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강해지는 미디어 규제에 대해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19금과 청소년 문화 - 미디어 규제 정책 진단과 새로운 방향 모색’ 토론회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신경민 의원실 주최로 6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게임, 만화 등 대중문화에 대한 규제현황을 점검하고 보다 바람직한 대중문화 정책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게임문화제단과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회가 후원한 이번 행사는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우형진 교수의 발표와 게임·음악·영화·만화·방송계 인사들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 “규제 아래에서는 제 2의 강남스타일도 없다”
우형진 교수는 ‘바람직한 청소년 문화를 위한 미디어 규제 환경 재고’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각종 범죄에 대해 대중문화 매체가 원인으로 지적받은 사례를 들며 대중문화에 대한 주류 언론의 부정적인 인식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정말 대중문화가 각종 흉악범죄의 원인일까? 우 교수는 각종 통계를 예로 들며 각종 인식을 부정했다. 언론에서는 게임이나 웹툰 등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살이나 학교폭력에 물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결손가정과 같은 환경적 요소들의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
우 교수는 이런 규제 환경 아래에서는 어떤 창의적인 문화도, 새로운 한류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노홍철의 ‘저질댄스’나 여성의 둔부를 강조하는 장면 등 심의기준 상으로는 걸고 넘어질 요소가 많다. 만약 최근 시행된 ‘뮤직비디오 사전등급 심의제도’가 ‘강남스타일’에 적용됐다면 공개 50일 만에 1억 번 조회, 빌보드 소셜 차트 1위 등의 성과는 없었을 것이다.
우 교수는 청소년 보호 못지않게 표현의 자유 또한 중요하다며, 이 모두를 살리는 방법으로 민간 자율규제 시스템을 제안했다. 현재 실시하고 있는 정부 주도의 규제는 표현의 자유와 문화의 창의성 확보와 충돌한다. 반면 민간에서 100% 자율규제를 하면 실효성의 우려가 있다. 때문에 그가 구상하는 새로운 시스템은 민간이 자율적으로 콘텐츠를 규제하고, 정부는 이를 조율하고 받쳐주는 모델이다.
그는 “이를 위해서 콘텐츠 생산자는 물론 가정이나 시민사회, 종교단체의 적극적인 참여, 청소년과 학부모를 위한 올바른 미디어 교육, 그리고 이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발표를 마쳤다.
■ “규제를 위한 규제 대신 목적에 걸맞는 정책을 바란다”
우 교수의 발표 뒤에는 게임·음악·영화·만화·방송계 인사들의 토론이 진행됐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김성곤 사무국장은 “게임계는 최근 잇따라 제정된 규제 정책으로 인해 자율규제를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러한 규제의 연쇄는 오히려 기업을 법만 따르면 된다는 식으로 무기력하게 만든다”며 현행 게임 규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만화 <전설의 주먹>을 그린 이종규 작가는 미국의 ‘초인만화’가 규제로 인해 쇠퇴하다 재기한 것을 예로 들며 규제가 강할수록 문화산업이 활기를 잃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자율규제협의체를 만든 웹툰계의 결정을 반기며, 자율규제협의체 설립이 끝이 아니라며 창작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업계 차원에서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김성곤 사무국장(왼쪽)과 이종규 작가.
방송 분야를 대표해서 나온 미디어전략연구소의 천명재 정보분석팀장은 현행 방송등급제도를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시청연령을 15세로 설정한 것을 예로 들며, 등급을 기준으로 하는 제재가 시청자에게 바른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등급 시스템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화 <도가니>가 다룬 장애학생 성폭행이라는 소재가 과연 성인만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인가. 보호대상을 외면한 보호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더그루브엔터테인먼트의 황동섭 대표(왼쪽)와 천명재 정보분석팀장.
다큐멘터리 영화 <새로운 학교> 등을 제작한 오정훈 감독은 청소년 보호정책을 만들 때 정작 청소년 의견 수렴 과정은 없었다며, 진정 청소년을 위한 정책이라면 수립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의 의견을 듣지 않은 정책은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불신만 안겨준다. 정책을 수립할 때 청소년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정훈 감독(왼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