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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영웅전 최고의 흥행 기록 ‘카이’의 비밀

NDC2012: 마비노기 영웅전 카이 포스트 모템

전승목(아퀼) 2012-04-25 15:13:18

우리들 사이에서는 궁수 캐릭터로 성공하면 ‘21세기 개발자’라고 존경하겠다고 농담 삼아 말했죠. 그만큼 카이를 만드는 데 여러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마비노기 영웅전>(이하 영웅전)은 지난 1월 궁수 캐릭터 카이를 업데이트했다. 카이는 활을 조준해 적을 공격하는 조작과 무빙샷을 할 수 있다는 점, 보스 몬스터 위에 타고 올라가 화살을 꽂는 아크로바틱한 필살기를 쓸 수 있다는 특성 덕분에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카이의 화려한 모습은 <영웅전> 개발팀의 끝없는 고민과 도전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카이가 등장하기까지 개발팀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극복했는지 24일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에서 진행된 강연으로 알아보자. /디스이즈게임 전승목 기자


 

 

 

■ 시작부터 난관이었던 카이 개발

 


구체적인 개발 과정을 소개한 넥슨 라이브2본부 박영준 선임연구원.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나 어떻게 만들지는 막막하기만 하다. 그것이 바로 궁수 캐릭터 카이를 만들어야 했던 <영웅전> 개발팀의 심정이었다.

 

일단 다른 게임의 궁수 캐릭터를 참고하려고 해도 참고할 수 있는 게임이 없었다. 궁수를 내세우는 게임은 많지만, 궁수를 재미있게 만든 게임은 좀처럼 없었기 때문이다. <영웅전> 개발팀은 자력으로 궁수 캐릭터를 기획해야 했다.

 

<영웅전>의 제작툴인 소스 엔진도 문제였다. 소스 엔진은 <하프라이프> 시리즈처럼 1인칭 시점의 게임을 만드는 엔진이다. 유저의 캐릭터를 비춰줄 필요가 없었기에 캐릭터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애니메이션 기능이 취약했다. 그런 소스 엔진으로 3인칭 게임 <영웅전>의 캐릭터 카이를 만드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무빙샷을 개발하는 초기에는 카이가 왼쪽으로 걸어가면서 오른쪽을 보며 화살을 쏠 때 어색한 동작이 나오는 문제를 겪었다. 하체가 향하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상체가 심하게 꺾이는 것이었다.

 


소스 엔진의 본래 기능만으로는 자연스러운 무빙샷 동작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개발팀 안에서 궁수 캐릭터로 성공하면 21세기 개발자라고 존경해주겠다는 말은 이 무렵에 나왔다. 다른 게임에서 참고할 만한 궁수 캐릭터를 찾을 수 없었고, 무작정 만들려니 기술적인 어려움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발팀은 직접 활쏘기를 체험해 보고 소스 엔진을 개조해 가면서 카이 개발을 추진했다무빙샷 구현을 위해 상체 애니메이션과 하체 애니메이션을 설정한 뒤 어색한 동작을 수정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카이의 기본적인 조작 체계를 완성할 수 있었다.

 

카이 개발을 두고 여러 우려가 쏟아졌지만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 옛 아이디어를 참고해 활의 타격감을 살리다

 

자연스러운 무빙샷을 구현한 뒤에는 뒤에는 활의 타격감, 다시 말해 유저가 몬스터에게 화살을 맞췄다는 확신을 주는 신호를 만들어야 했다. 개발팀은 근접전 캐릭터들을 개발할 때 사용한 아이디어를 참조해 활의 타격감을 구현하기로 했다.

 

우선 유저가 몬스터의 어디를 때리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히트 박스 트레이싱기능을 참조했다. <영웅전>은 몬스터의 신체 부분마다 히트박스라는 타격 판정 범위가 설정돼 있고, 무기가 이 히트 박스를 지나가면 그 부분에서 선혈이 튄다. 유저가 몬스터의 팔을 베면 팔에서 선혈이 튀고, 머리를 때리면 머리에서 피가 나는 식이다.

 


파란색 박스로 표시된 무기의 경로가 흰색 박스로 표시된 히트 박스를 지나면 선혈이 튄다.

 

다만 선혈이 튀는 효과만으로는 활의 타격감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멀리 있는 몬스터를 화살로 맞추면 어디에서 선혈이 튀는지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웅전> 개발팀은 화살을 맞추면 몬스터가 멈칫거리는 피격 모션을 넣어볼까 고민하기도 했다. 화살을 맞고 피격모션이 나오면 유저가 화살이 잘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격 모션을 도입하면 카이가 화살을 퍼붓는 동안 몬스터가 움직이지 못하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또 몬스터마다 화살을 맞았을 때의 피격 모션을 새로 만들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문제도 있다.

 

개발팀은 화살이 명중한 부분이 살짝 꺾였다 돌아오는 절충안을 마련했다. 유저가 쏜 화살이 몬스터의 얼굴에 박히면 얼굴이 살짝 옆으로 돌아갔다 되돌아오고, 발에 박히면 발이 바깥쪽으로 살짝 꺾였다 되돌아오는 방식이다. 개발팀은 이를 본 플린칭’이라고 불렀다.

 


타격 부위가 살짝 꺾였다 되돌아오는 본 플린칭 효과는 카이보다 앞서 적용됐다.

 

이와 함께 유저가 자기 화살이 몬스터의 머리에 맞았는지 팔에 맞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몬스터 피부에 화살이 박히도록 프로그램을 짰다. 그리고 몬스터에게 박힌 화살이 잘 보이도록 흰색으로 강조했다. 그 결과, 유저는 자기 화살이 몬스터의 어떤 부위에 명중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화살이 몬스터에 맞았을 때 화살이 살짝 멈췄다가 몬스터의 몸을 뚫고 나가는 역경직, 화살을 강하게 쏘는 스킬 매그넘샷’을 쓰면 화면이 떨리는 효과를 더해 타격감을 강화했다. 역경직과 화면 떨림 효과도 기존 캐릭터를 개발할 때 썼던 아이디어다.

 

 

■ 보다 쉽게, 더 재미있게 활을 쏜다

 

활을 쏘는 동작과 타격감을 해결한 개발팀은 유저가 활을 더 재미있게 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구체적으로 활을 당기는 손맛과 활을 정확하게 조준하는 재미를 주고 싶었다. 다만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 수는 없었고, 현실과 타협해 가며 재미를 살려야 했다.

 

처음에는 활시위를 당겼다 놓는 재미를 살리기 위해 마우스를 뒤로 당겼다 앞으로 미는 조작을 추가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적절히 마우스를 당겼다 밀어주면 화살이 적을 관통해 한꺼번에 두 명을 처리하는 보너스를 주기로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저는 마우스 클릭만으로 원거리 무기를 조작하는 방식을 경험했지, 마우스 자체를 움직여 원거리 무기를 쏘는 경험은 하지 못했다.

 

결국 개발팀은 마우스 버튼을 눌렀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손가락을 떼면 관통 화살을 쏠 수 있도록 변경했다. 그래도 적지 않은 수의 유저들이 마우스를 떼는 순간 활시위를 놓는 손맛이 있어 재미있다고 반응해 손맛을 살리자는 당초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마우스를 당겼다 미는 조작으로 활을 쏘는 방식은 발사 버튼을 클릭하는 방식으로 변경.

 

개발팀은 활을 정확히 조준하는 재미를 살리기 위해 몬스터의 몸에 붉은색 마크를 랜덤으로 그려주기도 했다. 이 붉은색 마크에 정확히 화살을 날리면 보스 몬스터가 비틀거린다. 이를 잘 이용하면 보스 몬스터가 유저나 파티원을 공격하려는 순간, 보스 몬스터의 행동을 취소시키고 반격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유저가 활을 항상 정확히 쏴야만 보스 몬스터를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버리면 일부 유저들이 카이를 플레이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조준사격을 하는 것보다 쉽게 활을 맞추는 것을 더 좋아하는 유저에게 조준사격을 강요하면 ‘공격을 맞추기도 어려운 캐릭터를 왜 하냐’고 짜증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저들도 카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하려면 마우스 클릭만으로 화살이 몬스터에 꽂히는 자동조준 모드를 추가해야 했다.

 

 
자동조준을 원하면 숏보우(왼쪽), 직접 활을 조준하려면 롱보우(오른쪽)를 쓰면 된다.

 

개발팀은 조준사격 모드를 재미있어 하는 유저와 자동조준 모드를 선호하는 유저를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전투 중에 언제든 원하는 모드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활을 접어 숏보우로 만들면 자동조준 모드를 쓸 수 있고, 활을 펼쳐 롱보우로 만들면 조준사격 모드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모드를 변환하는 방법도 간편하다. 활을 접고 펴는 단축키 하나만 누르면 1초 안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개발팀은 활 조준에 능숙한 유저에게는 재미를, 활 조준이 서툰 유저에게는 간편한 조작을 보장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궁수 캐릭터를 만들었다.

 

 

 

 

■ 관심을 끌면서 개발 부담을 덜 주는 액션

 

기본적인 조작 체계와 카이만의 재미는 갖췄다. 남은 일은 유저들이 카이에 관심을 갖고 플레이하도록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카이가 재미있는 캐릭터라도 유저들이 카이에게 눈길조차 안 주면 그 재미를 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개발팀은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면 유저들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엘프 궁수 레골라스가 거대한 코끼리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을 참조해 거대한 몬스터 위에 올라타 강력한 일격을 날리는 스킬 마운팅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개발팀은 레골라스가 코끼리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을 참조해 마운팅을 만들었다.

 

액션이 화려하기만 해서는 곤란했다. 예를 들어 온몸으로 거대한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내는 카록의 힘겨루기스킬은 개발자에게 부담을 준다. 몬스터의 종류와 액션에 따라 일일이 다른 액션을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이의 마운팅 스킬은 어떤 보스 몬스터든 머리 부근에 올라타 강력한 화살을 꽂는 액션을 보여주도록 개발했다. 덕분에 개발자는 보스 몬스터가 새로 나와도 카이의 마운팅 스킬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카록의 전용 스킬 ‘힘겨루기’는 새로운 보스가 나올 때마다 새 액션을 추가해야 한다.

 


카이의 ‘마운팅’은 보스가 새로 나왔다고 해서 따로 액션을 만들 필요가 없다.

 

이처럼 개발팀은 무빙샷을 쓸 수 있다는 개성, 근접무기 못지않은 타격감, 재미와 접근성에 이어 시선을 사로잡는 액션을 갖춰 <영웅전>만의 궁수 캐릭터를 만들었다. 덕분에 카이 업데이트는 최고 동시접속자수, 평균 동시접속자수 증가로 이어졌다.

 

카이 업데이트 후 최고 동접(붉은 선)과 평균 동접(파란 선)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