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는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게임산업진흥법(이하 게임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번 공청회는 내년 1월 22일 시행될 게임법 개정안에 대해 업계 관계자와 의견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를 위해 법무법인 로텍의 이현욱 변호사 등 6명의 전문가들이 게임법 시행령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설명했다. 이어서 실제로 아케이드 게임장을 운영하고 있거나 아이템 중개업을 하고 있는 관계자와 집중토론이 진행됐다.
집중토론의 쟁점은 ‘청소년 이용 게임에 대한 아이템 거래 금지’와 ‘청소년 이용불가 아케이드 게임은 게임을 통해 얻은 점수 또는 결과물 제공금지’ 두 가지였다.
두 조항 모두 새로 신설되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게임법 시행령이 모법을 능가하는 법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집중토론은 팽팽한 신경전 속에 고성이 오가는 등 거친 상황도 벌어졌지만, 광운대학교 권헌영 교수의 진행으로 별다른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왼쪽부터 법무법인 로텍 이헌욱 변호사, 한국게임산업협회 김성곤 국장, 우송대학교 게임멀티미디어학과 교수 및 게임물등급위원회 김창배 위원, 문화체육관광부 이승재 사무관, 국민대학교 법학과 황승흠 교수, 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박태순 겸임교수, 세종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김동현 교수, 광운대학교 과학기술법학과 권헌영 교수.
■ “아이템 거래 금지는 금주법과 같다”
집중토론에서 아이템 거래 중개사이트 IMI의 관계자는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아이템 거래 금지 법안에 반대하는 서명을 했다. 중국은 8,000억 규모의 아이템 거래 중개업체가 상장하는 등 아이템 거래가 하나의 서비스로 인정받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선입견이 박혀 있어서인지 아직도 사업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런 시행령까지 제정해서 막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의 70% 이상은 아이템을 구입한 경험이 없다. 즉 절반도 안 되는 사람들 만이 아이템 거래 중개사이트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게임에서 비롯된 모든 문제가 아이템 거래로 발생했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행정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즐길 사람은 즐긴다. 무조건 술을 막았던 금주법과 무엇이 다르냐”며 시행령을 비판했다.
공청회장 뒤편에는 시행령 개정안을 비판하는 피켓 시위가 진행됐다.
이에 대해 문화부 이승재 사무관은 “아이템 거래는 청소년 보호를 넘는 사회적 문제 보호를 위해 제정한 것이다. 유저가 불법 자동사냥 프로그램으로 월 수익 300만 원 이상 올린다는 민원이 무척 많다. 심지어 자신의 가족 중에 있다고 처벌해 달라고도 한다. 모든 아이템 거래를 막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게임을 망치고 유저들 사이의 관계를 흐리는, 아이템 장사를 업으로 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중개업체와 유저들의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개인 간의 직거래를 인정하고 있는데, 과거에 직거래를 통해 사기를 당하거나 폭력사건이 벌어지고 심지어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전체이용가, 12세와 15세 이용가 게임 역시 성인이 많이 즐기는데 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질문에 대한 문화부의 구체적인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보고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지금 상황만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며 비꼬기도 했다.
개정법 내용을 따지며 목청을 높이는 참석자도 있었다.
■ “점수를 없애면 업주에게 더 유리한 것 아닌가?”
집중토론이 온라인게임 위주로 흘러가자 아케이드게임 관계자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에 공청회장의 분위기는 한때 험악해지기도 했다.
일부 관계자는 사회자인 황승흠 교수에게 아케이드게임과 온라인게임의 공평한 발언기회를 요구하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 차례 소란이 지나간 후 아케이드게임 관계자들은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에 대해 발언했다.
기존의 청소년 이용불가 아케이드게임은 사용자가 게임을 종료하면 점수에 따라 경품을 주거나 차후에 점수를 이어서 할 수 있도록 점수 보관증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번 시행령을 통해 이것이 금지된다.
한 관계자는 “기존에 있지도 않던 법이 시행령으로 생기는 것은 시행령이 게임법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후 12시가 되면 영업을 종료하고 기계를 꺼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뭐라고 답해야 하나? 대응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어서 그는 “<바다이야기> 이후 매스컴을 타지도 않았고, 충실히 법에 따르며 별다른 사건도 없었다. 이제 간신히 정착기에 들어섰다. 그런데 시행령 개정안으로 아케이드게임 업계를 다시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며 한탄했다.
이에 대해 문화부 이승재 사무관은 “게임 과몰입 현상을 방지하고자 게임 점수를 막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시행령은 이미 대통령령으로 발의된 것으로 작년에 미처 넣지 못한 것을 추가한 것 뿐이다. 따져 보면 오히려 점수를 초기화하는 것이 업주들에게 유리한 것 아니냐”고 대답했다.
이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케이드게임 관계자들은 “그걸 말이라고 하는 소리냐”, “그러면 누가 와서 게임을 하느냐” “게임을 해 보긴 하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등 고성과 함께 이승재 사무관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후 극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지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흥분을 참지 못한 한 관계자와 경호원 사이에 가벼운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 “싸운다고 되는 것은 없다, 문화부가 유일한 통로”
고성이 오가며 문화부와 업체 관계자 간에 싸움이라도 날 듯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권헌영 교수가 나섰다.
권 교수는 “확실히 문화부는 업계의 이야기를 안 듣고 자기 멋대로 법을 만든 것 같다”며 청중의 동의를 구하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했다. 이후 그는 “하지만 문화부가 국회에서 우리를 대변할 유일한 통로다. 그들에게 우리의 목소리를 전해야지 화를 푸는 식으로는 아무것도 이뤄지는 것이 없다”며 과열된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이어서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문화부에 우리의 현재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 보호법이나 게임법 개정할 때 어땠는지 기억하는가? 한마디도 못했다. 여성부가 게임을 하면 짐승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쳐도 증거자료 하나 못 내밀었다. 적어도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며 문화부에 힘을 실어줄 것을 촉구했다. 이후 공청회장 분위기는 진정됐고 소란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권 교수의 말이 끝나자 사회자인 황승흠 교수는 “작년에 이런 공청회가 있었으면 청소년 보호법이나 게임법 제정에 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어떤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것 같다. 이번은 처음인 만큼 서로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했지만, 앞으로 공청회를 통해 좋은 대안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며 공청회를 마쳤다.
민감한 상황을 수습하고 나선 광운대학교 과학기술법학과 권헌영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