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국내에 정식 출시된 <소녀는 하늘로 떨어졌다 / GRAVITY RUSH>(이하 그라비티 러쉬)는 중력이라는 독특한 콘셉트와 PS3에 버금가는 뛰어난 그래픽으로 많은 게이머의 관심을 사로잡은 타이틀이다. 일부 게이머는 <그라비티 러쉬> 때문에 PS Vita를 사겠다는 농담마저 할 정도로 이 신규 IP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었다.
대형 개발사들 조차 기존 IP를 재활용하기 바쁜 마당에 신생 IP인 <그라비티 러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게임의 개발자이자 소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토야마 케이치로(外山 圭一郞)는 10일 KGC 2012에서 ‘GRAVITY RUSH의 제작 과정 되돌아보기’란 강연을 통해 게임의 성공요인을 공개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가냘픈 원더우먼? 중력술사 캣이 사랑받은 까닭
“게임의 재미요소와 아트워크, 그리고 흥행성. 이 세 가지만 확고하면 게임 기획의 반은 끝난 것과 같습니다.”
토야마 케이치로 디렉터는 자신의 개발철학을 이렇게 소개했다. 예를 들어 <그라비티 러쉬>는 중력이라는 콘셉트, 프랑스의 만화가 뫼비우스 느낌의 화풍, 그리고 신규 플랫폼 PS Vita의 기능을 십분 활용한 게임이라는 요소로 기획됐다.
특히 아트는 토야마 디렉터가 이번 작품에서 가장 신경쓴 부분 중 하나였다. 그동안 <사일런트 힐>, <세이렌> 등 공포게임을 주로 만들었던 그는 이전부터 뫼비우스의 화풍을 동경해 그런 색감과 부유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프랑스 만화의 화풍은 아시아 유저들에게 생소했기에 조정이 필요했다. 그 결과가 바로 프랑스 만화 풍 배경과 일본 애니메이션 풍 캐릭터였다.
특히 게임의 주인공 ‘캣’은 그의 오랜 고민이 녹아 있는 결과물이다. 기획 초기 캣의 디자인 핵심은 ‘이국적, 아메리칸 코믹스, 닌자’였다. 이는 이전에 성공했던 여성 주인공의 게임들을 분석한 결과였다.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와 같은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이국적이고 강한 여성이라는 특징을 가졌다. 캣의 이국적인 용모와 초인(아메리칸 코믹스)적인 능력은 이러한 궁리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강한 여성 캐릭터는 게이머의 감정을 투영하기 적합한 캐릭터가 아니다. 토야마 디렉터는 게임 속에서 게이머와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캐릭터를 원했다. 캣이 평상시 보여주는 귀여운 행동과 중력술사의 힘을 얻기 위해 더스티(캣의 고양이)와 하는 합체(?)는 이를 위한 장치였다. 친근감있지만 실제로는 괴물을 무찌르는 원더우먼이라는 모순을 부수기 위해 파트너인 더스티에게 힘의 원천을 준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성공적이어서 캣은 또래 소녀다운 발랄함과 무시무시한 괴물을 무찌르는 초인이라는 상반된 특성을 충돌 없이 보유할 수 있었다. 덕분에 유저들도 캣의 능력과는 별개로 평범한(?) 주인공이 게임 속에서 인정받아 가는 과정을 자신의 일처럼 공감할 수 있었다.
■ PS Vita 속에 PS3 게임을 집어넣어라
PS3에 버금가는 그래픽을 보여주는 <그라비티 러쉬>는 사실 PS3 타이틀로 기획된 타이틀이었다. 하지만 PS Vita 출시를 앞두고 있는 소니는 Vita의 성능을 십분 알릴 수 있는 킬러 타이틀이 필요했고, 혈기 넘치던 개발팀은 최신 플랫폼의 게임을 가장 먼저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에 끌렸다. 그 결과 <그라비티 러쉬>는 PS Vita용 타이틀로 변경됐고 출시 후 뛰어난 그래픽으로 화제가 됐다. 물론 두 사실 사이에는 개발팀의 파란만장한 고생담이 숨어 있었다.
테스트 기기가 주어졌지만 개발의 어려움은 여전했다. 테스트 기기 특성상 완전한 하드웨어 스펙을 알 수 없었고 안정성 또한 떨어졌다. 사실 그때까지는 신규 플랫폼의 인터페이스를 테스트하는 기기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개발이 원활히 진행됐던 것은 윈도우 버전의 존재 때문이었다. 개발팀은 <그라비티 러쉬>의 PS3 버전 이후 PC 컨버전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PC 버전을 동시에 개발하고 있었다. 이는 PS Vita로 개발방향이 선회한 후에도 계속됐다. 당시에는 테스트 기기의 수량도 충분치 않았고, 안정성 또한 낮았기에 윈도우 버전은 게임을 테스트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고생 끝에 <그라비티 러쉬>는 PS3의 그래픽과 성능을 유지한 체 PS Vita용 타이틀로 탄생할 수 있었다. 토야마 디렉터는 이러한 공을 포기할 줄 모르는 개발팀에게 돌렸다. 그는 “개발팀 모두 끝까지 단념하지 않고 쫓아와 주었기에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작품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다”며 청중들에게 개발을 할 때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 팀원을 능동적으로 만들어라
토야마 디렉터의 개발팀 예찬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그는 “능동적인 개발팀의 분위기가 오늘 날의 <그라비티 러쉬>를 만들었다”며 자유로운 팀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처음 개발팀을 꾸리며 한 일은 조직을 수평적 조직으로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드라마 촬영장에도 조명, 연출, 액션 등 각 요소별로 책임자가 있듯이, 게임 개발에서도 구성원 모두가 자신이 맡은 영역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길 원했다.
이를 위해 토야마 디렉터가 한 일은 팀원들의 책임분야를 다른 직무와 조금씩 겹치게 느슨히 배치한 것이었다. 책임분야를 겹치게 한다는 것은 얼핏 그의 의도와 동떨어져 보였지만, 그 효과는 반대였다. 팀원들은 자신이 맡은 영역에 주인의식을 가졌고, 다른 분야의 팀원과도 활발히 의견을 나누며 팀 내에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됐다.
다만 이러한 수평적 구조와 자유로운 분위기는 팀원들이 모두 공유하는 확실한 콘셉트와 비전이 있을 때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만약 각 팀원들이 게임의 목적이나 콘셉트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면 통일되지 않은 작업들이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올 뿐이다.
토야마 디렉터는 “다양한 개성이 모인 것이 우리 팀이었고, 팀은 곧 자랑할 수 있는 게임이 되었다. 팀원들의 자유로운 아이디어와 적극적인 참여에 감사한다”며 강연을 끝마쳤다.
다음은 KGC 2012 현장에서 만난 토야마 케이치로와의 일문일답니다.
TIG> 자이로센서를 적극 활용한 중력액션이 인상적이다. 어디서 모티브를 얻었나?
토야마 케이치로: 좋아하는 만화가 중 프랑스의 뫼비우스라는 작가가 있다. 그의 작풍은 하나같으 부드러운 색감과 가벼운 부유감이 특징이다. 그동안 공포게임만 개발했었지만 마음 속으론 언젠가 이와 같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그러던 중 신작을 기획하면서 뫼비우스의 작품처럼 도시에 소녀가 떠있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것이 <그라비티 러쉬>의 시작이다.
TIG> 게임은 중력조종이라는 요소 때문에 상하개념이 희박하다. 다른 게임을 디자인했을 때와 달리 게임의 세계를 구현했을 때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다.
일반적인 게임의 배경은 보기에 멋지고 아름다우면 해결된다. 하지만 <그라비티 러쉬>는 어디든 캣이 발을 딛을 수 있어야 되고, 어디든 이동할 수 있어야 했다. 특히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을 조정하는데 애를 먹었었다. 캣이 중력을 조종하면 벽도 달릴 수 있는데, 만약 건물과 건물 틈이 캣의 키보다 좁으면 오픈월드라는 게임의 특색이 무색해지지 않는가?(웃음)
TIG> 자이로센서를 이용한 조작이 참신하다. 혹시 이러한 조작체계를 플랫폼이 확정되기 전부터 고려하고 있었나?
최초 기획부터 자이로센서를 이용한 조작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스타일로 확정된 것은 수많은 유저테스트를 거친 후다. 새로운 조작체계를 구상할 때 중요한 점은 자신의 감각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개발자의 느낌과 유저의 느낌은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꾸준한 테스트를 통해 피드백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라비티 러쉬>는 조이스틱과 자이로센서, 터치를 같이 사용하는 게임이다. 때문에 컨트롤 방식 사이의 균형을 테스트 중 눈여겨보았다. 특히 새로운 기능인 자이로 센서와 터치에 신경을 많이 썼다. 새로운 기능이다 보니 조이스틱 조작 중 터치를 요구하는 식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었다. 다행히 테스터 분들의 피드백 덕분에 출시 전에 이런 실수들을 줄일 수 있었다.
TIG> 개발자로서 잘된 점과 아쉬운 점을 꼽자면?
<그라비티 러쉬>는 중력이라는 소재 덕분에 독특한 이동법을 특징으로 한다. 유저 분들이 이 부분에 좋은 반응을 보여줘서 기뻤다. 내 아이처럼 디자인했던 캐릭터들이 호평을 받은 것도 뿌듯했다. 다만 게임이 끝나도록 밝혀지지 않은 복선이 많이 남았던 것은 개인적으로 무척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TIG> 게임을 즐겼던 몇몇 이들은 해소되지 않은 복선을 후속작의 암시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혹시 후속작을 계획하고 있는가?
지금 시점에선 어떤 것도 확정지어 말할 수 없다. 다만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유저들이 기대하는 만큼 개발자로서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