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사운드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에 정보와 개념 부족으로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번 발표로 조금이나마 소통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넥스토릭 개발본부 박지훈 차장은 24일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에서 ‘게임 사운드를 말하는 방법: 동료들과의 <테일즈위버> 사운드 작업 사례와 함께’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작곡자나 외주 개발자 등 사운드 전문가와, 기획자나 프로젝트 매니저 등 사운드 비전문가는 게임을 만들면서 다양하게 소통한다. 하지만 사운드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 갈등을 겪기도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박지훈 차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디스이즈게임 남혁우 기자
넥스토릭 개발본부 박지훈 차장.
■ BGM과 OST
사운드 제작자의 경우 기획자로부터 샘플이나 의견을 받았는데, 말로 표현은 못하겠지만 맞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이는 서로 객관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개발을 위해 대화할 때는 마치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선택하듯이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하다.
음악을 만들 때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BGM인지 OST인지 파악하는 일이다. BGM과 OST는 비슷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다. 먼저 BGM은 게임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때 사용한다. 예를 들어 그래픽적으로 동굴을 표현하기 어렵다면, 사운드를 통해 보다 동굴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래픽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BGM.
반대로 OST는 이미 그래픽이나 애니메이션으로 충분히 게임의 상황을 표현할 수 있을 때 주로 사용한다. 현재 상황이 아니라, 게임 자체의 코드에 어울리는 음악을 배치해 시너지 효과를 얻는 것으로, 대표적인 게임으로 <베요네타>가 있다.
BGM과 OST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완다와거상>의 경우는 사운드를 통해 게임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한편, 노래들이 모두 게임의 테마에 맞춰 제작됐다. <테일즈위버>는 이미 그래픽만으로도 게임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OST에 초점을 맞춰 음악을 제작했다.
게임 자체의 콘셉트와 분위기에 시너지 효과를 더하는 OST.
박지훈 차장은 “BGM과 OST에 대한 지향점을 찾으려면 사운드팀과 먼저 게임의 비주얼을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사운드를 통해 어떤 부분을 채울지 준비할 수 있고, 그래픽을 보고 게임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도 있는 만큼 그에 맞는 OST를 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코드와 매치, 장르와 스타일
“우리 게임에는 이런 심각한 음악은 안 맞는 듯하네요.”
작곡가는 이런 말을 들으면 혼란에 빠진다. 과연 안 심각한 음악은 무엇일까? 이것은 코드와 매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다.
코드와 매치의 예.
코드는 게임의 정체성을 명사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매치는 코드를 추려낼 수 있는 형용사를 뜻한다. 이 두 가지가 조합되면 콘셉트로 표현된다. <베요네타>의 예를 든다면, 코드는 ‘농염한 절대자’, 매치는 ‘스타일리시, 쿨’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구분해야 할 것은 장르와 스타일이다.
장르는 오케스트라, 피아노, 락 등 연주 방식을 말하며, 스타일은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 고유의 분위기를 말한다. 음악이 옷이라고 한다면 장르는 옷감이고 스타일은 재단하는 방식이다. 즉 옷이라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면 장르와 스타일 모두를 알아야 한다.
특히 작곡가는 장르에 집착하고, 클라이언트는 스타일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필드 음악으로 기타를 연주하는데 신나는 곡’이라고 하면, 작곡가는 수많은 기타 연주곡 중 무엇을 말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어떤 스타일인지도 반드시 함께 말해줘야 한다.
장르와 함께 어떤 스타일인지도 설명해 줘야 한다.
박지훈 차장은 “게임을 개발할 때 내가 요구한대로 기획서를 제공해 주는 기획자가 있다. 매치, 테마. 편곡 등을 모두 객관적으로 표시해주기 때문에 그가 보낸 샘플 곡이 웅장하더라도 그가 요구한 귀엽고 발랄한 느낌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소통이 잘되는 기획서의 예.
이어서 그는 “간혹 내가 만들어야 하는 음악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같을 때가 있다, 그럴 떄는 소통하기도 전에 일이 틀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금 자신이 만들려는 음악이 게임과 맞는지 꾸준히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리얼’과 ‘미디’의 차이가 있다. 리얼은 실제 존재하는 소리를 녹음한 것으로, 보다 사실적인 효과를 위해 사용된다. 미디는 기기를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소리로, 오락실에서 자주 듣는 사운드라고 생각해도 좋다.
박지훈 차장은 “게임 사운드 작곡가에게 리얼인지 아니면 미디인지만 언급해도 절반은 이해한 것인 만큼 확실하게 언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중요한 것은 빠르기가 아닌 리듬
편곡은 게임에 들어가는 음악을 어떻게 조절할지 설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리듬을 바꾸거나, 멜로디 라인을 강조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먼저 분위기는 게임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도록 하는 것이다. 낮과 밤, 또는 걷거나 뛰는 등 상황에 맞춰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리듬은 음의 장단이나 강약으로, 음의 전체적인 느낌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분위기 편곡(낮에서 밤으로 전환)
리듬 편곡
사람들은 주로 빠르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사실 빠르기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빠르게 해달라’는 주문의 뜻은 음악을 보다 신나게 해달라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리듬에 변화를 줘야 한다. 또한 실제로 빠르게 해야 하는 경우는 대부분 소리를 다시 만드는 경우가 낫다.
빠르기 편곡
시퀀스는 음을 반복할지, 새로운 전개로 이어 나갈지를 정하는 것이다. 멜로디는 음의 흐름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강조지, 아니면 조용히 섞여 들어가게 할지 정하게 된다.
시퀀스 편곡
멜로디 편곡
박지훈 차장은 “편곡은 소통의 단절이 일어나는 큰 원인 중 하나다. 특히 ‘신나게’. ‘세게’, ‘꽂히게’ 등 주관적이고 자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단어를 쓸수록 소통에 어려움이 생기므로 되도록 리듬을 말하는 것이 좋다. 또한 MP3 가이드를 사용하면 보다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면 (MP3 가이드는) 오히려 작곡가의 창의력을 제한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모든 편곡을 적용한 예시
■ 볼륨을 무서워 하라
많은 개발자들이 효과음을 적용할 때 특정 효과음이 안 들리니 소리를 더 키워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디지털에서는 0db(데시벨)을 넘어가면 소리가 일그러지게 된다. 또한 소리가 너무 작으면 소리가 일그러지지는 않지만, 최적의 소리에 비해 전체적으로 부족한 느낌이 든다.
최적의 소리는 소리가 일그러지기 직전인 0db에서 -3db 사이로, 이 구간을 ‘풀 헤드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작곡가는 주로 약간의 여유를 위해 -3db에서 최적의 사운드로 균형을 맞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상 소리를 올리면, 0db을 넘어가면서 소리가 일그러지기 시작하거나 사운드카드가 자동으로 넘어간 소리를 제거하기 때문에 오히려 소리가 안 들리게 된다. 한번 사운드를 높인 후 다시 0db 이하로 낮추는 방법을 써도, 이미 한차례 소리가 일그러졌기 때문에 소리를 낮춰도 복구되지 않는다.
볼륨 관리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소리의 통일성에도 있다. 만약 볼륨 관리가 안 된 상태로 계속 개발이 이어진다면, 나중에는 아무리 양질의 소리가 있어도 통일성을 위해 일부러 뭉개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야 겨우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전투 중 앰비언스(주변음)가 들리지 않는다고 볼륨을 높여달라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전투 중에는 공격과 몬스터의 소리에 집중되는 만큼 상대적으로 작은 소리인 주변음은 잘 안 들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것은 스테레오와 모노의 차이다.
한 점에서 일어나는 공격 소리는 모도로 나와야 하고, 공간감을 제공하는 주변음은 스테레오로 연주돼야 한다. 즉 스테레오와 모노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야 꽉 찬 공간감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무조건 볼륨을 높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음역대가 겹쳐서 소리가 안 들리는 경우도 있다. 회복음이나 무기 소리 등 게임에서 존재감이 큰 소리는 대부분 1khz에서 6khz 사이에 있다. 이 사이의 소리가 존재감이 크기 때문이다. 게임에는 워낙 다양한 소리가 존재하는 만큼 1khz에서 6khz 사이에 다양한 음이 존재하게 된다.
즉 음역대가 한정된 만큼 소리의 배치가 무척 중요하다. 만약 1Khz~6khz 사이에서 자신이 원하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면, 그 소리를 키우는 게 아니라 다른 효과음의 음역대 밸런스를 조절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1Khz~6khz 사이보다 음역대가 낮으면 둔탁하고 묵직한 소리가 나는데, 주로 타격음으로 사용된다. 반대로 khz가 높으면 높고 날카로운 소리로 <페르소나>처럼 전자음을 많이 쓴 게임에서 사용된다.
음역대의 차이
박지훈 차장은 “효과음은 자연스러움이 생명이니 음역대를 너무 낮추거나 높이면 부자연스럽다. 그러므로 음역대를 변화시킬 때는 아예 새로운 소리로 바꿔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기획자나 다른 개발자도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적당한 효과음인데도 느낌이 제대로 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소리에 음량의 변화를 주는 ‘엔벨로프’의 문제로, 시간에 따른 소리에 변화를 줘서 더 잘 들리고 효과적인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박지훈 차장은 “게임에는 워낙 많은 소리가 들어가는 만큼 아무리 잘 배치한다고 해도 겹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에는 불필요한 소리를 빼야 한다. 너무 많은 효과음은 귀를 망칠 뿐이다. 소리를 빼는 방법은 이미 모든 소리를 넣은 후 불필요한 것을 하나씩 빼는 것이 아니다. 꼭 필요한 소리만 넣고 제거한 상태에서 하나씩 음을 추가하는 것이 완성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밸런스가 잘 맞춰진 상태에서라면 소리가 조금만 높아져도 주목도가 대폭 올라간다. 이를 위해 -3db의 여유를 남겨두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소리의 밸런스
■ 게임 사운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게임의 사운드가 각각 잘 만들어진 것 같아도 막상 합치고 나면 어떤 부분에서 동떨어진 소리가 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소리의 일관성이 떨어져서 생기는 일이다.
일관성이 떨어지는 소리를 단순히 듣고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신 장르와 스타일 등 지금까지 지켜온 단어와 콘셉트에 부합하는지를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이 좋다.
예로 들면 <테일즈위버>는 미디 계열의 밝고 선명한 사운드로 통일하고 있다. 사실적인 효과를 위해 리얼 음원을 쓰는 것은 오히려 일관성을 떨어트리는 일이 된다.
이 작업은 게임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부분인 만큼 누구든지 한 명은 효과음이 안 맞는 부분을 짚을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온라인게임은 계속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작곡가와 기획자가 지속적으로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박지훈 차장은 “그동안 사운드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에 단어와 개념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서 소통에 많은 불편이 있었던 것 같다. 내 강연을 통해 그 불편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고 더 좋은 게임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며 강연을 마쳤다.
소리의 일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