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 2013 2일차 기조강연에 나선 엔씨소프트 배재현 부사장. 그는 <리니지>부터 시작해서 <리니지 2> <아이온> <블레이드 & 소울>까지 온라인게임 개발을 두루 경험해왔다. 그런 그가 강연 주제로 가지고 나온 것은 ‘차세대 게임과 한국 온라인게임의 미래’.
그는 강연을 시작하기 전 미래에 대한 주제를 가져왔지만, 거창한 분석이 아닌 현업에 종사하는 개발자의 한 사람으로, 현재의 업계와 가까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바라본 한국 온라인게임의 미래는 어떨까?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엔씨소프트 배재현 부사장이 지금까지 참여했던 게임들.
■ 과거를 통해 현재를 분석해 본다
지난 2009년 게임매체 기사 중에는 ‘기대 신작’이라는 내용이 많았다. 당시 T모 매체(디스이즈게임)에서는 2009년 말에 기대작 7개를 꼽았는데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등장했다. 그런데 2년 후에 같은 게임의 모습을 살펴보려 했지만 일부 게임은 데이터를 얻을 수 없었다.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이다.
출시하지 못했거나, 서비스를 중단했거나, 흥행에 실패했거나 하는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많은 시간과 자금이 투입됐지만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이들 게임의 2013년 PC방 점유율 총합은 0.065%에 불과하다. 2011년의 기대작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오히려 생존율은 더 낮아졌다.
이것은 바로 현재 게임업계 생태계를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PC온라인게임 시장은 레드오션으로, 론칭 이후 흥행보다 생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2013년 PC방 순위를 보면 더 암울하다.
해외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큰 압박을 느끼고 있다. 그 외에도 순위를 살펴보면 신작은 불과 3개밖에 안 보이고 나머지는 2년에서 15년 동안 서비스가 지속돼 온 게임들이다.
상위 10위권의 평균 생존 기간이 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한 것인지, 아니면 강해서 살아남은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 게임업계는 신작이 나와서 성공하는 것은 극히 낮은 확률이고, 순위권에 들어도 6개월 이상 흥행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배 부사장은 “국내 게임시장 전체를 놓고 본다면 성장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는 모바일 시장의 급성장이지, PC온라인게임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PC온라인 분야는 레드오션이 더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신작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확률만 놓고 보면 현재 PC온라인게임은 굉장히 어려운 시장이다. PC방 순위 상위 36개 게임을 보면 국산이 27개, 외산이 9개다. 그런데 점유율을 보면 외산이 훨씬 앞서고 있다. 이 중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한 게임의 점유율이 30% 이상이다.
사실 외산게임들은 잘될 수밖에 없다. 해당 국가에서 성공했던 가장 강한 게임이 검증을 받고 국내에 진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작 게임들은 그냥 나와도 성공하기 힘든데, 시장에 안착하려면 이런 강적들과 계속 싸워야 한다.
만약 MMORPG라면 더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은 MMORPG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다고 말하지만, 게임의 개수에 비하면 점유율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만 보더라도 AOS 장르의 점유율을 거의 다 가져가고 있다.
■ 중국 시장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국내시장이 힘들다고 해서 중국시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중국에 있는 5억 명의 인터넷 사용자 중에서 1억 명이 게이머로 추산된다. 성공한 게임이라면 중국의 동시접속자 수는 국내의 5배 이상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더 파고들어가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캐주얼게임에 강점을 가진 텐센트가 전체 순위를 점령하고 있고, MMO에 강점을 가진 넷이즈는 잘 보이지 않는다. 중국 게임순위에서도 <크로스파이어> <던전앤파이터> <리그 오브 레전드>가 상위권이다. 즉 중국에서도 MMO는 힘들다는 의미다.
배 부사장은 “한국의 게임시장은 모바일 덕분에 성장하지만, PC온라인은 축소되고 있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 게임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6대 업체의 매출을 보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이는 텐센트가 급성장을 하는 반면, 다른 업체들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즉, 중국시장이 성장한다는 것은 텐센트의 성장으로 봐야 한다. 다시 말해서 중국시장을 믿고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에서 게임을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법을 알아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판호다.
판호는 중국 정부가 통제하는데, 회사별로 1년에 받을 수 있는 개수를 제한한다. 이는 텐센트가 독식하고 있는 중국시장에서 텐센트를 통해서 서비스할 수 있는 게임이 제한돼 있음을 뜻한다. 서비스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상황이 이런데 새로운 한국게임이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과거와 달리 지금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중국게임들도 그들만의 장점을 발전시키고 단점을 고치고 있는 중이다. 언제 따라잡힐지 모를 일이다. 한국 대형 MMO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인원이 150명이라면, 중국는 400~500명까지 모인다. 이 정도 규모의 프로젝트가 여러 개다.
배 부사장은 “게임의 퀄리티도 아직 한국게임이 좋은 편이지만 이런 장점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크로스파이어>와 <던전앤파이터>의 점유율을 합치면 48%에 버금간다. 다만 이 2개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 중국게임이다. 2개의 게임이 잘 되는 것이지 한국게임이 잘 된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 그렇다면 우리에겐 모바일이 있다?
한국와 중국의 PC온라인 시장은 레드오션이다. 그렇다면 모바일 시장을 개척해야 할까? 실제로 모바일 시장은 어마어마하게 성장하고 있다. 대충 보더라도 4년 동안 2배 이상의 성장을 기록했다. 스마트 기기의 콘텐츠 생산과 소비가 활성화되면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이용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하지만 모바일도 국내는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 가고 있고, 중국은 매출을 내기 힘든 구조다.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만, 불법복제 등의 이슈로 콘텐츠 이용료를 받기는 힘든 것이 중국의 모바일 시장이다. 그나마 활성화되어 있는 홍콩 앱스토어를 보면 현실을 파악하기 쉽다.
배 부사장은 “홍콩 애플 앱스토어를 보면 하루에 올라오는 게임이 어마어마하다. 너무나 많이 나온다. 이미 레드오션이 된 상태다. 분석해 보면 한번 순위권에 들어온 게임은 잘 밀려나지 않는다. 즉 신작이 진입하기 너무 힘든 구조가 되어버린 상태다”고 말했다.
이미 모바일 시장도 신작이 쏟아져 나오는데 성공하기는 힘든 시장이 되어버렸다. 비용도 개발비가 아닌, 순위에 진입하기 위해 마케팅 및 홍보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이런 홍콩 앱스토어를 통해 국내 모바일 시장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더 빠르게 레드오션이 되어 가는 것이다.
배 부사장은 “국내 모바일 시장도 이제 오랫동안 순위에 머물면서 롱런하는 게임들이 점유하게 될 것이다. 어떤 게임이 차지할지는 모르겠지만, 신작들이 성공하기는 힘든 구조가 되어가는 것이다. 기존 게임들이 계속 업데이트되면서 콘텐츠 양에서도 신작은 흥행작을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고 견해를 밝혔다.
■ 암울한 미래?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레드오션이 되어가는 게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해야 한다. 답은 작은 한국시장을 벗어나 해외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 부사장은 개인적인 소견임을 전제로 몇 가지 답을 제시했다. 중국을 포함한 미국과 유럽 시장에 진출해야 하고, 국내 우선 론칭보다는 글로벌 동시, 다시 말해서 한글 버전보다 글로벌 버전을 먼저 만드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글로벌 버전은 무국적에 가까운 버전을 뜻한다. 배 부사장은 블리자드나 디즈니, 픽사 스타일의 비주얼을 갖출 것을 요구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라푼젤>을 보면 전체적인 스타일은 미국풍이지만, 큰 눈 등을 보면 일본풍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다양성을 지닌 비주얼이 게임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더불어 ‘김치게임’이라 불리는, 콘텐츠는 없으면서 반복 수행을 하게 만드는 방식은 지양하고, 과금 모델도 부분유료화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때 수많은 나라에서 한국의 부분유료화를 분석하고 사례발표를 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은 없다.
배 부사장은 현재 국내 부분유료화 모델을 낙후된 상태라고 말했다. 해외의 과금체계를 보면 게임의 콘텐츠와 게임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과금하는 모델이 자리를 잡았다. 돈을 벌기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닌, 돈이 벌리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그는 국내 게임업계의 문화를 꼬집었다. 조직과 개인 모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은 인센티브를 아까워하지 말고, 개발자는 매출에 비례하는 인센티브에 연연하는 문화를 버리라고 충고했다.
게임은 사람이 만들어 가는 콘텐츠다. 그렇다면 사람을 키워야 하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성장시킬 수 있다. 배 부사장은 특히 개발자들에게 재충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온라인게임을 만드는 과정은 개발이지만, 론칭하는 순간 서비스가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개발자가 서비스 유지를 위해서 콘텐츠를 업데이트하는 등 쉬지 못하고 방전되어 버린다. 만드는 사람들이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서비스가 잘되면 잘될수록 그 시간 동안 일만 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사람들이 서서히 소모된다. 결국 사람과 조직이 성장할 수 없게 된다.
그는 마지막으로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는 힘들고 해결 과제는 쌓여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신호가 있고, 어렵지만 조금씩 성장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 부사장은 “붉은 여왕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진화론에 나오는 이야기로 모든 주변환경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에 늦게 뛰면 뒤처지고, 열심히 뛰면 제자리에 머무른다는 이론이다. 즉 환경에 맞춰서 열심히 노력하면 생존할 수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업계 전체가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 생존할 수 있다”고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