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는 게임을 즐기면서 여러 가지 선택사항에 부딪히고, 결정을 거듭하게 된다. ‘좋은 게임’이란 결국 유저가 계속 흥미로운 결정을 하게 되는 게임을 말한다.”
<문명> 시리즈의 디렉터로 잘 알려진 피락시스 게임즈의 시드마이어(Sid Meire)는 7일(미국시간)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에서 열린 GDC 2012 키노트 강연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시드 마이어는 “물론 음악 게임이나 퍼즐 게임처럼 ‘흥미로운 결정’이 반복되지 않아도 재미있는 게임은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들은 그 안에서 해야하는 결정이 흥미로운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재미있는 게임, 혹은 재미없는 게임으로 나뉜다”고 주장하며 “그렇기 때문에 개발자들은 항상 이런 ‘흥미로운 결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점을 고려하고, 기획자들이 알아야만 ‘흥미로운 결정’을 만들 수 있을까? /샌프란시스코(미국)=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일반적으로 게임에서 유저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는 ‘위험’과 ‘보상’의 2가지 요소가 따른다. 예를 들어 레이싱 게임에서 속도가 빠른 차는 그렇지 않은 차에 비해 핸들링이 어렵다는 식이다. 검은 상점에서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위험과 보상의 관계가 너무 단순하고, 그 결과가 뻔히 보인다면 그것은 ‘흥미로운 결정’이라고 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흥미로운 결정’은 게임의 상황, 유저의 플레이 성향 등에 따라 위험과 보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매번 재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시드 마이어의 대표작 <문명>의 경우, 처음 시작할 때부터 유저는 어떤 유닛을 먼저 뽑을지 선택해야 한다. 신중한 유저라면 방어 유닛을 먼저 뽑을 테고, 적극적으로 전투를 즐기려는 유저라면 공격 유닛을 뽑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유저가 보유한 자원에 따라, 혹은 기술에 따라 매우 다양한 결과를 낳는다.
게다가 <문명>은 유저의 선택이 바로 영향을 끼치는 요소부터, 처음에는 별 영향이 없다가 중후반부에 그 영향이 커지는 것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것도 유저의 플레이 성향이 그대로 결과로 도출된다. 때문에 게이머들은 게임의 진행상황에 따라 초반, 중반, 후반을 가리지 않고 매번 ‘흥미로운 결정’을 <문명>에서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흥미로운 결정’을 많이 만들었다고 해도, 개발자들이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유저들이 해당 선택지가 가진 ‘위험’과 ‘보상’ 요소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전에 많은 정보를 제공하거나 배려하는 것이다.
만약 유저가 자신이 내린 결정이 향후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면, 이는 게임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안감을 가중시킬 것이다. 이는 결코 ‘흥미로운 결정’이라고 할 수 없다.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지나칠 정도로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래서 게임을 만들 때는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소재’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좀비 게임의 경우, 개발자들이 사전에 어떠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유저들은 좀비가 왜 ‘위험’한지 알고 있다. 피락시스 게임즈가 만드는 게임들은 ‘역사’를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소재이기 때문이다.
한편 ‘흥미로운 결정’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기획자가 다양한 유저들의 성향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 세상은 넓고, 게이머들의 성향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모든 게이머들의 성향을 게임에 반영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가급적 많은 유저들의 성향을 게임에 반영하면 흥미로운 결정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흥미로운 결정이 중요하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밸런스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게임은 계속 결정만 내리는 행위는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복잡한 결정을 너무 많이 내려야 한다면 게이머들은 지칠 수 있으며, 반대로 결정이 너무 단순하다면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자들은 ‘흥미로운 결정’과 게이머들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력과 판타지를 적당히 자극할 수 있도록 밸런스를 맞추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또, 기획자들은 모두 예술가라는 생각을 갖고 자신만의 색깔을 게임에 넣는 것으로 다른 게임에 없는 ‘흥미로운 결정’을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