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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여성을 겨냥한 1인 게임’ 팩맨의 탄생 비화

이와타니 토루 ‘팩맨’ 원작자의 GDC 2011 강연

정우철(음마교주) 2011-03-03 20:37:47

1980년 일본에서 론칭돼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게임 <팩맨>.

 

<팩맨>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에서는 1983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시청률 56%를 기록한 경이적인 게임이기도 하다. 2005년에는 가장 성공한 아케이드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기도 했다.

 

성공한 게임을 만드는 것은 모든 개발자들의 희망. 그리고 게임 개발자들이 모이는 GDC 2011 현장에는 <팩맨>의 팬들도 상당수 있다. 그들은 <팩맨> 원작자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팩맨>의 아버지인 이와타니 토루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샌프란시스코(미국)=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 여성을 게임으로 유혹하려고 만든 <팩맨>

 

여성들을 게임으로 유혹하기 위해 <팩맨>을 만들었습니다.

 

원작자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들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1980년대 당시 게임은 집이 아닌 오락실에서 즐기던 놀이였다. 그리고 오락실은 일본에서조차 여성들에게는 지저분한 장소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이와타니 토루는 여성을 오락실로 끌어들이면 지저분한 이미지가 깨끗하고 밝은 이미지로 인식될 수도 있다는 심정에서 개발 콘셉트를 잡았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도 간단했다.

 

 

 

여자들은 남자나 패션에 대한 관심이 클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자신의 아내의 경우 디저트, 즉 먹는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는 것이다. 게임명인 <팩맨>도 일본어로 먹는 행위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파쿠파쿠’라는 의성에서 따왔다.

 

이런 이유에서 무엇인가를 먹는 게임인 <팩맨>의 콘셉트가 결정됐다. 그리고 콘셉트에 따라서 여성들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최대한 간단한 게임으로 디자인했다.

 

<팩맨>의 콘셉트는 단순함을 유지할 것, 적으로 나오는 유령도 캐릭터성을 가질 것, 예쁜 색상을 사용하고 귀여워야 한다고 정해졌다. 특히 단순함의 유지를 통해 <팩맨>은 버튼 없이 조이스틱만으로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으로 개발됐다.

 

 

 

■ 단순함 속에 필요한 알고리즘

 

하지만 단순하기만 해서는 재미를 느낄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재미를 위한 알고리즘의 추가였다. <팩맨>의 알고리즘은 적으로 등장하는 유령에게 적용돼 있다.

 

같은 모양을 한 유령이지만 색상에 따라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이며 팩맨을 추적하는 것이다. 빨간색은 직접 따라가고, 분홍색은 게임을 시작하면 팩맨의 입으로부터 32픽셀 앞에 위치하며, 파란색은 팩맨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주홍색은 랜덤하게 움직이는 패턴을 적용했다.

 

 

 

각 캐릭터의 속도 역시 철저히 계산됐다.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유령이 따라붙고, 이때 큰 콩을 먹으면 입장이 바뀌는 순간을 <팩맨>에서 가장 스릴 넘치는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 조건은 모두 속도와 레벨에 따라 다양하게 조정될 수 있도록 거의 모든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적용했다.

 

유령의 위치와 행동 패턴은 모두 철저하게 계산된 결과였다.

 

 

재미있는 것은 1980년대에는 이런 알고리즘을 분석하는 전산 시스템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알고리즘은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고 손으로 기록했다. <팩맨> 역시 개발노트에 모든 알고리즘은 물론 미로까지 기록돼 있다.

 

심지어 팩맨이 사라질 때의 애니메이션도 모눈종이에 그려서 게임에 적용했다.

 

GDC 2011 강연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 <팩맨> 개발노트.

 

 

■ 높은 난이도가 재미를 보장하지 않는다

 

미로의 구성도 철저한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그리고 간단하다좌우를 대칭으로 만들고 우회할 수 있는 통로를 설치했다. 위기의 순간에는 커다란 콩을 먹을 수 있도록 배치했다.

 

이는 게임의 난이도가 너무 어려워서는 안 된다는 이와타니 토루의 생각 때문이다. 심지어 팩맨을 쫓아오는 유령도 가끔 쉰다. 네 마리의 유령이 팩맨을 포위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와타니 토루는 게임이 너무 어려워서는 재미를 느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코어 게이머들이 도전을 원한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도전이 재미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아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는 것이다.

 

좋은 게임 디자인은 한번 정도 훑어보기만 해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유저가 알아야 한다. 누구나 머릿속으로 뭘 해야 할지 계산하지 않고도 조작만으로 플레이할 수 있으면 좋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정 이상의 지능을 가진 원숭이도 무리 없이 <팩맨>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 NHK 방송과 여러 다큐멘터리 등의 실험으로 증명됐다.

 

 

 

이와타니 토루는 <팩맨>은 매우 심플하다. 그리고 플레이하는 유저의 기분을 생각했다. 유저가 싫어할 만한 것은 제외하면서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두근두근한 긴장감보다 클리어하지 못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심플함은 알고리즘이나 게임성만이 아니다. 참고로 <팩맨>의 개발은 그가 혼자서 진행했다. 그래픽, 프로그램, 사운드 등의 데이터를 모두 작업한 결과물은 당시 PC 성능을 감안해도 작은 용량인 24kb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