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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앨리샤 디렉터를 하면서 깨달은 것 3가지

NDC 11, 엔트리브소프트 박세환 디렉터

이터비아 2011-05-30 22:36:55

게임을 개발하는 데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갑니다. 그 안에는 모든 것을 총괄하는 프로듀서가 있고, 바로 그 밑에서 게임 개발의 실질적인 부분들을 조율하는 디렉터가 있는데요, 이 디렉터에 얽힌 이야기가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2011에서 공개됐습니다.

 

엔트리브소프트의 신작 <말과 나의 이야기, 앨리샤>의 박세환 디렉터가 ‘<앨리샤>에서 디렉터하기’라는 주제로 그동안 디렉터를 맡아오며 느꼈던 애환과 디렉터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발표한 내용들을 정리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박상범 기자


 

■ 디렉터는 게임의 재미를 책임지는 사람

 

게임 개발에서 디렉터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디렉터의 사전적 정의는 ‘결정하고 시키는 사람’인데 게임 분야에서는 ‘게임의 재미를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게임을 만들 땐 ‘무엇을 만드나’와 ‘어떻게 만드나’를 고민해야 하는데요, 디렉터는 무엇이 아닌 어떻게 만드는지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자신이 어떤 게임을 만들지 정해서 진행해 나갈 수 있다면 어떻게 만드는지 고민해야 하는데요, <앨리샤>의 경우 소재는 이미 ‘말을 소재로 한 게임’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재미있게 만드는 게 디렉터인 저의 역할이었습니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했죠.

 

디렉터는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만드드냐를 고민한다.

 

 

■ 디렉터로서 <앨리샤>에서 했던 다섯 가지

 

첫째. 게임의 큰 그림을 그렸습니다. 가용한 리소스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잡아 나가는 일이었죠. 먼저 이슈들을 잡고 관련 내용과 의사결정, 질의응답, 디렉터의 입장을 모아 이슈를 정리합니다. 그리고 오픈 스펙을 만들었습니다.

 

팀원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메모지에 적은 뒤 한데 모아서 우선 순위를 결정하고 의견을 교환해 최종 결정을 내립니다.

 

그런뒤 이를 바탕으로 ‘경험 플로우’를 그리게 됩니다. 유저가 경험하는 내용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건데요, 리스트만 갖고는 머릿속에 안 그려지기 때문에 차례대로 진행한다는 것을 설명해 정리합니다. 이렇게 게임의 전체 모습이 구성됩니다.

 

빨간 선 위의 항목들이 먼저 진행해야 할 우선 순위 업무.

 

둘째. 원칙 정하기입니다. 원칙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원칙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게임 개발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만들기와 계속 시도하도록 만들기, 이른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표현하는 게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리턴이 커도 리스크가 크면 보통 시도을 안 하죠.

 

그래서 리스크를 어려움(Difficulty)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난이도를 올려서 실패해도 페널티가 생기는 게 아니라 성공은 힘들지만 실패하는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겁니다.

 

<앨리샤>의 예를 들면 코스의 지름길 도입부의 턱 문제로 지름길을 옆으로 뺐다거나, 레이싱의 드리프트와 비슷한 슬라이딩의 경우 드리프트가 실패하면 차가 돌고 난리가 나서 계속 시도해 보다가 결국 안 하고 그립으로 돌지만 <앨리샤>는 그걸 줄이기 위해 슬라이딩에 실패해도 페널티가 없습니다.

 

셋째. 우선 순위 결정하기입니다. 내부에서는 A, B, C로 나눠서 결정했는데요, 포커스를 둔 건 ‘무엇을 먼저 할지 결정하는 것’보다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결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순서를 결정하고 다 진행하면 스케줄을 잡을 때 문제가 많은데, 아예 배제하면 진행자로 하여금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심지어 폴리싱(다듬기)도 우선 순위의 할당을 받지 못 받으면 진행을 못 합니다.

 

이를 명확히 팀원들에게 전달하고 최대의 가치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기 위해선 디렉터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A, B는 해야하고 C는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분류했다.

 

넷째. 개선하고 수정하고 고치기입니다.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것보다 기존의 것을 개선하는 게 중요합니다. 보통 팀원들은 기존의 것을 수정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걸 훨씬 좋아합니다. 저도 예전엔 그랬는데 <앨리샤>를 진행하면서 많이 바뀌었죠.

 

그래서 팀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사용성 테스트와 로그 데이터를 활용합니다. 사업 파트에서 주로 하는 건데 도입하게 됐죠. 기본적 근거를 갖고 팀원들에게 지시하기 위해 이용합니다. 저는 객관적인 자료를 갖고 있기 때문에 팀원들은 공감이 안 돼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째. 결과 공유하기입니다.

 

이건 저도 가장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인데요, 그래도 주요 마일스톤을 끝날 때마다 공유하고 있습니다. 자주하는 팀은 매주 한 번 공유한다는데 전 그렇게는 못하고요, 팀 내에서는 분기별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디렉터로서 <앨리샤>에서 했던 일 다섯 가지.

 

 

■ 디렉터를 하면서 깨달은 점 3가지

 

제가 <앨리샤>의 디렉터를 맡아 오면서 깨달은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뭘 원하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보면 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러면 큰일납니다. 스스로 원하는 것들을 최대한 정리해서 이야기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원하는 게 뭔지 본인부터 모르면 남에게 설명하기 힘들고 나중에 일관성이 깨지는 건 물론이며 업무 진행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둘째. 필요한 이유에 대해 항상 생각합니다.

 

둘이 듣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재미난 아이디어는 세상에 많습니다. <앨리샤>의 아이디어 게시판에도 참 많고 좋은 아이디어들이 올라오지만 정작 게임에는 잘 채택되지 않습니다. 절대 재미가 없어서 채택되지 않는게 아닙니다.

 

게임이 재미없는 건 아이디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풋 대비 아웃풋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풋은 유저를 위해 해야하는 것, 즉 시스템의 목적이죠. 아웃풋은 유저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목적입니다. 재미난 아이디어와 결합시켜도 과연 그로 인해 유저가 실제로 게임을 계속 할 수 있겠는가에 달렸죠.

 

인풋(플레이)과 아웃풋(보상)에 재밌는 아이디어가 더해져야 한다.

 

아이디어가 좋아도 인풋과 아웃풋이 탄탄하지 못 하면 그 콘텐츠는 만들다가 드랍되고 맙니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그리 좋지 않아도 인풋과 아웃풋이 확실하면 계속 진행되죠.

 

셋째. 중요한 것과 우선 할 것의 차이를 구분해야 합니다.

 

보통 중요한 걸 먼저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 두 가지는 엄연히 다릅니다. 먼저 중요한게 뭐냐고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가 필요했습니다.

 

보통은 숫자 순서대로 진행되지만 <앨리샤>에선 1번과 2번만 진행한다.

 

예를 들어 위의 사진과 같은 업무가 있습니다. 보통 숫자 순서대로 일을 진행하는데 사실 이런 식이면 안 됩니다.

 

<앨리샤> 팀에선 노란 원의 업무만을 골라 진행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3번이 1번이 됩니다. 그런데 1번과 2번을 해야하지만 막상 개발자들이 할 게 없다고 3번이나 4번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디렉터는 3-4번을 1-2번으로 만들어줘야 합니다.

 

<앨리샤> 디렉터를 하며 깨달은 세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