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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출판권 파기’까지 간 팝픽 사태, 어떻게 되나?

작가들 “당장 파기” VS 팝픽 “전체 동의가 먼저”

남혁우(석모도) 2013-05-21 01:38:57

일러스트 업체와 작가들 사이에 출판권 파기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이제는 ‘사태’라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일이 커졌다.

 

20일, 10여 명의 작가들이 일러스트 제작사 ‘팝픽’을 찾아가 출판권 파기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팝픽은 출판에 참가한 모든 작가들의 동의를 먼저 구한 뒤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쪽의 입장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남혁우 기자


 

■ “물의를 일으킨 출판사와 일하기 싫다”

 

20일 팝픽을 찾아간 작가들은 물의를 일으킨 출판사에게 출판권 파기를 요구하는 것은 작가의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흑요석 작가는 팝픽은 작가에게 인세도 제대로 주지 않은 팝픽북스의 브랜드를 활용해 학원을 차리고, 그 안에서 학생을 착취하고 그림 도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물의를 일으켰다. 출판사에 문제가 있어서 작가들에게도 피해가 가기 때문에 출판권을 파기하려는 건데 왜 바로 파기할 수 없는지 의문이다”고 밝혔다.

 

작가들은 팝픽이 자신들의 작품이 실린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언제 어떻게 해외로 진출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해외에서 자신의 작품이 버젓이 판매되고 불법으로 복제돼도 이를 제재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다며 팝픽이 출판사로서의 역할에도 소홀했다고 강조했다.

 

작가 측에서 팝픽에 제시한 출판권 파기 합의서.

 

작가 측은 팝픽에서 출간한 책에 실린 일러스트는 하나하나가 개별 저작권이 있는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고 싶지 않다고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판매를 계속 원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들의 작품만 따로 편집해서 판매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팝픽에서 출판권 파기 합의서에 사인할 것을 거절하자 작가들은 법적 대응에 나설 뜻을 밝혔다. 물질적 보상을 원하는 것이 아닌 만큼 팝픽 법인과 송현정 대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형사고소를 준비할 예정이다. 이후 책임소재가 밝혀지면 이에 따른 민사소송까지 이어 나갈 예정이다.

 

작가 측은 임시대책위원회 등을 구성하고 팝픽에 의해 피해를 본 작가와 피해자를 모으며 법적 대응을 준비할 예정이다. 소송 진행에 필요한 비용은 유캔펀딩 같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을 방침이다.

 

흑요석 작가는팝픽 측이 작가 개인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우리가 제시한 출판권 파기 요구서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데 굳이 팝픽에서 일을 주도하려 하고 개인 작가들의 출판권 파기를 막으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팝픽 방문 이후 디스이즈게임과의 통화에서 변호사와 협의해서 내용증명 문서로만 통보해도 저작권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내일부터라도 가능한 작가부터 최대한 빨리 내용증명을 팝픽 측에 보낼 예정이다고 말했다.

 

20일 저녁 팝픽 사무실에서 민종환 팀장과 작가들이 만났다.

 

 

■ “모든 작가의 동의를 구한 후 파기하겠다”

 

팝픽은 책과 출판권의 파기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다만 공동 저작권을 가진 출판물인 만큼, 전체 작가들의 동의서가 없는 개별, 또는 일부 작가들에 대한 별도의 출판권 파기 합의서는 작성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팝픽 민종환 팀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의욕이 앞서기만 하고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래서 2013년부터는 절차적으로 일을 제대로 처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모인 작가들이 각자의 그림에 대해서 출판권을 회수하겠다는 것에 합의할 수 없다. 하나의 책으로 나온 출판물에 대해 전체 작가들의 출판권 회수 동의서 없이 개별 작가에 대한 조치는 취할 뜻이 없다고 말했다.

 

민 팀장은 팝픽월드 6권 스프링은 아직 출판하지 않아서 누구에게도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출판권을 파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전 책들은 이미 출판된 상황이라 책을 파기했을 경우 판매를 원하는 일부 작가가 소송을 걸 우려도 있기 때문에 모든 작가들의 동의를 받은 후에 파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위해 민 팀장은 팝픽에서 출간한 팝픽월드, 테마북 등에 참가한 200여 명의 작가 리스트를 기반으로 출판권 파기 내용을 메일이나 전화로 공지하고, 관련 매체나 커뮤니티를 통해 알릴 계획이다.

 

팝픽은 6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동안 작가들에게 동의서를 받은 후 출판권과 책을 파기할 계획이다. 기간 안에 작가가 답변을 주지 않는 경우는 파기에 동의한다는 법적 근거도 마련할 예정이다. 만약 판매를 원하는 소수의 작가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일정한 피해를 보상해줄 방침이다.

 

협의가 무산되자 자리를 나서는 팝픽 민 팀장과 이를 지켜보는 작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