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이라면 한 번쯤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결제로 속상한 일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바일 콘텐츠 관련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행사가 개최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2012 콘텐츠 분쟁조정 세미나’가 20일 서울 강남 르네상스 호텔에서 열렸다. ‘모바일 오픈마켓 환경과 콘텐츠 분쟁 이슈’라는 주제로 개최된 이번 행사는 모바일 콘텐츠 소비에 있어 의도하지 않은 결제 환불 등 소비자 권익에 대한 문제를 다룬 자리였다.
■ “업체들이 아날로그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박상천 교수는 ‘스마트 시대의 콘텐츠 유통’이라는 발표를 통해 스마트 시대의 이중성과 모바일 콘텐츠 유통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스마트 환경은 시장을 공급자 중심에서 이용자 중심으로 변화시켰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플랫폼 홀더들에 의해 암암리에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현재의 스마트 환경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발달된 통신환경,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커뮤니티 플랫폼 등으로 인해 같은 기기라도 사용자 간 개성이 극대화됐고, 피처폰 시절에 비해 사용자의 주체성이 크게 늘었다. 과거 일률적으로 주어진 기기로 주어진 환경에서만 콘텐츠를 소비했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서 여전히 네트워크·플랫폼 사업자에 의해 통제되는 사용자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사용자들의 이동경로나 콘텐츠 구매 기록 등의 정보는 사업자들이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으며, 이렇게 얻은 데이터는 소비 촉진을 위해 저장·활용되기도 한다. 아직 현실화되진 않았지만, 사람들의 모든 정보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빅브라더’의 탄생도 의심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복잡해진 모바일 콘텐츠 유통환경도 사용자를 힘들게 하는 요소다. 현재의 모바일 콘텐츠는 오픈마켓과 앱, 그리고 앱과 앱이 연동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콘텐츠 개발업체는 오픈마켓에 콘텐츠를 출시하고 유저는 오픈마켓에서 이를 구매한다. 이 과정에는 다시 OS 제공업체, 통신사, 결제 대행사,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 홀더도 관여해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한다. 나서서 책임지는 곳이 없기에 환불이라도 받으려면 관련 업체 모두에 전화해도 모자라다.
박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업자들이 진정한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대부분의 사업자들이 스마트 시장에서 아날로그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 시대엔 이용자 중심의 정책이 지속가능경영의 핵심 전략이다”고 강조하며 발표를 마쳤다.
■ 분쟁의 65%가 모바일, 모바일의 95%가 환불요청 사례
서강대학교 게임교육원 이재홍 교수와 한국무선인터넷산업연합회 최동진 경영기획본부장은 모바일 콘텐츠의 분쟁현황과 지원책, 그리고 앞으로의 개선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먼저 이 교수는 ‘모바일 오픈마켓 콘텐츠 분쟁현황과 주요 이슈’라는 발표를 통해 현재 모바일 콘텐츠 시장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콘텐츠 분쟁 조정 사례의 65%가 모바일 콘텐츠 분쟁이며, 모바일 콘텐츠 분쟁의 95%가 환불 관련 사례다. 이러한 환불 사례에는 의도하지 않은 결제나 사용자가 알지 못하는 과금 발생, 결제내역 확인 불가 등의 사례들이 포함돼 있었다. PC 온라인의 조정 사례 1위가 사용자 이용제한 해제(33%)인 것을 감안하면 극명한 대비다.
이 교수는 이 수치를 PC 온라인 업체와 모바일 업체의 노하우 차이로 진단했다. 상대적으로 역사가 오래된 PC 온라인은 사회적 통제와 축적된 노하우로 분쟁 해결 장치를 구축하고 있지만, 모바일 업체는 역사도 짧고 통신사와 개발사 등의 책임 주체가 불분명해 이러한 분쟁이 더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국가는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을까? 최 본부장은 ‘오픈마켓 모바일콘텐츠 결제 관련 이용자 보호대책’이라는 발표에서 이를 막기 위한 현행 제도를 소개했다. 올해 7월부터 시행된 ‘오픈마켓 모바일 콘텐츠 결제 가이드라인’은 ▲ 유료 콘텐츠 포함 여부 명시 ▲ 결제 완료 이전 추가적인 인증절차 추가 ▲ 결제 시 SMS나 이메일을 통한 과금내역 고지 ▲ 월별 요금상한제 실시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조치가 모바일 콘텐츠 분쟁을 100% 막는 것은 아니라고 경고했다. 일례로 현재 결제창에서 바로 인증번호를 표시하는 모바일 콘텐츠 구매의 OTP(일회용 암호) 방식은 PC 온라인과 모바일의 환경의 차이를 도외시한 시스템이며, 현행 결제한도액 또한 사용자들의 통신요금에 비하면 큰 금액이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픈마켓에 대한 신뢰성 회복과 콘텐츠 분쟁 처리 기준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중계업체의 보다 강한 책임 vs 더 많은 정부지원 필요
이날 행사에서는 3개의 주제발표 외에도 정부, 학계, 업계, 시민단체를 대표하는 이들이 나와 모바일 콘텐츠 분쟁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토론은 크게 오픈마켓 중계자의 책임을 중시하는 입장과 이에 공감하면서도 중계자의 어려움을 이해해 달라는 입장으로 나뉘었다.
선문대학교 고형석 교수는 모바일 오픈마켓 중계업체의 책임을 강조한 입장이었다. 그는 판매자들이 자율적으로 규칙을 조율했던 온라인 오픈마켓과 달리 모바일 오픈마켓은 중계자의 규칙이 일차적인 법과 같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이렇게 강한 영향력을 가진 중계업체가 앞장서야만 분쟁이 없어지고 시장도 공정해진다”며 오픈마켓 중계업체들의 책임을 강조했다.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국장도 고 교수와 의견을 같이했다. 그는 결제에 관해서는 현재 많은 부분 발전이 이뤄졌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선 오픈마켓의 정보제공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대부분의 앱은 유료 콘텐츠 여부나 추가적인 결제 확인 등의 절차는 양호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업자 연락처나 환불방법의 안내는 미흡한 편이다. 윤 국장은 이러한 예를 들며 중계업체들의 보다 많은 정보제공을 요청했다.
SK플래닛 김인환 매니저는 국내 오픈마켓 중계업체 모두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더 나은 이용자 중심 환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 스토어 같은 해외업체는 한국업체와는 다른 법규를 적용받기 때문에 시장 공정성에 우려가 있다. 정부기관에게 공정한 시장환경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부탁했다.
게임빌 이경일 개발이사는 자녀 등 제 3자 결제와 같은 문제와 블랙컨슈머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업체보다 사용자의 인식변화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그는 “작년에 설립된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의 업무가 소비자의 권익 보호 뿐만 아니라 콘텐츠에 관련된 저작권이나 특허까지도 확대돼야 한다”면서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의 더 넓은 지원을 요청했다.
오픈마켓 업체들의 이같은 요청에 공정거래위원회의 박정현 사무관은 올해 하반기엔 콘텐츠 분쟁과 관련해서 관련 부처들 사이에서 보다 광범위한 분야의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콘텐츠 분쟁 뿐만 아니라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해외업체에 대해서도 UN과 공조할 계획이라며 더 나아질 콘텐츠 분쟁 조정 업무에 대해 예고했다.
박 사무관은 “모바일 콘텐츠와 관련해 규제가 늘어나는 것은 소비자의 피해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가 늘어날수록 국내 업체들의 부담이 심해질 수밖에 없으니 업체의 자율적인 규제와 정화가 필수적이다”며 관련업체의 자발적인 도움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