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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책읽기] 재미의 비즈니스

임상훈(시몬) 2006-09-11 19:15:45

게임과 관련된 책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게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쓴 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쓴.

 

게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쓴 책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게임만 아는 사람이 쓴 것과 게임 너머도 볼 수 있는 사람이 쓴.

 

<재미의 비즈니스-경제학으로 본 게임산업>(책세상, 허준석)은 게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게임을 경제학의 프리즘으로 들여다 본 책입니다. 허준석 씨는 현재 서울대 경제학과 강사인데, 2004년 말 골수 게이머, 게임 제작자들과 작당해 게임문화연구회를 만들 정도로 게임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인물이죠. (사이트 열기 전부터 TIG에 글 좀 써달라고 통사정했는데, 들어주지 않는 점이 좀 밉습니다. ^^;;)

 

개인적으로 허준석 씨에게 놀랐던 경험이 두 번 있습니다.

 

1.

몇 년 전 신문사 다니던 시절, 여러 분으로부터 외부 원고를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유독 허준석이라는 이름은 눈에 확 띄더군요. 교정할 곳이 없어서요. 세세한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맞춤법이 틀린 부분이나 비문이 없었죠. 아는 분에게 물어보니, 초창기부터 루리웹에서 ‘anarinsk’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는데, 통계를 바탕으로 국내 비디오게임 시장을 분석한 글을 써서 많은 분들을 놀라게 했다고 하더군요.

 

2.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전: X박스와 게임의 미래>라는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책이 재미있어서 허겁지겁 읽다가, 뒤늦게 어떤 사람이 이렇게 편하게 읽도록 번역했을까궁금했죠. 그래서 역자 이름을 찾아보니, 허준석이 다시 나오더군요. 그런데 약력에 나온 학력 사항과 번역서 <안토니오 그람시의 단층들>. 대학 시절 시몬에게 그람시를 가르쳐줬던 그 형일 줄이야. 전혀 뜻밖의 공간에서 만난 터라, 그동안 그 이름이 그 사람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던 거죠.

 

 

<재미의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경제학의 외부성’(externality)입니다. ‘외부성이란 쉽게 말해 경제 주체가 고려하지 못한 요인, 혹은 인지 가능하다고 해도 그가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요인 때문에, 이것이 그의 행위나 손익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고 하네요. 콘솔게임에서 보면 게임기의 성능과 상관 없이, 킬러 타이틀이 잘 나오면 그것이 돌아가는 게임기가 잘 팔리는 현상이나, 거꾸로 같은 타이틀이라도 많이 팔린 게임기를 통해 나오면 더욱 잘 팔리는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겠죠.

 

허 씨는 이러한 외부성의 발견, 강화, 확대라는 관점으로 콘솔게임의 전개과정을 차근차근 짚어갑니다. ▲의도하지 않은 독립개발사들의 등장으로 수명을 연장한 아타리의 VCS ▲닌텐도가 처음 실시한 서드파티 타이틀 심사 ▲MS가 따라 한 닌텐도의 퍼스트파티(내부 개발) 강화 ▲플레이스테이션의 CD가 지닌 개발사 편의성 ▲X박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편한 개발툴킷 등은 외부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콘솔게임의 발전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생생한 예들을 제공합니다.

 

외부성은 온라인게임에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게이머는 개발사가 만든 컨텐츠 외에도 유저의 수가 모여야 게임을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다양한 플레이 방식이 출현할 뿐만 아니라 아이템 거래의 가능성도 커지게 되니까요.

 

이 책은 이외에도 아이템 현금거래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 흥미로운 세가지 주제를 담은 '보너스 스테이지' 등을 제공합니다. 4,900원에 이런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레벨 낮은 몬스터 두드리다, 레어 아이템을 얻은 셈이랄까요.

 

다만 부제로 삼은 '경제학으로 본 게임산업'은 이 책의 최고 약점입니다. 그냥 술술 읽히는 책에 이런 부제를 잡아놨으니, 저 같은 독자들이 미리 겁먹으면 어떡합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