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를 주고 대비를 통해 강조해야 합니다.”
9일 한국국제게임컨퍼런스(KGC) 2012에서 슬래지헤머 게임즈의 조셉 살루드 아트디렉터가 강연을 했다. 그는 인기 FPS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3>(모던 워페어 3)의 아트 디렉터를 맡으면서 어떻게 긴 플레이 시간 동안 새로운 이미지를 지루하지 않게 제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다른 매체에 비해 게임은 장시간 이어지는 만큼 꾸준히 새로운 이미지와 색을 통해 지루함을 해소하고 사실적인 연출로 감정을 이입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스이즈게임 남혁우 기자
■ 진짜 그 곳에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라
<모던 워페어 3>는 프랑스 파리 전투 장면이 있었기 때문에 개발팀은 지형을 만들 때 유저에게 최대한 파리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개발팀은 단순히 파리에 갔을 때 건물의 배경사진만 찍지 않았다. 파리의 지형, 파리의 음식, 파리의 주요 컬러 등을 포착하며 마치가 진짜 파리에 사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통해 파리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마치 파리의 한 지형인 듯한 맵을 만들 수 있었다.
<모던 워페어 3> 개발진이 파리를 취재하며 찍은 사진들.
모은 자료를 통해 만든 파리의 이미지.
조셉 살루드는 “맵을 실제 지역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파리에 익숙한 유저가 파괴된 모습을 본다면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게 되고 더 게임에 몰입하게 된다. 맨하튼도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만큼 여기가 파괴되면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반응할 것을 예상해 이를 중요하게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그렇다고 지형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게임의 구조나 플레이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파리의 이미지.
■ 대비와 빛을 통한 연출, 색도 중요
게임은 플레이 시간이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비해 훨씬 길기 때문에 감성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유저를 몰입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 특히 <모던 워페어> 시리즈는 현대전을 다루는 FPS게임이기 때문에 액션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했다.
예를 들어 물속에서 잠수함으로 침투하는 장면에서는 잠수함의 거대함을 표현하려고 했다. 이 장면은 영화 <스타워즈>에서 거대 전함인 디스트로이어가 천천히 지나가는 장면을 차용해 바닷속 연출을 만들었다.
이미지를 보면 물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거대한 잠수함에 가려져 물속에 전체적으로 큰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드리워진 그림자와 밝은 빛을 대비시켜 잠수함의 크기를 강조하고 답답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한 잠수함과 사람 그리고 물고기만으로 화면을 구성해 잠수함이 얼마나 거대한지 확인할 수 있도록 표현했다.
색과 크기의 대비를 통해 잠수함의 거대함을 표현했다.
무대가 수중에서 벗어나 물 위로 올라가면 스케일이 한층 더 방대해진다. 떠오른 잠수함 주변에는 거대한 항공모함과 전함이 있고, 멀리 보이는 건물이 연기와 화염으로 뒤덮여 있다. 구성이 복잡한 이 장면에서는 가까운 곳을 어둡게, 먼 곳을 밝게 대비시켜 간결하면서도 더욱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연출했다.
먼 곳(밝은 색)과 가까운 곳(어두운 색)의 대비로 극적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게임에서는 색 역시 중요하게 작용한다. 월스트리트가 파괴된 장면을 만들었을 때 구도나 연출, 빛 등 거의 모든 요소가 완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이 바로 색이었다.
초기에는 푸른 기운이 도는 붉은 색인 마젠타 계열로 이미지를 표현했다. 전체적으로 아름답기는 했지만 전쟁 폐허에는 어울리지 않는 색이었다. 이를 자연광으로 채색하자 대조효과가 더 강해지면서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느낌을 살릴 수 있었다. 반대로 보다 어두운 색으로 채색했을 때는 마치 세계 종말이 온 것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조셉 살루드는 “지루함을 없애고 끊임없이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모던 워페어 3>의 진행차트에 따라 이어지는 미션의 맵이 겹치지 않도록 지형을 바꾸고 그에 따라 자주 사용하는 색도 변경했다. 이를 통해 미션을 진행해 나갈 때마다 항상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모던 워페어 3>의 시나리오 흐름에 따라 색이나 지형이 겹치지 않도록 구성했다.
■ 무조건 세밀하게 만들기보다는 전체가 중요하다
게임 진행 중 맨하튼이 공격당한다는 내용이 있다면 사람이 도망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도망치다 신발이 벗겨지고,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차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오고, 먼지가 날리는 등 수천 명의 행인이 대피하는 것 자체가 이야기가 된다.
<모던 워페어 3> 개발진은 먼지가 어디에서 생긴 것이고 건물이 파괴된다면 어떻게 부서질지 등 매우 세밀한 단계까지 연출했다. 이를 위해 지형 모형을 부수기도 하고 군사 관계자에게 자문도 받았다. 창문가에 사물을 두지 않고 문에 바리케이트를 치는 등 전쟁 중 방안의 모습을 꾸며 보기도 했다.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 때도 수많은 검증과 표현이 들어간다.
조셉 살루드는 “하지만 디테일하다고 해서 무조건 세밀하게 만들라는 것은 아니다. 인상파인 모네의 그림을 보면 디테일이 느슨해 보이지만 탁월한 빛의 표현과 연출로 전체적으로는 매우 높은 디테일을 보여준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텍스처 하나로만 봤을 때는 단순해 보일 수 있어도 전체적으로 높은 완성도의 그래픽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나는 거시적으로 훌륭한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팀이 새롭게 꾸려지고 처음 이 엔진을 다뤘음에도 1년 만에 이런 결과물(모던 워페어 3)을 만들 수 있었던 우리 팀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강연을 마쳤다.
세부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전체적으로 뛰어난 디테일을 보여주는 모네의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