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들이 게임의 미래에 대해 논하는 행사가 11일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렸다.
매일경제신문에서 주최하는 ‘세계지식포럼’이 올해 최초로 게임 관련 세션을 개설했다. 게임문화재단의 운영으로 진행된 이번 세션은 해외 유명 게임학자와 사업자들이 모여 게임의 트랜드와 미래에 대해 논하는 자리였다.
■ 게임은 도구,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
이번 행사는 2개의 발제와 패널토론으로 진행됐다. 그중 패널토론에서 한국 주류사회가 게임에 대해 갖는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 다뤄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토론의 주된 내용은 게임이란 ‘도구’는 좋고 나쁨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었다. 패널들을 어떤 문화 콘텐츠든 좋은 면과 나쁜 면이 공존하는 만큼 게임 또한 선악을 논하기보단 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에 참석한 패널들. 오른쪽부터 사회자 찰스 스펜스 교수, 패널 제임스 그워츠먼 대표, 제스퍼 줄 교수, 이안 보고스트 교수.
뉴욕대학교 게임센터의 제스퍼 줄 초빙교수는 “모든 엔터테인먼트는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문화콘텐츠 자체의 선악을 논하지 말고 어떻게 이를 유용하게 쓸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양질의 문화 콘텐츠가 생산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팝캡게임즈 아시아태평양의 제임스 그워츠먼 대표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놀이(game)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과거의 놀이는 아이들을 건강하게 하고 뛰어나게 교육시키는 도구였다”며 게임을 무작정 비판하기보다는 그에 걸맞는 쓰임새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지아공과대학교의 이안 보고스트 교수는 “사람들이 게임이 몰입하는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사람들이 게임이란 엔터테인먼트에 몰입하는 현상만 보지 말고, 그 이유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와 함께 기성세대의 게임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모의 게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아이들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그들에게 올바른 콘텐츠 소비·활용법을 조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속에서 한국 게임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게임의 종류와 목적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진이 기록과 추억, 보도 등 다양하게 쓰이는 것을 예로 들며 게임 또한 엔터테인먼트라는 좁은 스펙트럼에서 벗어나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게임, 더 넓게 일상으로 접근하라
2개 세션으로 진행된 행사의 발제는 놀이라는 틀을 벗어나기 시작한 게임에 대해 논하는 시간이었다. 이안 보고스트 교수는 게임이 놀이라는 좁은 틀어서 벗어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안 교수는 게임 관계자들이 게임의 위상에 대해 흔히 사용하는 기법을 비난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관계자들이 ‘놀이’라는 편협한 시야 속에서 타이틀의 판매량이나 매출, 게이머의 수 만을 말해서는 사람들에게 게임의 진정한 모습을 알리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처럼 현재 게임은 단순히 놀이를 벗어나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아메리카 아미>라는 게임은 미군의 군사교육용 소프트웨어로 쓰이고 있으며, <킬러 플루>라는 게임은 독감예방 용도로 개발됐다.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게임은 이제 게임이 아니라 스포츠의 영역에 이르렀다.
이안 교수는 “이러한 예시들처럼 게임은 이미 일상으로 다가와 있으며, 더욱 더 대중에게 퍼져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렇게 대중에게 받아들여져야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 스스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청중들에게 “게임이 언제 예술의 영역에 이를 수 있느냐고 묻지 말고 어떻게 게임을 더 넓게 활용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라”고 주문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 잘못 설계된 ‘게임화’는 파탄을 가져온다
제스퍼 줄 교수는 사회 곳곳에 스며들기 시작한 ‘게임화(게이미피케이션, gamification)’ 적용의 주의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게임화란 점수나 목표 같은 게임의 재미요소를 일상에 활용해 대상의 방문율이나 업무효율 등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이다. 이러한 게임화는 일반적으로 점수와 목표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특정한 판매수나 마일리지를 달성하면 보상을 줘 대상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빠져들게 하는 식이다.
측정 가능한 수치와 보상이라는 요소 덕분에 게임화는 사람의 동기를 강하게 자극시키는 장치다. 하지만 대상의 관심이 점수와 목표에만 쏠리기 쉽기 때문에 잘못 설계된 게임화는 파탄을 가져올 수 있다. 일례로 워싱턴 뮤츄얼 은행은 대출실적을 바탕으로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다 무분별한 대출로 부도가 나고 말았다. 직원들이 성과에 눈이 멀어 고객의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대출을 해줬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스퍼 교수는 게임화를 적용함에 있어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실은 게임보다 복잡한 관계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잘못 구성된 시스템은 위의 사례처럼 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때문에 게임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 기획자는 설계된 시스템이 과연 조직의 목표와 대상의 목표를 일치시킬 수 있는지 끝없이 검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