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대학교 김대홍 교수는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 2011에서 ‘게임의 미학: 자유와 통제, 몰입과 중독의 밸런싱’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게임’이란 결국 개발자가 플레이어를 간접적으로 제어·통제하는 콘텐츠이며, 자유와 통제를 적절하게 밸런싱했을 때 플레이어에게 최고의 재미를 선사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게임의 몰입과 중독 역시 적절하게 밸런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정리해 봤다. /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 게임은 개발자의 통제 속에서 자유를 느낄 때 최고의 재미를 준다
우리들의 주변에는 온라인 게임을 비롯해 TV 버라이어티 쇼, 영화, 연극 등 몰입과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게임’이 유독 돋보이는 것은, 다른 문화 콘텐츠와 다르게 즐기는 플레이어들이 직접 이야기 속에 참여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TV와 영화에 있어 사용자는 그저 ‘시청자’일 뿐이다.
하지만 게임은 플레이어가 게임 속 세상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특징이 있기에 다른 문화 콘텐츠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과 재미를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만약 게임 개발자가 플레이어의 행동을 무작정 제어하려고 든다면 큰 반발만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개발자가 플레이어를 방임한다면 그들은 자신이 게임 속 세계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되고, 곧 질려서 빠져나가게 된다. 따라서 개발자들은 항상 게임 속 ‘자유’와 ‘통제’를 적절하게 밸런싱할 필요가 있다.
■ 인터랙션을 통한 플레이어 콘트롤 방법
개발자들은 이른바 ‘인터랙션’(Interaction, 상호 작용)을 통해 플레이어를 간접적으로 제어하게 된다. 그렇다면 개발자가 활용할 수 있는 인터랙션은 무엇이 있을까?
ㄱ. 제한 - 한 가지 예로 ‘원하는 색깔을 골라라’라고 플레이어에게 퀘스트를 준다고 해 보자. 여기서 답변을 주관식으로 받는다면, 플레이어는 자유도를 느끼게 되지만, 반대로 개발자들은 플레이어의 답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만약 ‘(1) 빨강 (2) 파랑 (3) 녹색’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이번에도 플레이어들은 자유도를 느끼게 될 것이다. 어쨌든 선택권은 플레이어에게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전자에 비해 훨씬 더 수월하게 플레이어를 콘트롤할 수 있게 된다.
ㄴ. 목표 - 이번에도 한 가지 예로, 플레이어 앞에 2개의 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왼쪽 문에는 ‘보석’, 오른쪽 문에는 ‘바나나’가 놓여 있다. 그렇다면 이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플레이어를 바나나가 있는 문으로 유도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플레이어에게 ‘바나나를 찾아라’는 목표를 주면 된다.
ㄷ. 인터페이스 - 기타를 소재로 하는 리듬게임이 있다고 해 보자. 그런데 만약 이 게임을 즐기는 콘트롤러가 일반적인 게임패드 하나뿐이라면, 플레이어는 게임을 즐기는 데 망설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옆에 기타 콘트롤러가 있다면 아주 자연스럽게 게임을 즐기게 될 것이다.
ㄹ. 시각적 디자인 - 특별하게 플레이어에게 목표를 제시하거나, 강제로 유도하지 않더라도 시각적으로 ‘아, 이곳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제공한다면,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개발자의 의도대로 움직일 것이다.
ㅁ. 캐릭터 - 가령 FPS 게임에서 플레이어를 ‘A’라는 목표지점으로 유도하고 싶다고 치자. 그렇다면 어떻게 유도하면 될까? 간단하다. A 지점 앞에 적 캐릭터들을 배치하면 된다. 플레이어는 적 캐릭터들을 물리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A 지점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ㅂ. 음악과 소리 - 시각적 디자인과 유사한 방법이다.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듣기 싫은 기분 나쁜 음악을 들려준다는 식으로 청각을 이용해 플레이어들을 개발자들의 의도대로 콘트롤할 수 있다.
■ 인터랙션의 마법
위와 같은 방법으로 인터랙션을 이용해서 플레이어의 자유와 통제를 적절하게 밸런싱했을 때 게임은 최고의 재미를 준다. 플레이어들은 “나는 내 마음대로 플레이했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개발자들의 의도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까?
그리고 이런 인터랙션은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유발시킬 수도 있다.
게임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 가지 예를 들어, 과거 독일의 폭스바겐은 ‘즐거움은 사람의 행동을 더 좋게 바꿀 수 있다’(Fun can change behavior for the batter)라는 콘셉트로 현실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해 봤다.
평범한 쓰레기통에 적절한 인터랙션을 가미하자, 사람들이 쓰레기를 집중해서 버리기 시작했다.
폭스바겐은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계단을 밟으면 소리가 나는 ‘피아노 건반’ 모양으로 바꿔 봤다. 그러자 사람들은 계단을 밟는 것에 재미를 느끼면서, 동시에 계단 이용률이 60% 이상 늘어났다.
이 밖에도 빈 캔 수거함을 ‘게임’ 형태로 바꿔 보니 잘 이용되지 않던 재활용 수거율이 대폭 늘어났다. 그리고 공원 쓰레기통에 물건을 집어넣으면 영원히 떨어지는 듯한 효과음을 발생시키도록 재미있게 바꾸자, 사람들은 즐거움을 느끼면서 좀 더 쓰레기를 정확하게 버리기 시작했다.
이렇듯 인터랙션은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재미를 유발시키면서 또한 사람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 몰입과 중독도 적절한 밸런스 조절이 필요
여러 번 말하지만 게임은 플레이어의 자유와 통제를 적절하게 밸런싱했을 때 최고의 재미를 선사한다. 그리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게임의 ‘중독’ 역시 마찬가지로, 개발사가 ‘몰입’과 ‘중독’을 적절하게 밸런싱했을 때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하면서도 중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것은 현재 게임업계 외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게임 때리기’는 분명 과한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게임은 나쁘다’, ‘게임은 중독을 유발시킨다’고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 게임의 단편적인 면만 보고 범하는 오류다.
만약 게임이 수 백년 전에 개발됐고 책이 최근에 개발되었다면, 사람들은 지금 게임을 대하듯 책을 비판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업계 스스로도 한 번쯤은 돌이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현재 서비스되는 온라인 게임을 보면 지나치게 플레이어를 몰입시키는 데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현재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이 제공하는 ‘보상체제’를 보면, 거의 모든 보상체제가 ‘결과’에 집중돼 있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면서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느끼는 ‘과정’ 속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보상체계가 그 과정은 무시한 채, 무조건 결과에만 집중된다면 플레이어들은 과정은 어찌되었든 무조건적으로 결과에만 집착해서 ‘결과’를 내기 위해 게임에 필요 이상으로 몰입하고 중독될 수 있다.
실제로 해외의 사례를 보면 게임의 결과보다는 ‘과정’에 의미를 두면서도 재미를 선사하는 게임들이 제법 존재한다.
이렇게 말하면 ‘게임의 수익성은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수익성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번쯤은 돌이켜 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결국 ‘게임’이라는 콘텐츠는 자유와 통제, 그리고 몰입과 중독을 적절하게 밸런싱했을 때 최고의 결과를 낸다고 생각한다. 너무 결과에만 집착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기존에 나온 게임들과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으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게임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