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에서 게임은 미운 오리새끼 혹은 이무기로 불립니다. 게임을 예술의 범주에 넣으려는 시도를 했던 사람은 늘 있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따돌림 뿐이었죠.”
24일 서울 예술대학교 디지털 아트과 김대홍 조교수는 NDC 2013에서 게임이 예술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제로 강연을 시행했다. 그는 게임을 예술로 받아들이지 않는 부류의 주장을 소개하고, 실제로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는 데에는 아직 장벽이 있다는 점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게임이 예술로 거듭날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게임이 추구하는 바가 예술의 근원적인 뜻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디스이즈게임 전승목 기자
서울 예술대학교 디지털 아트과 김대홍 조교수
■ 왜 게임을 예술이라 부를 수 없다고 하는 걸까?
사실 예술에 포함되는 활동은 게임을 만드는 데 필요한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컨대 예술이 이미지, 음악, 동영상, 퍼포먼스, 스토리, 소통 등으로 구현되듯 게임 또한 똑같이 이미지, 동영상, 음악, 스토리 등을 활용해 구현되기 때문이다.
게임 제작에 포함되는 활동들. 예술에 포함되는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게임을 예술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은 팽배하다. 대표적인 예로 2010년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쓴 ‘비디오게임은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사설을 들 수 있다.
그가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 배경에는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번째는 게임의 목적 자체는 재미일 뿐, 철학이나 진리 탐구와 같은 고등적인 활동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일반적인 예술은 원작자가 작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일정한 의도를 전달하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아서다. 로저 에버트는 어떤 사람이 플레이하는가에 따라 같은 게임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플레이하냐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지고 경험이 달라지는 이상, 원작자의 역할을 중시하는 예술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대홍 조교수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사람들은 놀라운 예술 작품을 보고 “예술이야”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신기하거나 놀라운 것, 굉장히 흥미로운 장면을 보고도 “이야 예술이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등적인 활동을 해야 예술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저 에버트는 게임이 예술로 불릴 정도로 고등적인 활동을 내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작 일반인은 예술작품 뿐만 아니라 신기한 것, 재미있는 것, 아름다운 여성(!)을 봐도
“이야 예술이다”라며 감탄한다는 것이 김대홍 조교수의 지적.
■ 예술의 본질과 게임의 본질은 통한다
나아가 김대홍 조교수는 예술과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를 비교해, 예술을 구성하는 요소가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로도 포함되지 않느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예술은 뭔가를 표현하면서 스토리(Story), 수단 (Technology), 미학(Aesthetics)이란 요소를 담는데, 게임 속에서도 이 3가지 요소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의문을 가질 수는 있다. 스토리와 수단이 게임에 내포돼 있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가 되지만, 미학이 게임에 내포돼 있다는 말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김대홍 조교수는 "미학의 근원적인 뜻을 파고 들어가면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사실 미학(美學)은 일본 학자들이 서양 단어 Aesthetics를 번역하면서 생긴 말이며, '미학'이란 단어만으로는 Aesthetics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Aesthetics의 근원적인 뜻을 얻으려면 원형인 그리스어, 'Aisthesis'의 뜻을 파악해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Aisthesia의 뜻이 그리 거창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Gasp breathing 혹은 Taking in, 우리 말로 그대로 번역하면 '기가 막힌 것'이고,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닫혀있던 인식이 깨져서 다른 영역에 눈을 뜨게 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철학적인 설명은 '변화' 혹은 '성장'이란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요컨대 어떤 행위에 사람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서 정신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요소가 있다면, 이미 그 행동은 충분히 'Aesthetics'을 충족한 것이 된다.
예술의 요소 중 하나인 ‘미학’은 의외로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게임이 미학(Aesthetics)을 충족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누가 정의내리냐에 따라 조금씩 표현이 다르지만, '목적'과 '규칙'을 가지고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게임이라는 본질적인 정의에는 변화가 없다. 그리고 게임은 재미를 구현하기 위해 사람에게 새로운 자극을 계속 주고 정신적인 변화, '성장'을 유도하는 방법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 바가 있다.
결론적으로 게임이 예술과 마찬가지로 기가 막힌 것 혹은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을 계속 제시한다면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 김대홍 조교수의 설명이다. 그래서 그는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많은 개발자들이 기막힌 게임을 만들어 유저들에게 새로운 것을 깨닫게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하며 강연을 마쳤다.
정신적인 자극을 줄만큼 기막힌 게임들이 꾸준히 출시된다면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가 되듯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강연의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