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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블소 홍문파 막내가 ‘노인’이어도 괜찮은 이유

배재현 ‘차세대 온라인게임이란 무엇인가’ 키노트

현남일(깨쓰통) 2012-07-25 15:41:17

차이나조이 2012 개막을 하루 앞둔 25일, 중국 상하이 케리호텔에서 부대행사로 ‘중국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China Game Developers Conference, 이하 CGDC)가 열렸습니다. 올해는 <블레이드 & 소울>의 개발을 총괄한 엔씨소프트 배재현 프로듀서가 기조연설을 맡아 주목을 받았습니다.

 

‘차세대 온라인 게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한 배재현 프로듀서는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에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특성을 예측하고, 다음 세대 유저들을 위해 지금 개발자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을 설명했습니다. /상하이(중국)=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 배재현 프로듀서가 말하는 시점에서 강연을 정리했습니다.

 

엔씨소프트 배재현 개발총괄 프로듀서.

 

 

■ “이미 온라인게임의 주류는 ‘캐주얼 게이머’

 

본격적으로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해둬야 할 말이 있다. ‘차세대 온라인게임이 무엇인지’를 예측하거나 맞히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강연할 성질의 내용이 아니고, 섣부르게 예측할 수도 없다. 만약 내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아마 지금 주식투자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웃음)

 

그저 이 강연은 한국인 개발자인 내가 하는 다음 세대 온라인게임에 대한 고민을 가볍게 풀어내는 자리라고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차세대 게임. 그리고 그 차세대 게임을 즐기게 될 다음 세대 게이머들은 누구일까? 이에 앞서 생각해볼 것은 바로 지금 세대 게이머들의 특성이다.

 

현재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특성을 살펴보면 기존의 하드코어 게이머들과는 시작점부터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누구나 FPS라는 장르를 확립한 게임이 <둠>과 <퀘이크> 시리즈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대부분 두 게임을 즐겨봤으며, 아마 ‘내인생의 첫 FPS게임’으로 둘 중에 하나를 꼽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게이머들의 절대 다수는 ‘내 인생의 첫 번째 FPS게임’으로 <둠>이나 <퀘이크>가 아닌 <서든어택>을 꼽는다. 중국이라면 아마 <크로스파이어>를 꼽지 않을까?

 

MMORPG 역시 마찬가지다. 보통 MMORPG의 시작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울티마 온라인>이나 <에버퀘스트>를 꼽지만, 현재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MMORPG를 즐기는 유저들 중 저 두 게임을 즐겨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던전앤파이터>를 첫 번째 RPG로 꼽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렇듯 지금 세대만 보더라도 온라인게임 시장의 주류는 게임을 많이 즐겨온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아닌, 이슈가 되는 게임을 찾아 처음 게임을 접한 캐주얼 게이머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게이머들의 평균 연령이 38세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하드코어 마니아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적어도 한국과 아시아 시장에서는 아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게이머들 역시 지금과 마찬가지로 ‘캐주얼 게이머들’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해볼 수 있다.

 

 

 

■ “유저들의 선택을 제한해도 괜찮다”

 

유명한 게임 개발자인 시드 마이어는 게임에 대해 ‘게임은 의미 있는 선택의 연속이다’고 정의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실제로 유저들은 게임을 하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온라인게임, 특히 MMORPG는 지금까지 유저들에게 그 ‘선택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접근성을 짰다. 가령 <아이온> 같은 게임을 보면 수많은 스킬과 스킬바를 제공해 유저들이 화면 곳곳에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것이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온>은 수많은 스킬을 배치하다 보니 스킬바가 한 화면에 7개~8개 이상 배치되고, 고려해야 하는 스킬의 숫자도 그만큼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겼다.

 

하드코어 게이머들에게는 좋은 요소일 수도 있지만, 캐주얼 게이머 입장에서 보면 정말 지나치게 어렵다. 게임을 한 번 접었다가 복귀하고 싶어하는 유저들에게도 기존에 해왔던 것을 ‘복습해야’ 한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게 된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스킬바를 제공하는 <아이온>(위)

11개 정도의 스킬만을 한 화면에 표시하는 <블레이드 & 소울>(아래).


최근 시장에서 주목받는 게임을 보면 오히려 유저들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디아블로 3> 같은 경우 스킬의 숫자는 많지만, 유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의 수는 10개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블레이드 & 소울> 또한 다양한 스킬을 제공하지만, 전투의 상황에 따라, 연계의 상황에 따라 한 화면에 표시되는 스킬의 숫자는 11개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도 챔피언당 한 번에 쓸 수 있는 스킬은 6개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유저들의 선택을 제한하는 게임들이 오히려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인기 순위 상위권에 올라 있다. 초보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게임을 즐기는 것도 부담이 없다. 그런 만큼 다음 세대의 온라인게임들 또한 유저들의 선택을 계속 제한해 나가는 방향으로 게임이 설계될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배재현 개발총괄 프로듀서의 강연을 듣기 위해 중국의 많은 게임업계 관계자들이 모였다.

 

 

■ “기존 장르의 문법은 의미가 없다

 

<서든어택>으로 FPS게임을 시작하고, <던전앤파이터>로 RPG를 처음 즐긴 캐주얼 게이머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바로 ‘기존 장르의 문법’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MMORPG의 경우 하드코어 게이머들이나 게임 개발자들은 ‘캐릭터 메이킹’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한다. ‘이 캐릭터는 세계관에서 이런이런 역할이 있기 때문에 외형은 어때야 하고, 복장이나 게임 속 행동거지는 어때야 하고…’ 같은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 ‘제약’을 건다.

 

하지만 캐주얼 게이머들은 이에 대해 전혀 제약을 걸지 않는다. 캐릭터는 그저 자신을 표현하는 또 다른 수단일 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그저 게임을 즐긴다.

 

<블레이드 & 소울>은 무협을 소재로 하지만, 무협 외에도 판타지적인 요소를 게임 속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블레이드 & 소울> 같은 경우에는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의 폭이 넓다. 유저들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미소녀부터 추녀,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때로는 ‘홍문파 막내’가 사형들보다 지나치게 늙은 노안이 될 수도 있고, 이는 일부 유저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현재 게임을 즐기는 유저 중 이에 대해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블레이드 & 소울>의 모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면, 자기 자신의 캐릭터 사진을 올리거나 게임을 공략하는 것보다 자기의 ‘실제 사진’을 올리고 함께 게임을 즐길 유저들을 찾거나 게임과 관련 없이 자유롭게 어울리는 유저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이렇듯 캐주얼 게이머들은 ‘게임’과 ‘장르의 문법’ 등에 얽매이지 않고 정말 자유롭게 게임을 즐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경향은 다음 세대가 된다고 해도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블레이드 & 소울>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캐릭터 남소유. 하지만 그녀가 하는 행동을 보면 무협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라 막장 드라마 속 캐릭터를 보는 것 같다. 이렇게 <블레이드 & 소울>은 기존 문법에 얽메이지 않고 게임을 설계했다.

 

결론을 내리자면 미국이나 일본 같이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시장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 아닌, 한국이나 아시아 게임시장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앞으로 형성할 게이머들은 신세대라고 할 수 있다.

 

젊고 장르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도 없다. 당장 지금 하고 있는 RPG가 태어나서 처음하는 RPG인 게이머들도 많고,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RPG인데 대전격투 게임 같은 액션을 바라는’ 욕심 많은 유저들도 많다.

 

이런 유저들을 기존에 확립된 ‘장르의 규칙’으로 만족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앞으로 게임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서는 기술적인 면이나 비즈니스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게임을 ‘소비하는’ 게이머들에 대한 분석을 게을리하지 않고 그들이 과연 무엇을 좋아할지 파악하는 것도 정말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