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인디게임 개발자에게 참 고달픈 나라다.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을 제외한 다른 시장은 쑥대밭이 된 지 오래고, 한때 소규모 개발사의 희망이었던 모바일게임은 이젠 크고 작은 개발사가 각축전을 벌이는 ‘레드오션’이 되었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콩그리게이트나 험블번들, 데수라 등 인디게임을 위한 마켓이 개발자를 기다리고 있고, 유명 다운로드 마켓이나 모바일 오픈마켓, 콘솔 온라인 마켓 등을 포함하면 시장은 더 커진다. 특히 그중 스팀은 방대한 시장과 유저층, 그리고 게이머 투표로 진행되는 입점심사 등으로 인디게임 개발자에게 매력적인 시장이다.
인디게임 개발사 데브아크의 허민구 대표는 25일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에서 자신이 스팀 그린라이트에 도전하며 얻은 노하우를 공유했다. 허 대표가 몸으로 체험한 그린라이트 도전 노하우를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인디 전용 마켓이 아니라 스팀을 선택한 까닭
“저는 지금이 인디게임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게임을 판매하려면 CD를 굽고 패키지를 포장해하는 등의 만만치 않은 돈과 품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다운로드 판매의 대중화로 가난한 개발자도 얼마든지 게임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느냐, 그리고 그 게임을 어디에 판매하느냐입니다.”
허 대표는 다운로드 판매방식이 인디게임 개발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줬다고 말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실제로 그의 말처럼 온라인상에는 플랫폼을 막론하고 인디게임을 기다리는 수많은 마켓이 존재한다. PC게임에 한정한다 하더라도 유명한 마켓만 6곳이다.
인디게임계에서 유명한 마켓으로는 플래시 웹게임의 성지 ‘콩그리게이트’와 인디게임의 대부 ‘데수라’, 그리고 기부판매라는 독특한 수익구조를 확립한 ‘험블번들’이 있다.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애플의 ‘맥스토어’와 MS의 ‘윈도우8 스토어’도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눈독을 들이는 마켓 중 하나다.
하지만 허 대표가 이들 대신 스팀을 권하는 이유는 막대한 인지도와 시장 점유율 때문이다. 스팀은 인디게임에 대한 관심 여부를 떠나, 이미 많은 게이머들이 애용하고 있는 플랫폼이다. 전문가들은 스팀이 PC게임 다운로드 판매 시장에서 50~70% 가량을 점유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앞서 말한 마켓도 잠재력이나 개발환경 등을 고려하면 놓치기 아까운 플랫폼입니다. 하지만 마켓의 규모나 영향력 등을 고려하면 스팀에 비해 손색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마켓에서는 이미 스팀 입점게임이 높은 성과를 얻고 있습니다. 역량을 집중한다면 스팀을 우선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막대한 점유율은 곧 스팀 입점게임의 수익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스팀에서 판매된 <크툴루 세이브 더 월드 & 브레스 오브 데스 VII>라는 레트로 RPG 합본팩은 스팀 판매순위에서 한 번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음에도 3개월 동안 약 3억3,000만 원의 수익을 거뒀다. 게임이 2.99 달러에 판매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랄 만한 판매량이다.
이처럼 스팀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워낙 크기 때문에 다른 마켓도 스팀의 영향력에서 100% 자유로울 수 없다. 인디게임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마켓 중 하나인 데수라는 스팀 입점에 실패한 게임이 아닌 한 독자적인 타이틀을 찾아보기 힘들고, 험블번들은 스팀에서 판매량이 최고조에 달한 게임이 마지막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그린라이트 탐색기
그렇다면 스팀이라는 거대 시장에 인디게임이 진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스팀에 입점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스팀을 운영하고 있는 ‘밸브’에 직접 문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승인 답변을 받는 데만 1개월 이상이 걸리고 거절 답변은 오지도 않기 때문에 밸브에서도 개발자들에게 권하지 않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해외 퍼블리셔와 계약하고 스팀 입점을 일임하는 것이다.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에서는 스팀 입점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퍼블리셔가 여럿 있다. 이들은 스팀 입점에 관해선 전문가와 같아 이들과 계약만 맺으면 스팀의 입점은 기정사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국내에서 이들과 접촉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스팀의 구조도 잘 모르는 이가 태반인 마당에 스팀 입점 전문 퍼블리셔를 찾으려 해도 쉽게 나올 리 만무하다. 어디가 유명한지도 모르고, 어떻게 접촉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엉뚱한 곳과 만나 사기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허 대표는 개발자들에게 스팀의 그린라이트 제도를 권했다. 그린라이트는 게이머들의 투표를 통해 스팀에 입점할 게임을 선별하는 제도다. 순수하게 유저 투표로만 입점이 결정되는 덕에 다른 방법보다 문제의 소지가 적고, 또 그린라이트를 통과할 경우 다수의 유저가 선택했다는 마크가 붙기 때문에 향후 마케팅에 있어서도 유리하다.
그린라이트에 게임을 등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스팀에 등록비 9.99 달러를 내면 게임을 등록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고, 개발자는 이 곳에 게임에 대한 소개나 관련 영상, 이미지, 개발사 홈페이지 등을 올릴 수 있다. 단, 데모게임의 경우 트래픽 문제 때문에 외부링크 방식으로만 게시할 수 있다.
이렇게 게임을 등록하면 그린라이트 메인 화면에 게임이 노출된다. 최근에 등록된 게임이 화면 위에 배치되기 때문에 게임의 노출기간은 등록 이후 얼마나 많은 게임이 추가로 등록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린라이트 개인 화면에도 최신 등록 게임이 노출된다. 단, 이 경우 메인화면과 노출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보이는 리스트는 3일 전의 목록이다. 결과적으로 그린라이트 도전 게임은 최소 두 차례의 노출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린라이트 게임목록에서는 득표 수를 기반으로 한 정렬 기능 등은 지원하지 않는다. 유저는 시간 순으로 등록된 게임목록을 뒤지거나, 필터 기능을 이용해 원하는 게임을 찾아야 한다. 이는 다른 게임의 득표 수 등에 영향받지 않고 순수하게 게임의 내용과 유저의 의견만을 반영하기 위함이다.
그린라이트 개인화면에 하나 독특한 것이 있다면 스팀 유저들이 만든 추천모음집이다. 추천모음집은 유저 개개인이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나 성격의 게임을 묶어 다른 유저들에게 추천하는 콘텐츠다.
보통 추천모음집을 통해 엿보이는 스팀 유저들의 성향은 한마디로 하드코어 게이머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스탠드얼론 PC게임이 주로 유통되는 스팀의 전반적인 특성이기도 하지만, 특히 그린라이트 유저들은 스팀 게임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이런 경향이 더 강하다.
■ 출시 3일 안에 하드코어 게이머의 마음을 공략하라
이러한 그린라이트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 곳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는 게임은 몇 가지 조건을 만족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초반 붐업이다. 그린라이트는 시스템의 특성상 게임이 등록되는 첫날부터 그린라이트 개인화면에 노출되는 3일째까지 최대한 많은 유저의 찬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이 노출될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이기에, 초반에 표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만큼 어려운 싸움이 시작된다.
때문에 허 대표는 그린라이트에 도전하는 개발자들에게 게임을 등록할 때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공개하기를 권했다. 그중에서도 트레일러와 플레이 영상은 유저들의 찬성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이외에 개발사 홈페이지나 페이스북, SNS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저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물론 초반 붐업에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스팀 유저의 성향에 맞는 게임성이 필수다. 그린라이트 페이지에 상주하는 유저들 대부분은 한마디로 하드코어 게이머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그린라이트에 도전하는 게임도 참신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캐주얼게임보다는 방대한 콘텐츠와 미려한 그래픽을 내세우는 정통 대작게임이 높은 표를 받기 쉽다. 고퀄리티 콘텐츠가 힘들다면 독특한 콘셉트로 마니아 성향이 강한 스팀 유저를 공략하는 게 좋다.
만약 MAC이나 리눅스 등 비주류 OS를 지원하는 크로스 플랫폼 게임이라면 해당 OS 유저를 노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비주류 OS 유저 특성(?)상 자신의 OS를 지원하는 게임이 나오면 한 번이라도 더 홍보를 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데브아크가 개발한 <매스 오브 데드>의 경우 리눅스를 지원한 덕분에 그린라이트 초반 리눅스 유저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