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오는 7월 1일부터 게임물 민간심의가 시작된다고 한다. 하지만 5개월이 남은 지금까지도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다.”
국민대학교 법학과 황승흠 교수는 2일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게임시장미래전략 포럼의 ‘국내 게임산업의 자율등급제도 도입방향’ 강연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지난해 12월 국회 법사위에서는 게임물등급위원회의 등급심의 민간이양이 명기된 게임산업진흥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도 이르면 오는 7월 민간기구에 의한 게임물 자율 등급심의가 이루어진다. (아케이드게임 및 성인용 게임은 제외)
하지만 황승흠 교수는 이번에 통과한 법률이 여러 방향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고, 뚜렷하게 정해진 것도 거의 없기 때문에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주장했다. 황승흠 교수의 강연을 정리했다.
■ 복수의 민간 심의기구가 등장할 수 있다?
7월 1일부터 민간심의가 시작된다는 것은 자격요건을 갖추기만 한다면, 단수가 아닌 복수의 심의기구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는 오픈마켓에 한해 민간 자율심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현재 오픈마켓은 복수의 업체들이 직접 심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게임물등급위원회에 의한 단독심의가 이루어져왔기 때문에, 자칫 업체들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가장 좋은 점은 미국 ESRB나 유럽 PEGI처럼 시장 논리에 의해 소비자들이 특정 기구에 독점적 위치를 부여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 초기 운영자금의 문제와 수수료 인상 문제
민간 자율심의가 시작되면, 과연 초기 설립자금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있다. 이번에 통과된 게임산업진흥법 일부 개정안을 보면 정부가 심의기능을 민간에 ‘이양한다’고 나와 있는데, 이는 정부가 초기자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반면, 정말 정부가 초기설립자금을 댄다면 ‘민간에 이양하는 데 왜 정부가 초기자금을 부담하는가?’ 하는 시비로 불거질 수도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등급분류 수수료의 문제다. 현재 게임물등급위원회는 국고보조를 받고 있지만, 민간으로 심의 기능이 이전되면 100% 수수료로 해당 기구가 운영돼야 한다. 이 경우 오히려 지금보다 등급분류 수수료가 큰 폭으로 뛸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비용절감을 위해 심의과정을 간소화한다면 여성가족부나 다른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심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라며 공격을 당할 위험이 있다.
■ 민간위탁과 제도의 과잉
앞에서도 말했듯 이번 민간 심의기구 발족은 엄밀히 따지자면 완전한 자율규제가 아닌, 정부의 ‘심의기능’을 민간에 위탁하는 형태다. 그나마도 성인용 게임은 7월 1일 이후에도 계속해서 게임물등급위원회가 가져가게 된다.
물론 성인용 게임을 계속해서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심의하도록 하게 한 것은 이유가 있다. 바로 게임물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 아닌, ‘청소년 보호법’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 보호법에 따르면 만약 국가가 성인용 콘텐츠를 심의하지 않는다면, 해당 심의 기능은 여성가족부가 가져간다고 명시돼 있다. 만약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성인용 게임에 대한 심의를 포기한다면, 여성가족부가 해당 기능을 가져가게 된다. 게임업계가 절대로 바라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민간심의기구와 게임물등급위원회가 함께 심의 기능을 나눠가진다는 것은 이중규제 및 제도과잉, 자원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이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 객관성과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사업자에 의한 자율규제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크다. 여성부가 민간 심의기구에 게임업체 참여 배제를 주장하는 이른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는 논리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민간 심의기구가 출범한다면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로 하는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하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할지에 대한 논의가 아직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 문제는 게임물등급위원회가 향후 과도하게 민간 심의기구에 관여할 여지를 제공할 수도 있는데, 민간 심의기구의 지정 및 지정취소에 대한 권한이 바로 게임물등급위원회에 있기 때문이다.
게임물등급위원회만이 아니라 보수적인 청소년·학무보 단체에 의한 과도한 압력과 개입도 우려된다. 그런 만큼 이들에 대한 다양한 안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 게임물등급위원회의 미래는?
게임물등급위원회는 7월 이후에도 성인용 게임에 대한 심의를 진행하게 되며, 또 민간 심의기구에 대한 지정 및 지정취소 기능도 계속 가져가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계속 유지된다고 해도 인력의 감축은 불가피해 보인다.
또 하나 변수는 바로 바로 국고지원이다. 게임물등급위원회는 오는 12월 31일까지 국고지원을 받도록 되어 있는데, 그 후에도 계속 국고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국고지원을 받는 것으로 법을 수정하자면, 또 여러 가지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황승흠 교수와의 질의응답]
Q) 최근 교육과학기술부도 게임물 심의를 하겠다고 나섰다. 어떻게 생각하나?
굉장히 가슴 아픈 일이다. 교과부가 그렇게 나서는 것은 이 시스템을 흔들려고 하는 것이다. 사업자에게 심의기능을 넘기는 것은 믿지 못하겠으니, 정부가 다시 가지고 가겠다는 이야기인데, 설사 진짜로 심의기능을 가져간다고 해도 그들이 직접 심의를 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아 보인다. 아마 또 다른 형태의 민간 위탁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되면 또 여러 가지로 문제가 꼬여버린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현재 주장하는 논리의 핵심은 “게임이 교육에 매우 좋지 못하니 우리가 관리하겠다” 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게임이 교육에 좋은지, 좋지 않은지는 세계적으로 검증된 사례도 없고 아직까지 논란이 많은 사안이다. 게다가 전 세계적인 트렌드를 보면 OECD 가입 국가 중 게임물 민간심의를 하지 않은 국가는 우리나라와 싱가폴 등 극히 일부밖에 없다.
여담이지만 정말로 교과부가 심의 기능을 가지고 간다면, 나는 오히려 여성가족부가 많이 타격을 받게 된다고 본다. 여성가족부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게임물을 청소년 보호법 아래에 두고 심의 기능도 그들이 모두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Q) 민간 자율심의가 시작된다면, 과연 어디에서 심의을 받아야 하는가?
미국의 ESRB를 예로 들면, 미국도 90년대 초에는 성인 게임물에 대한 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서, 결국 소니와 세가, 닌텐도 등 유명 게임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심의기구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등급분류에 대한 신뢰를 쌓고 지금의 단계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이는 업계 스스로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