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10여 명의 작가들이 일러스트 제작사 ‘팝픽’을 찾아가 진행된 출판권 파기 합의 요구는 무산됐다. 둘 사이의 입장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이 논란은 소송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팝픽의 논란은 출판사인 팝픽과 이에 참여한 작가들의 저작권 외에 또 다른 문제가 남아있다. 이른바 '반페이'라 불리는 임금삭감과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을 강요, 원고료 미지급 등 문제가 쌓여 있다.
과연 팝픽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디스이즈게임은 팝픽에서 일을 했었던 인접 및 키아즈 작가를 직접 만나 그들이 겪었던 일들을 직접 들어 봤다. /디스이즈게임 남혁우 기자
※ 작가의 요청으로 사진을 기사에 싣지 않는 점 양해 바랍니다. /편집자 주
■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결국 외주작업”
언제부터 팝픽과 일하게 됐는가?
인접: 지난 2009년 일러스트 모음집인 ‘애플’ 프로젝트를 작업하면서 송현정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이 와중에 팝픽을 설립한 송 대표가 자신의 회사에서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해왔다.
당시 개인 사정으로 취업을 하면 안 되는 상황이라 외주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리랜서라는 것이 바로 일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명성이 필요한 상태라서 소소한 카드게임 일러스트 작업 등 대략 10만 원 정도의 일거리만 맡고 있었다.
그녀는 월급 200만 원에 개성을 살린 작품활동 보장, 어시스턴트 지원 등 작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권유를 했다. 그래서 2012년 9월부터 11월 중순까지 2달 반 정도 팝픽에서 일했다.
키아즈: 나는 팝픽 아카데미에에서 그림을 배우다가 정식으로 팝픽에 고용된 케이스다. 지난해 1월에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7월부터 팝픽 소프트에 정식으로 취업해서 11월 30일까지 일했다.
팝픽 아카데미는 어떻게 들어갔으며, 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가?
키아즈: 당시 네이버카페 방사의 매니저였던 송 대표가 해당 카페에 지속해서 팝픽 아카데미를 광고했다. 일러스트레이터들 사이에서 방사라는 브랜드 영향력은 상당하다. 이를 믿고 팝픽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첫 달 교육은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방식으로 커리큘럼을 짰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달의 교육이 끝나자 바로 어시스턴트 일을 하면서 실무 경험을 쌓아보지 않겠느냐고 송 대표가 제안했다. 당시에 아무런 경험이 없던 나는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말에 바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후부터 실무자가 되어 커리큘럼에 의한 교육 없이 게임에 들어갈 외주 작업물을 그렸다. 실제로 내가 학원생 시절에 직접 작업한 외주 작업물이 게임 속에 적용된 것을 확인했다.
실제 게임에 적용된 이미지를 작업했다면 그 자체가 실무 경험 아닌가?
키아즈: 그것이 커리큘럼의 일부였으면 상관없지만, 교육의 전부였다. 결국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했던 모든 것들이 외주작업을 처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강사들이 잠깐 피드백을 해주는 것이 당시 아카데미의 수업방식이었다.
아마 아카데미에 있는 동안 오래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전보다 그림 실력이 나아졌을 수는 있다. 하지만 작업을 계속해 오면서 실력이 늘어난 것이지 학생으로 제대로 배운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나마 디젤 팀장이 나중에라도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선보이며 방향성을 갖게 됐다.
■ 과도한 업무량, 최소임금도 안 되는 급여 ‘반페이’
당시 팝픽 소프트에서 가장 문제가 된 건 역시 급여 문제인 것 같다.
키아즈: 먼저 알아야 할 것이 팝픽 소프트는 정식으로 고용된 직원이 있고, 청강문화산업대 학생들의 실무교육, 그리고 팝픽 아카데미에서 수강하다가 팝픽 소프트로 넘어와 실무 작업을 하는 사람들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론 모두 월급제(연봉제)로 계약된 상태였다. 그런데 계약 이후에 팝픽 측은 작업량을 모두 달성해야만 이에 맞춰서 월급을 주겠다고 말했다. 정해진 월급이 100만 원일 경우, 그 달에 주어지는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월급이 깎였다.
인접: 이 할당량은 한 달 동안 밤새 작업해야 겨우 맞출 수 있는 양이었다. 나도 일을 계속하다가 도저히 목표치를 맞출 수 없어서 회사를 그만뒀다. 함께 일한 사람 중에 딱 한 명, 일정에 맞춰서 결과물을 낸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도 거의 매일 같이 밤을 새우면서 할당량을 맞춘 것이다.
도대체 업무량은 얼마나 됐던 것인가?
인접: 기본적으로 한 업체로부터 한 달치 작업량을 받으면 이를 마무리하고 다른 작업물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팝픽은 들어오는 외주작업은 무조건 다 받았다. 작가들은 과도한 업무량으로 지치게 되고 대부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다.
그러면 송 대표는 작업자들을 탓한다. 너희가 잘 그리면 빨리 처리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못 하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나마 집안사정을 설명해서 야근을 안 하고 오후 6시 반에 정시 퇴근했다. 나중엔 정시 퇴근으로 일이 끝나지 않아서 집에서도 밤새 일해야 했다. 그래서 피로도 쌓이고 몸도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키아즈: 나는 오전 9시 반에 출근하면 오후 10시까지 일했다. 내 경우 ‘한 달에 그림 몇 장을 해야 한다’고 강압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작가들 모두 ‘이게 한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게 일했다. 대부분이 밤샘과 야근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서 아침에 지각하는 경우가 다들 많았다.
네이버 카페 방사에 올라온 피해 사례.
월급 100만 원에 비해서 할당량에 너무 많은 것 아닌가?
키아즈: 우리는 팝픽이 50%의 중개비를 뗀다는 것을 몰랐다. 작가에게 30만 원이라고 이야기했던 작업이 업체와 계약할 때는 80만 원이었던 경우도 있다. 결국 내부 작업자들은 자신이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은 작업량을 받게 된다. 그러니 당연히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중개비를 떼는 등의 내용은 팝픽 내부에서 알게 되기도 하고, 정말 우연히 알게 되는 일도 있다. 예를 들어 인접 작가는 팝픽을 퇴사한 후에 그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던 외주업체가 직접 연락해왔다. 이 과정에서 팝픽에서 있을 때 작업했던 그림의 실제 금액과 작업물의 할당량 등을 알게 됐다. 실제로 금액은 25만 원이 아닌 40만 원이었고, 그림 사이즈는 A4가 아니라 그 절반이었다.
급여를 절반으로 깎이는 일명 ‘반페이’를 당한 작가도 있다고 들었다.
키아즈: 내가 바로 당사자다. 지난해 7월 1일 아카데미를 통해 입사했지만, 하는 일은 바뀐 것이 거의 없었다. 출근이 오전 9시 반, 퇴근은 저녁 9시 반으로 정해진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월급 100만 원으로 계약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자 팝픽에서 내가 그리는 그림이 한 장당 30만 원이라며, 4장을 그리면 120만 원의 수입이 생기고, 이 중 내가 100만 원을, 팝픽이 20만 원을 갖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100만 원을 전부 받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역제안을 해왔다. 처음부터 반페이인 50만 원을 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다. 디젤 팀장이 나를 따로 불러서 실력이 모자라니 아카데미에서 더 공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다.
이럴 경우 돈을 받기보다 학원비 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에 더 힘든 조건이 되어버린다. 고민을 계속하자 50만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송 대표와 이야기해 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첫 달만 100만 원을 받았고, 이후에는 50만 원씩 받았다.
최근까지 팝픽에서 일했던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30만~50만 원을 받았다고 들었다. 심지어 월 12만원을 받는 작가도 있었다고 들었다. 배우며 일한다는 이유 하나로 그만큼 혹사시킨 것이다.
키아즈 작가가 공개한 급여 내역.
갑자기 보수가 줄어서 힘들었을 것 같다.
키아즈: 보수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였지만 ‘내가 그렇게 못 그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못 그린다는 말만 들어서 ‘그런가?’라고만 생각했다. 내 자질을 의심하며, 주위 사람들과 내 실력을 비교하면서 ‘과연 내가 이 업계에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를 수없이 생각했을 정도로 심리적인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착취 논란과 함께 이미지 도용 논란도 함께 일고 있다.
키아즈: 아마 송 대표 이름으로 출간된 책에 있는 그림 중에서 그녀 혼자 스케치부터 시작해, 채색, 배경 등 모든 것을 그린 그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시스턴트가 스케치 초안을 잡으면 송 대표가 이를 조금 수정한다. 이후에 다른 작가에게 건네져서 스케치. 배경, 얼굴 등을 수정하고 다른 작가가 이를 깔끔하게 다듬는다. 그리고는 다시 어시스턴트에게 넘어가서 최종 수정을 거친다. 이게 송 대표가 한 달에 50개를 작업하는 방식이다.
팝픽 쪽에서는 유명 작가와 함께 작업할 기회가 흔치 않고, 이를 통해 배울 좋은 기회가 아니냐고 주장한다. 그 주장이 옳다면 적어도 함께 참가한 작가들의 이름은 적어주는 것이 맞지 않는가? 송 대표 이름만 적혀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트위터를 통해 작업물 도용 의혹이 제기됐다.
■ “또 이런 일을 겪을까 두렵다”
인접 작가는 애플 때부터 함께 일했다면 송 대표에 대한 안 좋은 소문도 알고 있었을 텐데?
인접: 내부에서 쉬쉬하는 분위기다 보니 안 좋은 이야기도 친한 사람들끼리만 나눈다. 그렇다 보니 업계 전체로는 내용이 잘 전파되지 않았다. 나도 당시에 외주 시세도 전혀 몰랐고, 친분 있는 작가도 없었다. 때문에 일러스트 업계의 시장상황 같은 건 전혀 몰랐다.
혹시 인격 모독을 하는 발언도 있었나?
키아즈: 송 대표를 비롯해 리드 디자이너들이 그런 말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작가들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으면 “우리가 아니면 누가 너희를 받아주냐”, “우리 인맥이 얼마나 넓은데 다른 곳으로 가면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같은 말을 작가들이 들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이런 말을 계속 들으며 지내다 보니 한 번 밉보이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까 더 쉬쉬했던 것 같다. 게다가 이곳을 벗어나면 내가 어떻게 해야 작업을 맡을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당시에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으니까 버텼던 것 같다.
지난해 10월부터 11월 사이에 팝픽에서 많은 작가들이 이탈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키아즈: 그 시기에 등장한 사내 규칙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팝픽 측은 작가들에게 내부 방침이라고 말하며 사내 규칙동의서에 사인할 것을 요구했다. 그때 쌓인 불만들이 터지면서 작가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게 됐고, 퇴사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규칙서에는 식대는 월급 포함, 지각 3회시 퇴사조치 등 불평등 사항만 가득했다. 복지사항은 향후 인센티브 보장 정도였다. 팝픽에서는 단순한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고, 나중에 바뀔 예정이라면서 인센티브를 받으려면 사인을 해야 한다고 회유했다.
팝픽 사태를 돌아보면 작가들이 어떻게 일을 배우고 해야 하는지 몰랐던 부분도 원인이 된 것 같다. 일러스트레이터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접: 일단 내 경우는 해외 일러스트 사이트인 ‘픽시브’에 개인 작업물을 올리면서 외주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팝픽 사태로 알게 된 사람들에게 소개를 받은 부분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알리는 일이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자신을 알려야 한다. 나도 회사를 나온 후 나를 알리느라 힘든 시기도 있었다.
인접 작가의 일러스트.
키아즈: 맞다. 자신을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 팝픽에서 일한 작업물은 도움이 안 된다. 주로 작가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통해 자신을 알린다. 그런데 외주 작업물은 대부분 공개할 수 없는 그림이 많아서 선보일 수가 없다.
또, 공개할 수 있다고 해도 작업 자체가 작가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것이 아니다. 러프 스케치를 하는 사람, 채색하는 사람 등으로 나눠져 있어 자신의 그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작가가 내세울 수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없다. 사실 나도 구직 중이라 조언을 하기엔 조금 민망한 상황이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인접: 앞으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열심히 일하고 이를 통해 이름을 알려 더 좋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키아즈: 지금은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큰 목표다. 다만 팝픽에서 ‘넌 너무 못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자신감이 다들 많이 떨어진 상태다. 앞으로 더 정진해서 한몫해내는 게임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