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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월급보다 복권이 더 좋다? 게임개발심리학

심지원 배경아트팀장의 블루홀 개발자 컨퍼런스

김승현(다미롱) 2013-03-21 11:06:57

"게임은 유저만을 위한 가치를 만드는 콘텐츠고, 심리학은 그런 유저(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다. 심리학을 앎으로써 개발자는 보다 효과적인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블루홀 스튜디오의 심지원 배경아트 팀장은 블루홀 개발자 컨퍼런스(이하 BDC)에서 이렇게 말했다.

 

블루홀 스튜디오는 지난해부터 내부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블루홀 개발자 컨퍼런스(이하 BDC)를 진행 중이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BDC에서는 <테라>의 개발과정을 비롯해 개발자로서의 자세, 개발자들이 느낀 이슈들이 공유됐다. 아직은 작은 내부 컨퍼런스에 불과하지만 블루홀 스튜디오는 BDC의 규모를 점차적으로 늘려 향후 외부 개발자까지 초대하는 대규모 컨퍼런스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IT산업의 최첨단인 게임개발과 인문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심리학의 만남은 어떤 모습일까? 수년 간 자신의 전공과 직무를 연결하려 고민한 심지원 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월급보다 복권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강화의 비밀

 

블루홀 스튜디오의 심지원 배경아트팀장

 

"친구 중에 캐릭터의 외향을 특히 중시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유료 의상이 있는 게임이라면 캐릭터를 생성하자마자 의상부터 결제한다. 캐릭터 기본 의상 센스를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 팀장은 자신의 친구의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이처럼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는 장치를 심리학에서는 '강화'라고 한다. 흔히들 생각하는 보상 뿐만 아니라, 심 팀장의 친구에게 결제를 강요(?)한 캐릭터 기본 의상과도 같은 부정적인 자극도 강화의 일종이다. 기본의상의 퀄리티가 낮기 때문에 그가 유료의상을 결제했기 때문이다.

 

게임콘텐츠 개발에서 강화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다. 유저가 게임을 지속하게 하는 요인 대부분이 강화에 속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빈도로 개최되는 <테라>의 대규모 PvE 콘텐츠 '검은틈', 언젠가 나오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어려운 인스턴트 던전에 도전하는 '아이템 드롭률' 모두 이러한 강화의 일종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강화가 지속적으로 주어진다면 유저들은 계속 게임을 하는 것일까?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가끔' 주어지는 자극에 더 크게 반응한다.

 

자주 고장나는 자판기와 한 번도 고장나지 않은 자판기가 동시에 망가졌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자주 고장 났던 자판기엔 사람들이 여전히 줄을 서지만, 한 번도 고장나지 않았던 자판기엔 사람이 없다. 고장이 자주 났던 자판기에는 '혹시나'라고 하는 기대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10%도 채 되지 않는 아이템 강화 확률에 유저들이 목숨 걸고(?) 매달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기약 없는 희망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기에 콘텐츠 개발 시엔 고정적인 강화와 불규칙적인 강화를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허나 분명한 것인 불규칙적인 강화(일명 부분 강화 효과)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이 유저에겐 보다 짜릿한 게임 경험을, 개발자에겐 유저를 효과적으로 게임에 유입시키는 효과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 게임을 하는데 이유는 필요 없다. 보상보단 몰입

 

게임을 열심히 즐기는 유저 둘이 있다. 두 유저 모두 천신만고 끝에 서버 최초로 게임 내 가장 강력한 보스몬스터를 잡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한 유저에겐 소정의 상품이 주어졌고, 다른 유저에겐 GM이 직접 나타나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몇 주 뒤 더 강력한 보스몬스터가 업데이트 되었다. 두 유저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상품을 받은 유저보다는 단순히 GM의 축하메시지를 받은 유저가 보스몬스터에 다시 도전할 확률이 높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보상을 특정 행동을 계속하게 하는 강력한 '강화'요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과 관계없는 보상은 오히려 행동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하는 독이 되기도 한다.

 

행동 자체에 대한 흥미나 호기심과 같이 사람의 안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동기를 '내적동기'라 하고, 활동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보상을 '외적동기'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보상과 같은 외적동기가 생기면 자신이 그러한 행동을 한 원인을 외적동기 때문이라 여긴다. 설사 보스몬스터를 잡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하더라도, 보상을 받음으로써 그러한 자신의 행동을 보상 때문이라 생각한다는 의미다. (일명 할인효과)

 

 

이러한 할인효과를 막기 위해선 보상이 유저의 능력을 치하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거나, 보상 자체가 크고 만족스러워야 한다. 사람마다 중히 여기는 가치가 다르고, 자신의 능력을 재는 척도가 다르기에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심 팀장은 그렇기에 무엇보다 '몰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몰입은 어떠한 환경에 빠져 주변 환경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잊는 심리상태를 뜻한다. 저녁에 게임을 시작했는데 정신차려보니 동트는 새벽녁이었다는 경험이 몰입의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몰입을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와 규칙, 유저행동에 대한 뚜렷한 피드백, 그리고 도전할만한 적절한 난이도가 필수다.

 

"내적동기와 몰입이 추구하는 것은 같다. 결국은 게임을 하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미 자체가 게임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심 팀장은 몰입이 잘 일어나기 위한 조건을 설명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 전력투구가 항상 답은 아니다. 게임아트와 심리학

 

전생에 지구를 구한 당신, 세계 최고의 미인과 연애하는 행운이 찾아왔다. 만나는 것 자체가 두근거렸던 연애 초기와 부푼 가슴을 안고 비행기에 오르던 신혼여행, 그리고 토끼 같은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 지금. 각각의 시기에 연인의 미모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같을까?

 

사람의 감각이 흥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극의 크기를 '역치'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획기적인 방식의 게임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 지듯이 사람의 역치 또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록 그 크기가 커지게 된다. 똑같은 잠수함 패치를 하더라도 한꺼번에 큰 폭으로 수치를 조정하는 것보다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수치를 조정하는 것을 알아차리기 힘든 이유다.

 

 

이러한 이유로 최고급 퀄리티를 내세우는 게임일수록 날로 높아져만 가는 유저들의 눈이 버겁다. 처음엔 굉장했던 게임의 그래픽도 게임을 하면 할수록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만약 확장팩이라도 준비한다면 아트팀에게 가해지는 부하가 결코 적지 않다.

 

때문에 심 팀장은 게임아트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힘을 쏟아야 하는 곳과 빼야 하는 곳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번 전력투구를 하면 개발자가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도 유저의 눈에는 다른 콘텐츠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극의 계획'은 게임아트의 퀄리티 뿐만 아니라 오브젝트의 배치에도 중요하다.

 

 

심리학자 브루어와 트레엔스는 한 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대상에게 교수의 연구실을 잠깐 보여준 다음 연구실에 있던 물건을 기억하게 하는 실험이었다. 연구실에는 피크닉 가방이나 벽돌과 같은 엉뚱한 물건도 있었는데 대부분의 실험대상은 이를 기억하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짧은 시간 스쳐간 풍경이기에 실험대상은 기존에 자신이 갖고 있던 연구실의 이미지로 당시의 기억을 보충했기 때문이다. 이같이 유저들은 의외로(?) 게임의 배경 하나하나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 공간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면 유저는 그 곳을 단순히 스쳐 지나갈 뿐이며, 그곳의 기억을 떠올릴 일이 있더라도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유사한 기억들로 대체해 떠올린다.

 

때문에 게임 아티스트는 구조물을 배치할 때에도 주변과의 어울림이나 유저에게 다가가는 의미를 신경 써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퀄리티의 구조물이라도 배경과 어울리지 않으면 유저의 기억에 먹혀 잊혀질 뿐이다. 아니면 유저들이 의미 있어 할만한 공간에 이러한 구조물을 배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유저가 오래 머무르거나 각별하게 생각하는 장소라면 구조물을 배치해도 유저의 선입견에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