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취재

“한국, 오만에 빠지지 말고 도전하라”

NDC 11, 이나후네 케이지 콤셉트 대표 키노트

깨쓰통 2011-05-31 18:54:04

캡콤의 간판 개발자로 20년 넘게 활약해 오다 작년 말 독립, 신생 개발사 콤셉트(Comcept)를 차리고 신작을 준비하는 이나후네 케이지(船敬二) 31 서울 코엑스몰에서 열린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2011에서 키노트를 진행했다.

 

게임의 글로벌 전략 및 아시아 기업의 약진과 미래라는 제목의 키노트에서 이나후네 케이지는 자신이 캡콤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며, 특유의 거침없는 언사로 일본 게임업계를 비판했다. 또한 한국 온라인 게임업계 및 개발자들을 향해 오만에 빠지지 말고 끝없이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캡콤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먼저 NDC 2011에 초대해 준 넥슨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오늘은 내가 그동안 게임을 만들면서 느꼈던 것들. 생각했던 것들을 한국의 게임 개발자들과 공유하고, 또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나후네 케이지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캡콤에서 23년 동안 개발자 겸 프로듀서로 일해 왔다. 작년 말에 캡콤을 떠났고, 지금은 신생 게임 개발사 콤셉트의 사장으로서 경영과 개발을 지휘하고 있다.

 

캡콤에서 퇴사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도전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일본 게임 업계는 위기를 맞고 있다. 많은 개발사들이 현재에 안주하고 있으며, 개발자들은 도전 정신을 잊어버리고 있다.

 

그리고 이는 캡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캡콤에 있을 때 항상 도전정신을 고취시키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아쉽게도 내가 이렇게 말해도 캡콤의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잘 팔리는 게임을 만들고, 기존 시스템에 안주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만 이야기했다.

 

이런 회사에서 계속 게임을 만든다면 분명 크리에이터로서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으면 했고, 퇴사를 결정, 게임회사를 설립했다.

 

이나후네 케이지가 캡콤에서 사실상 마지막으로 관여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록맨 대쉬 3>.

 

 

② 일본 게임업계는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산업은 폭발적인 발전 단계를 거쳐 안정기에 들어서면 새로운 도전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는 지금의 일본 게임업계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일본 게임업계는 10여 년 전에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후에는 새로운 발전이나 도전을 경시하게 되었다오히려 매출을 더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과거 10년 전쯤 한국에 온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 게임 개발자들을 만나면서 정말 깊은 인상을 받았었던 기억이 난다. 눈빛부터 달랐다고 할까? 헝그리 정신과 함께 끝없는 도전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한국 개발자들은 우리들이 앞으로 한국의 게임산업을 이끌어 나가겠다 그런 의지가 아주 강했다.

 

그래서 일본에 돌아간 후 관계자들과 만나면 늘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은 아주 적극성이 있는 나라다. 한국 게임산업은 반드시 지금부터 더 커지고, 활성화될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일본)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분발해야 한다. 만약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바로 추월당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한국에 추월당한다면, 이후에는 한국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지금 와서 보면 그때 느꼈던 것이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 게임업계는 정체되고 있으며, 반대로 한국은 온라인 게임이 폭발적인 성장을 거두면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나후네 케이지는 평소에도 일본 게임업계에 거침 없이 쓴 소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은 TGS 2009의 평가에 대해 엄지손가락을 내리고 있는 모습.

 

 

③ 한국 게임업계, 오만에 빠지지 말아라

 

한국 게임업계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온라인 게임에 있어서는 세계 1위의 개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서비스 능력도 뛰어나다. 최근 발표되는 신작들을 보면 훌륭한 퀄리티의 게임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역시 자만해서는 안 된다.

 

최근 중국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중국의 게임 개발자들 앞에서 강연하는 자리였는데, 이 자리에서 나는 과거 한국 개발자들에게서 받았던 뜨거운 열정, 눈빛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굳이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보면 지금은 한국, 일본에 뒤처지지만 뛰어넘기 위해 뜨거운 열정을 갖고 위를 바라보며 공부하는 개발자들이 정말 많을 것이다.

 

만약 한국이 오만함에 빠지고, 우리는 온라인 게임에 있어서는 세계 제일이라며 새로운 도전을 게을리한다면, 일본 게임업계가 10년 전부터 저지르고 있는 잘못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 한국이 일본과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④ 오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굳이 게임업계만이 아니라도 이 오만함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을 약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흉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현실에 만족해서 오만함에 빠진다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오만이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은 오만에 빠졌다고 해도 그 사실을 느끼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후 주변에 아군이 아무도 없게 되고, 확실히 눈에 띄게 뒤처진 다음에야 아 내가 오만했구나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미 늦은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은 왜 오만에 빠질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람이 나 하나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오만은 시작된다고 본다. 나 혼자 독식하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것이고, 그걸 이용해서 얻는 이득은 모두 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인간은 오만해진다.

 

오만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많은 사람들의 힘을 빌리고,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의 힘을 인정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면 된다. 나아가서 국경을 초월해 다른 나라 사람과도 협업해야 한다. 함께 게임을 만들고, 보다 높은 곳을 목표로 나아가면 된다.

 

지금 이 NDC만 해도 넥슨이 주최하는 컨퍼런스지만, 다른 게임업체 개발자들, 심지어 일본인들까지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 알고 있다. 이는 아주 바람직한 예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게임업계는 물론이고, 개발자 개개인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나후네 케이지의 키노트를 듣기 위해 넥슨을 비롯한 게임업계 다양한 사람들이 NDC가 열리는 코엑스를 찾았다.

 

 

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의 협업을 두려워하지 말라

 

물론 나, 또는 우리 회사 외에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협업하며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일본은 더더욱 그렇다.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인지 민족성 자체가 나 혼자서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나 역시 캡콤에서 많은 의견 충돌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본에 없는 장점을 가진 해외 개발사와 함께 게임을 만들고, 능력을 공유하면 분명 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처음에는 캡콤에서 반대가 많았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설득한 덕분에 실제로 미국·유럽 개발사와 손잡고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역시나 처음에는 좀처럼 성공할 수가 없었다.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특히 일본 사람들과 미국 사람들은 문화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반목하는 경우가 잦았다. 일본 개발자는 미국 개발자를 가리켜 게으른 놈들이라며 욕했고, 미국인은 또 그들대로 일본 개발자들을 흉보며 욕했다. 이런 충돌이 잦다 보니 서로의 장점을 보려고 하지 않았고,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협업을 계속 추진했다. 분명 일본 개발자에게는 있지만 미국 개발자에게는 없는 장점, 반대로 미국 개발자에게는 있지만 일본 개발자에게는 없는 장점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서로서로 맞물려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끈기 있게 기다린 결과, 마침내 의미 있는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바로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데드 라이징> 시리즈였다. 이 게임을 만들면서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캐나다 개발자들과 좋은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있었고, 문화와 언어 등을 극복하고 서로의 장점을 결합할 수 있었다.

 

캡콤이 해외 스튜디오와의 협업으로 만든 액션 게임 <데드 라이징>.

 

인간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잘하는 것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온라인 게임의 개발과 서비스가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 혼자만 좋다고 생각하려 한다면, 계속 자기가 가진 장점에 안주하려고 하면 발전 속도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잘 만드는 온라인 게임. 그것이 평생 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한 가지 예를 들어 만약 전 세계 게임업계에 일대 대격변이 일어나, 소셜 게임의 비중이 대세라고 할 정도로 성장하고, 온라인 게임과 콘솔 게임이 몰락했다고 해 보자. 만약 한국과 일본이 기존의 온라인 게임-콘솔 게임 기술에만 안주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분명 몰락하게 된다.

 

하지만 만약 세계의 다양한 개발사들과 오래 전부터 교류했고, 서로 협력해 왔다면 그런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오만하고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⑥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자

 

이 세상에는 천재가 많다. 게임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천재는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천재는 자기가 해야 하는 걸 너무나도 잘 이해해서 노력을 게을리하기 때문이다.

 

또 세상에는 운이 좋은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 역시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다. 운이 좋다는 것은 무엇을 하든 잘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들 역시 노력을 게을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천재나 운 좋은 사람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바로 천재에는 약간 모자라지만, 운도 거의 없지만, 대신 엄청나게 노력하는 사람이 그 주인공이다. 이건 진리다.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를 잘 알고, 자신이 목표로 하는 바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정말 제대로 노력한다면 천재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다.

 

만약 운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희망을 갖고 더욱 더 노력한다면, 분명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자기 자신이 천재라고, 혹은 운이 좋다고 능력 계발을 게을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충고하고 싶다. 만약 당신 같은 사람이 정말 자만에 빠지지 않고 노력한다면 세계적인 개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점으로 이야기를 돌려 보자. 일본 게임업계는 10년 전에 엄청난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나는 최강이다라며 스스로 자만했고, 그게 지금 일본 게임산업의 위기를 불러왔다. 만약 그때 오만하지 않고 더욱 노력했다면 지금은 훨씬 강한 업계가 형성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 게임업계, 그리고 한국에서 게임 개발을 꿈꾸는 개발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오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협력·협조하면서 절대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고 위를 향해 도전해라. 또한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협력하는 것을 피하지 말자. 그러면 분명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⑦ 콤셉트에 대해

 

마지막으로 이나후네 케이지가 설립한 콤셉트라는 게임 개발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콤셉트는 이름 그대로 게임의 콘셉트(Concept)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회사다. 직원은 아직 20명 정도지만, 20명이 일사불란하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나는 콘솔 게임업계에 몸담은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콘솔 게임을 만들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물론 콘솔 게임 개발을 아예 안 할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소셜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 같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다.

 

소셜 게임에 있어서 나는 아마추어다. “난 무엇이든지 개발하고 제작할 수 있어! 이런 교만한 자세로 소셜 게임을 만들겠다는 게 아니고, 소셜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요?라는 자세로 더 잘 아는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보면서,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만약 내가 내놓은 소셜 게임이 결과가 좋지 않다면 역시 이나후네 케이지는 콘솔 게임이나 만드는게 낫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은 악플 문화가 정말 발달한 나라니까 말이다(웃음).

 

어찌 되었든 안 좋은 소리를 들어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콤셉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회사그런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회사다. 개인적으로 일본 게임업계를 보면서 정말 실망한 것은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 있어 그것은 무리!라며 처음부터 도전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콤셉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할 생각이 있다. 한국 업체들과도 협업할 생각이 있다. 조만간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이나후네 케이지가 설립한 콤셉트의 공식 홈페이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