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의 게임 축제. 2011년 ‘도쿄 게임쇼’(TGS 2011)이 지난 9월 15일부터 19일까지, 일본 도쿄 치바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렸습니다. 올해 TGS는 지진과 방사능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4일간 모두 22만2,668 명의 관람객이 찾아 대성황을 이뤘는데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올해 TGS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행사’ 였다는 의견도 있지만, ‘신작도 없고 볼 것 없었던 행사’ 라는 악평도 줄을 잇고 있죠. 그렇다면 과연 마쿠하리 메세를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보며 취재한 디스이즈게임 기자들은 행사에서 어떤 점을 느꼈을까요?
올해로 3년 연속 TGS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깨쓰통과 올해 1년동안 E3-게임스컴-차이나조이-TGS 등 출장 전문 기자로 발돋움한 한낮 기자가 TGS 2011에 대한 각자의 느낌을 이야기해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별세계’ 된 TGS
깨쓰통: 자, 그러면 TGS 출장을 마무리한다는 느낌으로. 각자 이번 TGS에서 느꼈던 점을 솔직하게 말해봅시다.
한낮: 시작 전에는 방사능이다. 신작도 없다. 걱정을 많이 했잖아요? 하지만 실제 가서 보니까, “여전히 TGS는 TGS구나” 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른바 ‘대작’이 없고, 나오는 신작도 과거에 나왔던 게임의 ‘HD 리마스터링’ 버전이 많다고 TGS를 비판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래도 여전히 그런 작품을 빼도 TGS에서는 즐길만한 게임이 많이 전시되었고, 볼 거리도 많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깨쓰통: 확실히 ‘HD 에디션’ 붙은 게임들을 빼더라도 올해 TGS에서는 즐길만한 게임이 많이 보였지. <아수라의 분노>도 그렇고, <판타지스타 온라인 2>도 그랬고, 미쿠미쿠(<하츠네 미쿠> 시리즈)도 그랬고….
한낮: 어찌되었든 너무 ‘신작이 없어!’ 라며 올해 TGS가 별로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조금 박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TGS 행사 자체가 연말을 앞두고 발매되는 게임들의 ‘체험회’ 성격이 강한 것도 조금은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일본 게임시장은 미국이나 유럽 게임 시장에서 ‘대작’ 취급을 받는 게임들이 의외로 인기가 없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깨쓰통: 나는 올해 TGS에서 “일본 게임시장이 점점 미국이나 유럽 게임시장과는 다른 시장으로 바뀌어가고 있구나” 라는 점을 느꼈어.
사실 3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게임쇼 흐름을 보면 “E3에서 최초공개 → 게임스컴에서 체험버전 공개 → TGS에서는 나머지 못나온 게임들과 최신 기대작들의 공개”라는 흐름이 확실히 보였거든? 하지만 올해 TGS는 E3나 게임스컴에서 연결되는 고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어.
EA나 UBI소프트와 같은 서양권 회사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배틀필드 3> 같은 기대작의 인기는 다른 일본 게임들에 비하면 초라했고 말이지.
한낮: 게임쇼의 핀트라고 할까. 일본 게이머들의 취향이 북미/유럽권과는 점점 동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듭니다. 그러고 보면 올해 게임스컴에서는 ‘무브’ 같은 체감형 게임이 회장 내에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는데, TGS에서는 고작 3대 출전한 게 전부였죠.
좋게 말하면 일본 게임시장이 점점 다른 시장과 차별화되는 ‘별세계’가 되고 있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기들만의 ‘갈라파고스’화가 가속화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휴대용 게임 초강세 속 찬란하게 빛난 <몬헌>
깨쓰통: 올해 TGS가 예년과 확실히 달랐던 점은 역시나 ‘휴대용 게임기’가 초강세였다는 점을 꼽을 수 있지.
물론 이건 행사 개막에 맞춰서 소니와 닌텐도가 PS Vita/3DS의 라인업을 대거 공개한 영향이 크긴 하지만 말이야. 그에 비하면 기타 패키지나 PS3, Xbox 360 게임들은 들러리라는 느낌?
한낮: 동감입니다. TGS 행사 메인 자체가 3DS랑 PS Vita였고, 기타 콘솔 게임들은 정말 들러리라는 느낌이었어요. 관람객이 줄을 선 것을 봐도 패키지 게임이나 콘솔 게임은 휴대용 게임에 비해 훨씬 짧았죠.
깨쓰통: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3DS야. 이미 나온 하드웨어이니까, 당연히 PS Vita가 많은 주목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행사장에서는 3DS가 초강세였다는 점이지.
물론 이건 3DS용 <몬스터 헌터 3G>(트라이G)라는 사기 캐릭터…아니, 초 인기 게임으로 인한 착시현상일 수도 있는데, 정말 행사장 내 다른 부스를 보더라도 보면 PS Vita는 거의 보이지 않더라고.
한낮: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SCE는 이번 TGS에서 PS Vita는 SCE 부스 안에만 있었고, 다른 부스에서는 하드웨어 자체를 거의 배치하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부스에 쫙 퍼져있던 3DS가 PS Vita보다 더 인기가 많았던 것처럼 보인 것 아닐까요?
그리고 SCE 부스만 놓고 보면 PS Vita는 한 번 체험하려면 최소 90분 대기가 기본이었어요. 이 정도면 인기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깨쓰통: 그렇다면 올해 TGS에서 PS Vita/3DS 게임 모두 다 포함해서 최고의 인기 타이틀은 무엇이었을까?
한낮: <몬스터 헌터 3G>요. 그냥 진리이고 빛이고 소금이었습니다. 게임도 잘 만들었고, 관람객 반응은… 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죠.
깨쓰통: 정말. 시작하자마자 30분도 안 되어서 당일 ‘정리권’(일종의 입장권)이 다 동날 정도였으니…. 그렇다면 <몬스터 헌터 3G>를 빼면 어떤 게임이 눈에 띄었어?
난 반다이 남코의 <건담 VS 익스트림>이나 캡콤의 <전국 바사라 3: 우타게>, 세가의 <하츠네 미쿠> 시리즈 등이 관람객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게 감명 깊었는데 말이야. 저런 소위 ‘마니아 게임’ 들이 인기를 얻는 걸 보자니 역시나 일본은 일본이구나… 라고 느꼈다고 할까?
한낮: 전 <아수라의 분노>가 기억에 남네요. 진짜 이거 물건입니다. 게임하는 내내 피가 끓어요. 이 게임은 일본뿐 아니라 E3나 게임스컴에서도 인기였잖아요? 이걸 보면서 ‘아 정말 열혈은 만국 공통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_-)b
PS Vita, 하드웨어는 확실히 물건인데 라인업은…
깨쓰통: 자, 이번에는 PS Vita에 대해 좀 더 깊이 이야기해봅시다. 어찌되었든 이번 TGS에서 사실상 전모를 드러낸 최신 하드웨어인데 느낌이 어땠음?
한낮: 짧고 굵고 간결하게 정리하자면 “기계는 최고, 게임은 글쎄?”
먼저 조작감은 손에 착착 감기고, 버튼이 좀 작긴 해도 익숙해지면 잘 눌리고 터치 스크린 반응도 빠르고, 그립감은 너무나도 좋아서 한 손으로 터치할 때도 불안하지 않고, 무게도 적당하고… 좌우지간. 하드웨어에 불만 같은 거 없고 그냥 마냥 찬양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깨쓰통: 하지만 문제는 역시나 ‘게임’ 그 자체지. 확실히 이번에 체험버전을 공개한 게임들을 보면 뭐라고 할까… 완성도가 너무 제멋대로라고 할까? ‘PS Vita’ 라는 하드웨어의 특성을 이해하고 만든 게임이 있는가 하면, 그냥 PSP 게임 고화질로 만들어 내놓은 게임도 있고. 좀 편차가 크더라고.
한낮: 정말 편차가 너무 심했어요. <그라비티 데이즈>나 <이스: 셀세타의 수해> 같은 게임들은 PS Vita가 가진 다양한 센서를 최대한 활용해서 기존에 느끼기 힘들었던 새로운 방식의 ‘게임성’ 이란 것을 보여준 반면, 그렇지 못한 게임도 많았죠.
대표적으로 <얼티밋 마블 Vs 캡콤 3> 같은 경우에는 그냥 ‘고화질 PSP 게임’ 이라는 느낌이었고, <언차티드>는 굳이 터치스크린 조작을 안 해도 되는데, 하드웨어 신기능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터치 스크린 조작을 넣었다는 느낌이었고, <지옥의 군단> 같은 게임은… 아무리 봐도 PSP로 낼 게임 PS Vita로 잘못 낸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깨쓰통: 영상으로만 보면 <이스: 셀세타의 수해>가 오히려 PSP 게임 잘못 낸 거던데?
한낮: 그건 실제로 해보고 느껴야 해요. 그래픽은 하드웨어 성능을 제대로 못 쓴 듯한데 후면 터치로 동료 2명한테 4가지 명령 자연스럽게 내릴 수 있는가 하면(영상으로는 잘 찍기 힘듬), 화면을 터치하면 간단하게 집중 공격할 적을 지정해줄 수도 있습니다. PSP로 나온 <이스 7>을 해본 게이머라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에요.
깨쓰통: 그렇다면 결국 PS Vita는 발매 초창기에는 하드웨어 성능을 적극 활용한 개념작과 그렇지 못한 작품들이 난립하는 혼돈의 양상이 펼쳐질 확률이 클 것 같네.
한낮: 네. 하지만 그래도 하드웨어가 개념인 만큼, PS Vita 자체가 실패할 것 같지는 않네요. 아무렴 PSP도 발매 후 지금까지 8년 넘게 버텼는데 말이에요. 설마 Vita가 저 정도 성능으로 그 정도도 못 버틸까요.
다만 초창기 라인업 자체가 과거 PS2나 PSP로 나왔던 게임들의 ‘HD 에디션’이 절반 정도 된다는 것은 너무 아쉽습니다.
특히 코나미가 SCEJ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HD 4연타’(<메탈기어 솔리드 2 HD 에디션>, <메탈기어 솔리드 3 HD 에디션>,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워커 HD 에디션>, <ZOE HD 에디션>)은 보는 내내 얼이 빠질 정도였는데요. 아마 다시는 못 볼 거에요. 그런 신작발표회.
깨쓰통: 그렇다면 이번 3DS는 어떤 느낌이었어? 난 정말 이번 TGS에서 느낀 게 “3DS를 사주신 고객님들. 그 동안 3DS 베타 테스트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정식 서비스 시작합니다” 였다고 할까…(-_-;)
한낮: 진짜 동감. E3에서 3DS 신작 발표할 때는 정말 행사장에 무음모드라도 켠 줄 알았고, 게임스컴에서는 그냥 닌텐도 골수팬 + 젤다를 위한 게임기 정도였는데, 이번 TGS에서는 지존의 <몬스터 헌터 3G>를 빼더라도 완전 흥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대작이나 뻔한 게임 중심이 아니라, 온갖 아이디어의 다양한 게임들이 대거 전시되었습니다. 이제 3DS는 완전히 자리 잡은 듯하네요.
깨쓰통: 정리하자면 올해 TGS는 지진으로 인해 정상개최 여부가 많이 염려되던 상황이었지만, 실제 영향은 굉장히 미미했고. 휴대용 게임기 이슈가 많은 화제를 모으면서 동시에 E3 게임쇼나 게임스컴 등과는 확연히 차별화된 느낌을 보여준 행사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
한낮: 네. 과연 내년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많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