 조금 더 우호적일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러나 빅테크 규제의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J.D. 밴스 부통령 역시 리나 칸을 우호적으로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도 빅테크의 반독점 규제 필요성 목소리가 큰 상태이기 때문. 따라서 새 정부 아래 거대 기업들의 게임사 인수 노력은 (만약 시도된다면)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벽에 부딪힐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 미국 대선은 현지 가상화폐 기업들에도 큰 승리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은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1억 3,000만 원의 정치자금을 투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공화당이 민주당의 가상화폐 관련 규제 완화를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내세운 결과다.
바이든 정부가 임명한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개리 겐슬러는 가상화폐 시장을 “사기와 파산, 돈세탁으로 가득한 곳”이라고 평가하면서 강경하게 규제해 왔다. 그를 사임시키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온 트럼프의 압박에 따라 겐슬러는 최근 공식 사임했다.
취임 후 트럼프는 빠르게 친가상화폐 행보를 밟는 중이다. 23일에는 대통령 경제위원회 직속으로 가상화폐 관련 정책을 검토하는 실무그룹을 신설하고 이전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 행정명령을 취소하는 내용의 새로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실무그룹은 6개월 이내 가상화폐 입법 제안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그룹은 이 보고서에서 기존 규제의 완화 및 철폐와 국가 차원의 가상화폐 비축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23일에는 SEC가 금융기관이 고객을 위해 보유한 가상화폐를 대차대조표에 ‘부채’로 반영하도록 하는 ‘SAB 121’ 지침을 철회했다. 이에 따라 은행이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보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가상화폐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예고되는 시기에 맞물려, 국내 게임사들이 NFT 도입 게임을 출시하고 있는 상황에도 눈길이 간다. 위메이드, 넥슨, 넷마블은 각각 NFT 게임 출시 계획을 밝혔다. 장현국 전 위메이드 대표를 영입한 액션스퀘어 역시 사명을 ‘넥써쓰’로 변경하는 한편 웹3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