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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잔인한 게임오버가 몰입감을 높여준다”

게임문화 컨퍼런스 ‘게임연구&비평’ 2일차 종합

아퀼 2012-08-29 11:06:36

디스이즈게임이 주최하고 NNH, 다음한빛미디어, 연세디지털게임교육원이 후원하는 게임문화컨퍼런스 '게임연구&비평'의 2일차 발표는 게임 비평이 주를 이뤘다.

 

2일 차에는 성공한 게임과 비난을 받는 게임의 특성을 살펴봤다. 비평 대상은 <림보>, <슈퍼 미트 보이> <디아블로 3>다. 아울러 <프리스타일>에서 하드코어 유저가 흑인을 주로 선택하는 특이한 현상과, 익명성이 보장된 게임에서도 사회적 성역할이 요구되는 현상에 대한 분석도 발표됐다. /디스이즈게임 전승목 기자

 


 

 

■ 인디게임 비평의 새로운 도전 

 

인디게임 스튜디오 터틀크림의 박선용 대표는 덴마크 인디 게임 <림보>가 다른 게임과 달리 죽는 장면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림보>에서는 물에 빠진 주인공 소년이 마지막 공기 방울을 토하며 가라앉는 장면을 끝까지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톱니에 걸려 소년이 산산조각이 나는 장면이나 거미에게 잡혀 먹히는 장면도 여실히 나타난다. 주인공이 죽는 장면을 간략히 표현하는 대중적인 게임과는 정반대다

 

흥미로운 점은 잔인한 게임 오버 장면이 게임에 더 몰입감을 준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거닐다 악몽 같은 게임 오버에 이르지 않도록 플레이어가 애쓰게 되기 때문이다. 게임 오버의 충격적인 연출이 도리어 게임의 성공에 기여한 셈이다.


LIMBO – 깨고 싶지 않은 악몽을 발표한 터틀크림의 박선용 대표.

 

한편 인디게임 전문웹진 피그민(Pig-min)의 김진성 대표는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며 게임을 만드는 것은 좋지만, 사업적인 성공을 하려면 팔리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했다. 이 주장의 근거로 <슈퍼 미트 보이>의 개발자 에드문드 맥밀렌의 사례를 들었다.

 

에드문드 멕밀렌은 괴팍한 개발자다. 그가 2004년에 개발한 게임 <기쉬>(Gish)에는 끈적거리는 타르덩어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일반적인 개발자라면 밝은색의 슬라임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법한데, 그는 주인공의 색을 검고 칙칙하게 표현하는 고집을 부렸다. 2009년에는 주인공이 토하면서 이동하는 게임 <스푸어>(Spewer)를 개발해 귀여운 캐릭터로 그로테스크한 게임을 만드는 자신의 개성을 과시했다.

 

정작 그가 성공한 것은 자신의 개성이 덜 드러난 게임 <슈퍼 미트 보이>를 출시한 뒤였다. 이 게임은 주인공 고깃덩이가 지나간 곳에 시뻘건 육즙이 남는다는 설정 외에는 기괴한 점이 없다. 도리어 대중적으로 팔릴 수 있는 게임에 가까웠다.

 

이 대중적인 게임이 100만 장 이상 판매된 뒤에야 그로테스크한 게임이 팔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슈퍼 미트 보이> 이후 개발한 <더 바인딩 오브 아이작>은 비대중적인 소재를 다뤘는데도 50만 장씩 팔렸다. 김진성 대표는 이를 두고 팔리는 게임을 만들어야 원하는 게임을 꾸준히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슈퍼 미트 보이는 성질 죽이고 만든 걸작을 발표한 피그민의 김진성 대표.
 

 

■ 유저의 믿음 저버리면 대작의 이미지도 추락한다

 

게임이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게임 자체의 재미도 중요하지만 유저의 믿음에 부응해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블리자드가 개발한 <디아블로 3>가 대표적인 예다.

 

출시 당시만 해도 <디아블로 3>는 큰 기대를 받았다. 개발사 블리자드가 그동안 다른 게임과 차별화되는 시도를 해왔고, 유저들의 의견을 헤아리는 태도를 보여 블리자드가 만든 것은 다르다는 인식을 줬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디아블로 3>는 동시 접속자 43만 명, PC방 최고 점유율 39%를 기록하며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디아블로 3>를 기대했는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출시 이후 <디아블로 3>는 기대와 다른 행보를 걸었다. 1달 동안 서버 문제가 없는 날이 이틀에 그칠 정도로 서버 상태가 좋지 않았고 해킹으로 아이템을 잃었다고 호소하는 유저들이 늘어만 갔다. 동시에 정작 불지옥 난이도에서는 체력과 공격력만 높을 뿐 새로움이 없는 몬스터가 나오고 지나치게 어렵다는 불만도 나타났다.

 

유저들은 블리자드니까 어떻게든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블리자드는 그러지 못했다출시하고1주일 동안 11번의 서버점검으로도 접속이 안 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접속 오류가 나타난 지 3주가 지났는데도 서버 배송과 구축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점을 설명하며 이해를 구할 뿐이었다.

 

동시에 불지옥 난이도가 너무 어렵다는 지적을 수용하긴 했지만 불만을 해결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몬스터를 약화시키긴 했지만 플레이어의 공격속도를 낮추고 아이템 수리비를 올리는 패치를 동시에 한 바람에 여전히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유저들이 원하는 서버 환경 개선과 불지옥 난이도 수정은 서비스 1달 동안 이뤄지지 않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유저들과 원활히 소통한다는 블리자드의 이미지는 <디아블로 3> 때문에 깨지고 말았다. 이 때문에 1,000만 장이 팔리고도 <디아블로 3>가 유저들한테 망한 게임이라는 비난을 받는 현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1,000만 장 팔린 게임이 왜 욕을 먹을까?를 발표한 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 <프리스타일2> 고수들은 왜 흑인 센터를 선호할까?

 

JCE FS 사업부 김성기 과장은 자신이 게임을 잘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하드코어 유저는 흑인 캐릭터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일단 농구에서 흑인이라고 하면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등의 전설적인 선수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또한 흑인 캐릭터의 기본 패션은 웃통을 벗고 근육질의 몸매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유저들은 기본 셔츠를 입고 있는 황인이나 백인보다 흑인이 강해 보인다는 인상을 받았고, 자신을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하드코어 유저들은 흑인을 주로 선택하게 됐다.

 

잘하는 유저들이 흑인을 선택하게 되자, 흑인 캐릭터가 다른 인종보다 2배에서 5배는 높은 승대비 점수를 기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흑인 캐릭터는 고수라는 인식이 유저들에게 퍼졌고, 흑인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만으로 유저의 게임 실력을 다른 사람에게 과시할 수 있게 됐다. 캐릭터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우리는 왜 흑인 센터를 선호하는가?를 발표한 JCE의 김성기 FS사업부 과장.
 

 

■ 게임에도 남녀 구별이 있다?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과의 박사 과정 중인 안선영씨는 유저가 게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남자는 남성스러워야 하고 여자는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구분법, ‘젠더 렌즈가 게임 콘텐츠에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게임 캐릭터 생성창에서는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성 캐릭터와 S라인의 여성 캐릭터가 기본으로 주어진다.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없는 게임의 유저라면 게임에서 강조하는 성향의 캐릭터를 유저가 무조건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 캐릭터가 자신의 성향과 전혀 다르더라도 말이다.

 

더 나아가 게임에서 다수의 유저들이 소수의 성을 차별하고 제약하는 상황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성 유저가 여성 유저들이 주로 하는 아기자기한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 하자. 성별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여성 유저들과 함께 어울리지만 남성이란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에 빠질 수 있다. 성별이 알려지기 전과 똑같은 행동을 해도 저 사람은 남자인데 왜 저렇게 행동하지?” “이상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적인 게임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여성이 FPS게임이나 PvP가 치열한 MMORPG를 가르쳐달라고 하면 여자가 왜 이런 게임을 하니?” “넌 이 게임 못해라는 핀잔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게임을 그만두거나, 유저들과 어울리기 위해 자신의 성향과 안 맞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일부러 공격적이고 거친 행동을 한다든지, “오빠 아이템 주세요” “사냥 도와주세요와 같이 과도한 여성성을 보이며 남성적인 유저들과 어울리는 상황을 예로 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게임에서의 젠더 구분 때문에 유저가 게임을 즐기지 못하거나, 자신의 성향과는 다른 행동을 하도록 강요받는 처지에 몰린다는 것이 안선영씨의 주장이다. 강연은 더 많은 유저가 다양한 게임을 즐기도록 하려면 젠더의 구분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접근하고, 다양한 상상력으로 게임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젠더는 왜 게임이용의 기준이 되는가?’를 발표한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과의 박사 과정의 안선영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