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사는 쉽고 빠르게 다음 게임을 개발해서 돈을 벌기 위해 속편을 만든다. 전작에서 비슷한 게임을 만든 경험이 있고, 전작에서 아쉬움도 남아 있고, 이를 활용한 비즈니스 방법도 알고 있다. 이미 게임을 만들어 본 개발사에게 속편은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하지만 정말로 속편이 쉽고 빠르게 성공적인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일까? <네이비필드>의 개발사인 에스디엔터넷의 정승호 개발실장은 ‘아니’라고 말한다. 손쉬워 보이기만 했던 속편 제작과정에는 의외의 함정들이 널려 있었고, 함정에 제대로 빠진 에스디엔터넷은 <네이비필드 2>의 개발에서 2년이 넘는 시간을 허비했다.
‘알고도 당한다’는 온라인게임 속편 개발의 함정은 무엇일까. “특히 한풀이를 조심하라”는 정승호 개발실장의 KGC 2012 강연을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속편을 만드는 계기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처음부터 속편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는 것과 <터미네이터>처럼 예상외의 성적을 거둬서 속편 개발에 착수한 경우다. 한 게임을 최소 몇 년 동안 서비스하는 온라인게임에서 미리 속편을 염두에 두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후자다.
언뜻 보면 속편 개발에는 많은 이득이 뒤따르는 것 같다. 일단 전작을 만들어 본 숙달된 개발자들이 있고, 같은 게임을 몇 년 동안 만든 만큼 해당 장르에 대한 노하우도 깊다. 당장 <네이비필드> 개발팀만 해도 ‘해상전 하나는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비즈니스도 쉽다. 전작의 흥행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설득력이 있다.
개발자로서는 전작에서 쌓인 한도 풀 수 있다. 라이브 서비스를 하면서 시간에 쫓겨 만들지 못한 콘텐츠, 처음부터 잘못 쌓았던 프로그램, 오래된 유저와 신규 유저들의 격차까지. 모든 것들을 속편에서는 극복할 수 있다. 정확히는 그럴 것 같아 보인다. 속편 개발의 장밋빛 미래다.
하지만 정작 개발을 시작하면 숨겨진 함정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부분들이 알고 보면 함정인 식이다. 숙달된 인력들은 지난 4~5년 동안 예전 기술로 만든 프로젝트를 예전 기술로 다듬던 사람들이다. 하루하루가 바쁜 그들이 새로운 기술을 배울 틈은 없다. 결국 그들이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데 시간과 자금이 소요된다.
풍부한 경험도 독이다. 전작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는 한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에스디엔터넷은 <네이비필드 2>에서 전작의 복잡한 조작을 굉장히 쉽게 바꿨고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면 PC도 못 켜는 사람일 것’이라는 농담도 나왔다.
그런데 지난 8월, 유럽에 <네이비필드 2>를 처음 선보이는 자리였던 독일 게임쇼 ‘게임스컴 2012’ 첫날에 기자나 업계관계자들 중 <네이비필드 2>를 제대로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결국 개발팀은 다음날 긴급패치를 통해 조작법을 다시 한 번 뜯어고쳤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해결할 수 있다. 숙달된 인력의 함정은 약간의 시간과 상황에 맞는 외부 프로그램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네이비필드 2>도 전작의 자체엔진을 버리고 상용엔진인 게임브리오를 택했다. 쓸데없는 시간낭비를 막기 위해 스케일폼 등의 미들웨어도 사용했다.
풍부한 경험의 함정은 외부자극과 자기반성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게임스컴의 사례도 좋은 자극의 예다. 빠지기 쉬운 만큼 꾸준히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만 아예 극복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간혹 정치적인 충돌을 겪는 경우도 많다. 회사에 오랫동안 일한 인력들이 저마다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탓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회사마다 상황이 달라서 조언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꼭 속편에서만 나오는 문제도 아니다.
속편 개발의 가장 큰 문제는 ‘한풀이’다. 개발자들은 전작을 서비스하는 동안 유저들의 불만을 듣게 된다. 그리고 속편에서는 그것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왜냐? 새 프로젝트니까. 실제로 <네이비필드 2>를 개발할 때도 전작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자는 의견은 대부분 묵살됐다. ‘다 알잖아’, ‘그건 고치기 쉽잖아’. 게임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차라리 새로운 프로젝트라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빠른 개발이 장점인 속편 제작에서 모두가 당연히 알고 있다는 것을 논의하는 건 모두 시간이 아깝다고 판단했다. <네이비필드>가 어렵다 보니 쉽게 만들자는 건 모두 동의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쉽게 만들지는 의논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은 마니악한 장르라고 모두 동의했지만 그것을 어디까지 희석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쾌적한 플레이 환경을 만들자면서 얼마나 많은 유저를 받아야 할지 고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런 것에 대한 논의를 금기처럼 여겼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정작 빠른 속편 개발만을 떠올리던 당시에는 아무도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게임 개발에 대해 잘 모르는 직원은 비주얼스튜디오가 아닌 파워포인트 같은 걸 열고 있으면 싫어했을 정도다. 속편 개발의 가장 큰 함정에 빠진 것이다.
‘동상이몽’도 문제다. 같은 게임이라도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다 다르다. 그래서 개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평이다.
원래 비평은 게임개발을 어느 정도 진행한 후에 나온다. 게임의 디테일한 부분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기린에게 뒷발차기 공격을 준다고 할 때만해도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진 않지만 정작 해당 공격을 만들고 나면 ‘기린은 목이 특징인데 왜 목이 아닌 발로 공격하냐’고 비평이 쏟아지는 식이다.
그런데 속편은 다르다. 전작이 있고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만큼 초기부터 디테일한 비평이 많이 나온다. 함포의 이펙트가 어떻다느니, 배의 속도가 어떻다느니…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부분에 대한 비평이 쏟아지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결정하기 위해 개발 시작부터 진을 뺐다.
그렇게 <네이비필드 2>의 첫 프로토타입이 나왔을 때 모두 같은 의문이 들었다. ‘이게 재미있나?’ 그나마 금전적으로 버틸 수 있던 상황이었고,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사이였으니 망정이니 아니라면 당장 프로젝트가 부러졌어도 할 말이 없었다.
문제를 겪은 이후에는 해결책을 위한 고민을 떠올렸다. 결론은 ‘비전’이었다. 한풀이와 디테일에 빠져서 거기에 집중하느라 프로젝트 전체를 아우르는 뼈대에 소홀했다. 시간이 없을수록 프로젝트에 대한 정의가 더 많이 필요했는데 정작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했다.
그래서 <네이비필드 2> 개발팀은 비전부터 다시 세웠다. ‘전략성이 넘치는 해전게임’을 만들자는 비전이다. 유저의 컨트롤 비중이 엄청났던 전작과 비교해 전투는 유지하되 컨트롤의 비중을 조금 줄이고 대신 전략성을 극대화하자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예가 잠수함이다. 전작 <네이비필드>에는 잠수함이 없었다. 그래서 <네이비필드 2>에 잠수함을 넣는 게 한풀이었다. 다들 의견을 내놨는데 잠수함은 잠망경으로 밖을 보고 조준해서 쏘는 게 매력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네이비필드 2> 스크린샷(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전략적인가? 고민해 보면 그건 아니다. 전략은 주변상황의 파악이 필요한데 1인칭 시점에서는 전략성이 있는 현장감을 주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아쉽지만 비전으로 인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다.
유저 수준에 따른 단계별 함선도 비전에 맞춰 수정됐다. 전작 <네이비필드>의 수직적인 함선 등급을 <네이비필드 2>에서는 물고 물리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함선을 고르는 재미를 주기 위해 유저가 최대 3척의 함선을 이끌고 나갈 수 있도록 했고, 함선의 교대방식을 고민하다 거점의 개념도 넣었다. 모두 전략적인 게임을 만든다는 간단명료한 비전 아래에서 나온 일이다.
정승호 실장은 “속편은 개발자의 한풀이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에스디엔터넷은 <네이비필드 2>의 개발기간 5년 중 절반 가량을 속편의 함정에 빠져서 보냈다. 그때 날린 비용만 수십 억 원에 달한다. 비용 이외의 후유증도 아직까지 남아 있을 정도다. 차라리 속편이 아닌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편이 나았을 수도 있다.
그 역시 직접 속편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설마 저런 일이 진짜 생길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직접 만드는 입장이 되자 2년 넘게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특히 가장 심각한 개발자의 한풀이와 비전의 부재는 속편이라는 테두리 속에서만 나오는 현상이다. 그만큼 속편을 개발할 때는 아무리 단순해 보이는 일이라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고 속편이 아닌 새로운 게임을 만든다는 기분으로 개발하라는 것이 정승호 실장의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