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창업자이자 CEO로 IT 업계와 콘텐츠 업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스티브 잡스가 5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느 정도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지만 급작스런 사망 소식에 전 세계에서 그를 추모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그는 애플 초기를 통해 PC 산업을, 픽사를 통해 애니메이션 산업을, 그리고 애플 중기를 통해 문화 콘텐츠 산업을 선도하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했던 정식 업무는 게임 기획이었다.
■ 게임 기획자가 첫 직업이었던 잡스
잡스는 대학을 1년도 다니지 않고 중퇴한 뒤 1974년 아타리에 게임 기획자로 취직했다. 이후 한국에선 <벽돌깨기>라는 이름으로 유명했던 <브레이크아웃>을 출시하는 데 많이 관여했다.
특히 이 게임을 기획하고,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개발을 맡겨 단 며칠만에 게임을 만들어냈는데, 이를 통해 아타리에게 받은 돈 중 극히 일부만을 워즈니악에게 준 일화는 유명하다.
스티브 잡스가 기획한 아타리의 <브레이크아웃>
이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1976년 4월 1일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Ⅱ를 출시해 대성공을 거두면서 PC의 대중화에 앞장선다.
특히 애플Ⅱ용으로 개발된 <울티마>, <윙스 오브 퓨리>, <위자드리>, <레스큐 레이더스>, <페르시아의 왕자>, <마이트앤매직>, <로드런너>, <카라테카>, <킹스퀘스트>, <바즈테일> 등 수많은 게임이 출시되며 게임계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애플은 매킨토시와 애플 리사를 통해 게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와 마우스를 본격적으로 보급했다.
하지만 매킨토시 출시 이후 애플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고 결국 IBM에게 PC 시장의 주도권을 내주면서 잡스는 1985년 애플에서 퇴사, NexT라는 회사를 차린다.
그리고 잡스는 1986년 조지 루카스 감독이 갖고 있던 컴퓨터 그래픽 회사를 1,000만 달러에 인수, '픽사'로 이름을 바꾼 뒤 10년간 6,000만 달러를 투자하며 애니메이션 회사로 탈바꿈시켰고 1995년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공개, 3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둬들인다.
그 사이 애플은 끝을 모르는 추락의 길을 걸었다. 결국 애플은 그가 떠난 지 10년 뒤인 1996년, NexT를 애플이 인수하는 방식으로 다시 그를 불러들였다. 이후 잡스는 아이맥, 아이팟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애플을 서서히 탈바꿈시키기 시작한다.
애플에서 퇴사해 NexT를 경영하던 시절의 스티브 잡스
■ 게임계 생태계를 완전히 바꾼 잡스
잡스는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새로운 플랫폼과 앱스토어를 통해 게임계의 생태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낮은 해상도와 성능으로 한계에 부딪혀왔던 모바일게임이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 애플이 고성능의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터치 스크린, 높은 3D 성능, 항상 연결되어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게임들이 쏟아져나왔다.
아이폰은 모바일게임과 포터블게임, 온라인게임으로 분리되어 있던 벽을 단숨에 허문 것은 물론 소셜게임 발달과 활성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소비자와 개발자의 직거래 장터인 앱스토어를 통해 누구나 저렴한 비용으로 게임을 만들어 올릴 수 있고 무료 혹은 저렴하면서 쉽게 게임을 다운받아 즐길 수 있도록 함으로써 누구든지 대박을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해외에서는 <앵그리버드>라는 초대박 게임으로 인해 소규모 개발사였던 로비오를 유명 업체로 성장시켰고, 국내에서는 <헤비매크>, <팔라독> 등의 소규모 개발 게임이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결국 대형 개발사들도 속속 스마트폰 게임 개발에 뛰어들었다.
특히 개발자의 몫을 높이고 유통자인 애플의 몫은 낮추면서 그동안 모바일게임에서 횡행하던 통신사와 개발사간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렇게 잡스는 게임 기획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스마트폰과 태블릿PC라는 새로운 게임 플랫폼과 함께 개발자 위주의 게임 개발 환경을 만들어줌으로써 게임계의 생태계에 일대 변혁을 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