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취재

가차폰은 랜덤이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NDC 11, 넥슨 허설 대리의 삽질 속에 발견한 교훈

정우철(음마교주) 2011-06-02 21:05:32

‘가차폰’. 원래는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상품이 담긴 캡슐이 나오는 일종의 자동판매기를 말한다. 그 안에 어떤 상품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돈을 지불하거나 혹은 포기한다.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다는 ‘랜덤’의 대명사 가차폰. 게임에서는 랜덤으로 아이템이 나오는 부분유료화 모델을 지칭한다. 그런데 이 가차폰의 이용 형태를 분석했더니 의외의 패턴이 나왔다. 자료를 모아 통계를 내 보니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는 것이다.

 

가차폰은 랜덤일까? 아니면 과학일까?” 2일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2011에서 데이터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넥슨 허설 대리가 강연을 진행했다.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이번 강연과 기사에서는 어떤 한두 개의 게임을 특정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게임 화면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자 주


 

■ 가차폰을 어떻게 잘 만들 수 있을까?

 

가차폰은 상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저들이 돈을 내고 구매한다. 하지만 어떤 상품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구매층과 비구매층이 확실히 구분되는 상품이다.

 

그래서 개발사에서는 가챠폰을 통해 어떤 보상을 주고, 대박 아이템은 언제 나오게 하며, 게임 내에 언제 어떻게 적용할지, 그리고 누구를 대상으로 할지를 고민한다. 유저들도 가차폰을 구매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아이템에 대한 욕망, 기대, , 대박 등이다.

 

 

사실 인간의 모든 행동의 근원은 ‘욕망’ 때문에 생긴다. 개발사는 매출에 대한 욕망, 유저는 대박에 대한 욕망이다. 즉 개발자와 유저의 희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가차폰을 만들고 판매하는 것과 구입하는 것에서 만족도와 불만은 반비례 하는 셈이다.

 

개발사에서는 아무리 낮은 가치의 아이템이 등장해도 지불한 금액만큼의 가치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저 입장에서는 뭐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해당 가차폰의 가치를 산정하기 어렵다. 사는 사람은 계속 사지만, 안 사는 사람은 절대 구입하지 않는 게 가차폰이다.

 

허설 대리는 어떤 타이밍에 가차폰을 넣으면 될까? 보상은 언제 어떻게 줄까? 얼마의 확률로 줘야 할까를 고민했다. 기존의 패턴을 조사해 보니 일정한 패턴이 보였다. 사면 살수록 보상이 높아지는 경우, 보상이 완전히 랜덤한 경우시간마다 혹은 구입한 횟수에 따라 보상의 결과가 정해졌다”고 설명했다.

 

 

 

■ 가차폰에 적용된 과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가장 만들기 쉬운 가차폰 시스템은 고정비율을 적용한 것이다. 즉 열 번째로 구입한 가차폰에 대박 보상이 나오는 식이다. 유저들이 보면 단순하고 투명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열 번째로 구입한 다음에는 꽝이 나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로 사지는 않는다.

 

슬롯머신처럼 가변비율을 사용하는 경우나 일정 시간에 따라 대박이 나오는 가변시간 시스템을 채택하는 경우도 있다횟수나 시간의 기준에 따르는 방식이다.

 

 

 

짧은 시간에 매출을 뽑고 유저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은 가변비율이다. 시간보다 횟수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유저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요인이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시스템이 투명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이 있다. 즉 유저들이 대박의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적용되는 법칙이 이른바 ‘5의 법칙이다. 사람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다섯 개씩인 것처럼, 물건을 구입할 때 5개 단위로 구입하는 것처럼, 게임에서 레벨을 올릴 때도 5레벨 단위로 플레이하는 것처럼, 5라는 단위의 행동 패턴은 5라는 숫자에 맞추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가차폰도 5, 혹은 10개 단위로 묶어서 팔면 어떨까?

 

 

 

■ 묶음의 법칙과 호기심의 유도

 

1개 단위의 가차폰의 경우 처음에는 하나 사 보고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다. 처음 시도해서 결과가 안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른바 첫인상이다.

 

그래서 첫 번째에 좋은 보상이 나올 수 있는 확률을 높이고 2~3회 차에 보상 확률을 낮춰 보니 효과가 있었다. 여기에 ‘5의 법칙을 적용해 보니 사람들이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지막 다섯 번째에 보상을 높였다. 5라는 사이클을 넘어서 6이라는 단계에 쉽게 넘어오도록 유도한 것이다.

 

 

1개짜리 아이템을 구입하는 유저들의 경우 다섯 번째 가차폰에서 좋은 아이템을 얻어도 10, 11개째를 구입하는 허들을 넘지 못 한다. ‘많이 사 봤지만 별로’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묶음 상승 효과를 생각해야 한다. 묵음을 제공해 구매의 편리함을 주면 추가이익을 얻을 수 있다. 1개씩 사는 것보다 한번에 5개를 구매하는 것으로 매출을 높일 수도 있다. 가변확률과 묶음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효율을 높인다. 그렇다고 무조건 묶음이 좋은 것은 아니다.

 

 

 

■ 무관심과 호기심, 합리적 기대와 물욕의 사이

 

가변확률과 묶음을 놓고 합리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가차폰 구입이 12, 13개가 넘어가는 순간 5의 법칙은 작용하지 않았다. 결국 12개 이상 사는 사람은 확률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가차폰을 시장에 내놓고 나면 초반에는 구입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20% 이하로 구매율이 줄어든다. 핵심 구매층만 남는 것이다.

 

여기에 가격의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1,000 원짜리 아이템과 2,000 원짜리 아이템의 구매율은 별 차이가 없지만, 3,000 원으로 넘어가면 구매율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즉, 가차폰은 로또처럼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합리적 소비재는 아니다.

 

 

가차폰은 구매와 비구매의 구분이 명확하다. 하나를 구매하기 전까지의 무관심이라는 허들을 넘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개만 사고 그만뒀다면?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1개를 사는 사람들은 호기심 때문에 구입한다. 이후 합리적 기대, 즉 ‘몇 개를 사면 대박’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 이상 구매하는 사람은 합리적 기대보다는 비합리적으로 구매를 지속하는 경우다. 따라서 최초 구매자, 1개를 산 사람이 두 번째 구입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이끄는 과정이 필요하다.

 

허설 대리는 가차폰이라는 것은 일정 한계를 넘어서면 과학적인 설명이 떨어진다. 따라서 가차폰을 기획할 때는 게임을 분석하기보다 그 게임을 하는 사람을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 때문에 가차폰은 과학이지만, 과학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가 강연 주제인 가차폰은 과학입니다에서 끝에 물음표를 붙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