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게임 개발자가 CIA(미국중앙정보국)로부터 돈을 받고 미국의 정책에 따라 대중을 흔들기 위해 게임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이란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 가족 만나기 위해 이란에 입국했다가 구금
10일 이슬람 혁명 재판소는 “이란계 미국인 아미르 미즈라 헤크마티(Amir Mizra Hekmati, 아래 사진)가 스파이 활동을 하고 선동용 게임을 디자인했다고 자백했다”며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해병대 출신의 헤크마티는 작년 8월 생애 처음으로 가족을 만날 목적으로 이란에 입국했다 구금됐다. 이란의 지역 일간신문 테헤란 타임즈는 그가 CIA의 지시와 자금을 받아 뉴욕에 있는 쿠마 리얼리티 게임즈(Kuma Reality Games, 이하 쿠마)에서 중동의 대중을 조종할 목적의 게임 제작을 도왔다는 사실을 자백했다고 전했다.
헤크마티는 “쿠마는 CIA로부터 자금을 받아 중동의 대중을 선동할 목적으로 무료 영상과 게임을 만들어 배포했다. 이란과 전 세계 사람들이 미국이 다른 나라에서 무엇을 하든 좋은 뜻에서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 쿠마의 목표였다”고 자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동 지역의 대중을 선동하는 게임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은 헤크마티.
■ 이슬람인 암살, 핵 시설 파괴 FPS게임 제작
지금까지 쿠마가 배포한 게임에는 공룡, 폭력배, 제 2차 세계대전 등을 소재로 한 타이틀과 함께 에피소드 형식에 아랍어, 페르시아어, 우르드어와 영어를 지원하는 중동 배경의 무료 1인칭 슈팅(FPS) 게임이 포함돼 있다. 그중에서 <쿠마: 워>는 플레이어가 오사마 빈 라덴과 아부 무사비 알 자카위(알카에다)를 닮은 호전적인 이슬람인을 암살하는 작전 등을 재구성한 시리즈다.
<쿠마: 워> 시리즈 중 <어설트 온 이란>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가진 국가에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다루고 있다. 이 타이틀에서 플레이어는 이란의 핵 시설에 침투해 불법 우라늄 농축 증거물을 입수하고, 인질을 구조하고, 이란의 핵심시설인 원심분리기를 파괴해야 한다.
쿠마의 케이스 하퍼 대표는 “이란에서 수백, 수천 건의 다운로드가 있었다. 우린 터무니없는 실제 미국의 정책을 선동했다며 이란 시아파 지도자 아야톨라(Ayatollah)가 배후로 있는 신문으로부터 맹렬히 비난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로서 실시간 비디오게임의 위대한 힘을 반증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하퍼 대표는 지난 2006년 미군과 훈련용 소프트웨어 개발 계약을 체결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나 CIA가 <쿠마: 워> 시리즈나 쿠마의 다른 타이틀 제작을 위해 쿠마에 자금을 대고 있다는 내용은 밝힌 적이 없다.
무료로 배포된 FPS게임 <쿠마: 워> 시리즈의 한 장면.
■ 사형선고에 놀란 가족, 구명활동 전개
헤크마티는 테헤란 타임즈에 실린 자백 외에도 작년 12월 이란 텔레비전에 나와 CIA의 지시로 이란을 방문했으며, 그의 미션은 이란의 장관급 인사들에게 정보를 주고 신뢰를 얻음으로써 입수되는 정보를 미국의 기관에 넘겨주는 것임을 고백했다.
이란의 뉴스매체 파스(Fars)는 “혁명 재판소는 이란 정부의 전복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것이 전문이며, 헤크마티는 무하레베(Mohareb, 신의 적)를 선고받았다”고 전했다.
무하레베는 이슬람 공화국의 적을 지칭하는 데 자주 쓰이는 용어로, 곧 사형을 의미한다. 헤크마티의 가족은 그가 작년 8월 구금된 이후 면회가 허락되지 않는 등 공정하지 못하고 불투명한 재판을 받았다며 인터넷에서 그의 구명활동을 벌이고 있다.
아미르 미즈라 헤크마티의 가족은 인터넷에서 그의 구명활동을 벌이고 있다.
■ 미국 정부, 이란 정부에 헤크마티의 석방 요구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위원회의 대변인 토미 비터(Tommy Vietor)는 “헤크마티가 CIA를 위해 일했으며, 이란에 보내졌다는 것은 잘못됐다. 이란 정부는 무고한 미국인들을 정치적 이유로 구금하고, 스파이로 몰고, 자백을 강요한 잘못된 재판을 한 전례가 있다”고 밝히는 한편, 이란 정부에 헤크마티의 석방을 요구하고 스위스 대사관의 중재를 통해 그가 합법적인 재판을 받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란은 과거에도 미국인들을 스파이로 의심하고 구금한 뒤 보석금을 받고 풀어준 전례가 있다. 하지만, 이란 정부가 미국 시민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은 3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미국은 이란이 평화적인 목적의 핵 프로그램 개발을 빌미로 핵무기 개발을 감추고 있다며 유럽연합 및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에 적대적 행동을 취한 바 있다.
헤크마티의 사형 판결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네티즌들은 “그의 자백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며 어떤 이유에서든 그가 심각한 상황에 놓인 만큼 미국 정부가 원만히 그의 일을 해결해 줄 것을 기대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