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400만 장 이상 판매, 총 7,000년에 달하는 온라인 협동 플레이 시간, 다운로드 콘텐츠 구입률 50%. 작년 11월 출시된 오픈월드 좀비액션게임 <데드 아일랜드>의 기록이다. 이 게임은 좀비물이 대중화되지 않은 국내에서도 비공식 한글패치가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도대체 어떤 요소들이 게임의 흥행을 이끌었을까?
<데드 아일랜드>를 만든 테크랜드(TECHLAND)의 안드리안 치셰브스키(Andrian Ciszewski)는 8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KGC 2012 ‘데드 아일랜드 - 새로운 경험으로의 긴 여정’ 강연에서 게임의 성공요인을 공개했다. 독특한 근접전 시스템, 누구나 꿈꾸는 남국의 휴양지라는 배경, 그리고 굳건한 철학에서 비롯된 개발이 핵심이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경쟁작에는 없는 특성을 부여하라
<데드 아일랜드>는 개발사 테크랜드가 이전에 개발했던 1인칭 서부극 <콜 오브 후아레스>에서 시작됐다. 테크랜드는 전통적인 액션 어드벤쳐 게임에 <새벽의 저주>와 같은 정통 좀비물을 결합했다. 게임의 프로토타입이었던 <아일랜드 오브 더 리빙 데드>의 탄생이다.
하지만 움직임이 굼뜬 좀비를 단순히 각종 화기로 유린하는 것은 유저에게나 개발자에게나 큰 메리트가 없었다. 그렇다고 최근 경향인 달리고 뛰는 좀비를 대거 투입하는 것은 게임의 콘셉트와 맞지 않았다. 개발진은 고민 끝에 다른 좀비게임에서는 보기 힘든 근접전 요소를 첨가하기로 결정했다. 내부에서는 프로젝트 명칭도 <하프라이프>의 주인공 고든이 크로우바(일명 빠루)로 좀비를 때려잡는 것 같은 게임을 만들자며 <하프라이프 아일랜드>로 변경했다.
근접액션을 구현하면서 개발진이 신경 쓴 것은 몰입감과 난이도였다. 몰입감은 1인칭이라는 시점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캐릭터와 유저의 시야가 동일한 1인칭은 화려한 맛은 부족한 대신 유저가 캐릭터가 된 것 같은 몰입감을 선사하기에 적합하다.
<데드 아일랜드>는 이러한 몰입감을 민감한 조작성과 사실적인 카메라 워크로 강조했다. 상대의 복부를 때리면 허리를 굽히고, 칼을 휘두르면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 등의 사실적인 타격 이펙트도 몰입감을 배가시키는 요소였다.
“우리는 게임이 아니라 유저가 직접 상황을 컨트롤하기를 원했습니다.” 안드리안은 <데드 아일랜드>의 액션을 설명하며 이같이 덧붙였다.
■ 유저가 꿈꾸는 경험을 제공하라
최초의 <데드 아일랜드>는 좀비가 가득한 섬에 불시착한 사내가 잃어버린 아내를 되찾기 위해 나서는 모험을 그린 게임이었다. 모나지 않은 무난한 스토리였지만 결정적인 무언가가 부족했다. 바로 유저들을 충족시킬 ‘환상’이었다.
“유저는 자신의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게임을 합니다.” 안드리안은 리뷰는 좋지 않더라도 판매량은 높았던 게임 몇몇을 소개하며 이 같이 말했다. 일례로 <버스 드라이버>는 단순한 차량 시뮬레이션 게임이지만 북미와 유럽에서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다. 최신 게임들에 비하면 단조롭게 보이기까지 하는 이 게임이 흥행한 이유는 ‘버스 운전사’라는 유저들의 어린 시절 꿈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데드 아일랜드> 개발진은 유저들의 환상을 충족시키고자 게임의 배경을 정글이 무성했던 무인도에서 파라다이스와 같은 남국의 휴양지로 바꿨다. 누구나 고급스러운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이를 체험할 수 있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개발진은 이런 유저들의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단순히 해변이나 리조트만 배회해도 만족할 수 있게끔 ‘파라다이스’를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누구나 선망했던 경험을 구현해 관심도와 몰입도를 배가시킨 셈이다.
<데드 아일랜드>는 좀비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달라진다. 좀비가 없거나 멀리 있다면 의도적으로 우거진 녹음과 투명한 바다를 부각시켜 평화로운 분위기를 어필한다. 하지만 유저의 시야에 좀비가 들어오면 게임은 갑자기 선혈이 낭자한 어두운 생존물로 변화한다. 파라다이스와 죽음(좀비)의 대비는 유저들에게 게임의 인상을 강하게 각인시키는 효과도 가져왔다. <데드 아일랜드>라는 타이틀이 확정된 것도 이 시기였다.
■ 개발 철학을 포기하지 말아라
“개발을 하다 보면 게임에 많은 변화가 생깁니다. 변화가 나쁘진 않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일관되게 변화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최초에는 자유도가 적은 선형 게임이었던 <데드 아일랜드>는 개발 도중 개발자들의 요청으로 현재의 오픈월드 게임으로 변화했다. 기술적인 문제로 포기했던 요소가 몰입감과 환상 충족이라는 게임의 개발 철학에 의해 부활한 셈이다. 물론 오픈월드 게임의 모든 조합들을 선형 게임처럼 짜임새 있게 구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게임의 퍼블리셔가 확정되면서 당초 싱글게임으로 기획됐다가 협동게임으로 달라지기도 했다. 스토리라인과 레벨 디자인을 모두 다시 해야 했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오픈월드와의 충돌이었다. 온라인 플레이 중 동료가 갑자기 방에 들어오거나 나가는 것은 어떻게 구현해야 할까? 방 안의 모든 유저는 같은 미션만 해야 할까? 모두 오픈월드만 포기하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개발진은 게임엔진을 바꾸는 강수까지 두면서 오픈월드를 포기하지 않았다. 개발 철학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 세계에서 400만 장이 넘게 팔린 게임의 탄생이었다.
안드리안은 마지막으로 “열정적인 팀이 있었다는 것이 게임 개발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며 개발자의 열정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
현재 테크랜드에 내년에 나올 신작 <데드 아일랜드: 립타이드>를 개발 중이다. 원작에서 나온 주인공 4명의 생존 후 이야기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