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취재

[10주년] 엔씨소프트가 걸어온 길

태무 2007-04-02 15:52:40

한국 온라인게임의 선두기업인 엔씨소프트가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았습니다. 20여명의 멤버로 시작한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리니지 2> <길드워> 등의 초대형 히트작을 내놓으면서 현재는 국내외 총직원수 3,000여명에 매출액 3,390억원을 바라보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했지요. IT기업을 통틀어봐도 이렇게 성공한 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개발사로서의 영향력도 절대적이어서, 엔씨소프트가 개발하는 게임은 세계 온라인게임계 전체에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왔지요.

 

오늘은 이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엔씨소프트의 지난 10년을 돌아보려 합니다. 좋은 일은 물론 나쁜 일도 많았던 10년이었지요. 여태까지의 엔씨소프트, 그리고 앞으로의 엔씨소프트.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디스이즈게임


1997~1999년              엔씨소프트 그리고 <리니지>의 탄생

 

1997년 당시 대기업 샐러리맨이었던 김택진 대표이사는 뜻이 맞는 20여명의 창립멤버들과 함께 벤처기업 엔씨소프트를 설립합니다. 김택진 대표는 엔씨소프트 이전에도 아래아 한글, 한메타자, 아미넷 등의 개발자로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겨우 20여명이 모인 게임전문 벤처기업에 큰 관심을 두는 사람은 드물었죠.

 

하지만 1998년, ‘대박’이 터집니다. 이전까지의 게임들이 텍스트 중심이거나 PC통신 혹은 소규모 네트워킹에 기반을 둔 것에 반해, 인터넷을 기반으로 다수가 동시에 참여할 수 있었던 그래픽 머드게임(MUG)인 <리니지>는 크게 주목을 받았죠.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화려했던 그래픽, 다양한 커뮤니티 요소(특히 혈맹), 역동적인 게임 진행방식, 간단한 인터페이스로 <리니지>는 순식간에 국내 온라인게임을 평정해나갑니다.

 

 

지금은 구경하기도 어려운 초창기 <리니지>의 모습. 당시로서는 이와 같은 대규모 게임플레이가 꿈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1998년 말 겨우 1천명이었던 동시접속자는 1999년 1만명, 2000년에는 온라인게임 최초로 10만명을 돌파하는 등 가히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입니다. 이에 힘입어 엔씨소프트는 2000년 7월 대만에서 <리니지> 첫 해외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같은 해 기업공개를 통해 코스닥에 등록하기에 이릅니다(증권거래소 상장은 2003년 5월).


 

2000~2002년                 게임업계의 전설과 함께 해외로!

 

2000년에 들어서면서 엔씨소프트는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전에도 해외시장에 대한 욕심은 있었지만, 세계시장에는 생소한 한국 그것도 온라인게임기업이기에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높았죠. 이에 엔씨소프트는 2001년 5월 <울티마> 시리즈로 유명한 '로드 브리티쉬' 리차드 개리엇을 영입합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아무리 미팅요청을 해도 무시하던 개발자나 회사들이, 리차드 개리엇이 연락하면 '아이고~ 형님!' 분위기로 달려오더라”고 합니다. 세계 게임업계에 엔씨소프트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 일이죠.

 

리차드 개리엇. 그의 영입으로 엔씨소프트는 해외 진출의 물꼬를 트게 됩니다. '먹튀'로만 볼 사람은 아니죠. (^^)

 

2002년 12월에는 블리자드 핵심 개발자들이 설립한 아레나넷(길드워)을 인수하고 크립틱스튜디오(시티오브히어로), 넷데빌(오토어썰트)과는 퍼블리싱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처럼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엔씨소프트의 노력은 계속 이어져 현재는 일본(오사카, 동경), 중국(북경, 상해), 대만(타이페이), 태국(방콕), 북미(씨애틀, 산타모니카, 산호세, 오렌지카운티, 덴버, 오스틴), 영국(런던), 스페인(바르셀로나) 등지에 각 1개 이상의 현지 법인 또는 게임 개발 스튜디오를 가진 글로벌 업체로 성장했습니다.

 

법인명

국가명

지분율(%)

역할 및 해당지역 서비스 게임

1

엔씨인터랙티브

미국

100

<리니지> <리니지 2> <길드워> <시티오브히어로/빌런> <오토어썰트>

2

엔씨소프트 유럽

영국

100

<리니지 2> <길드워> <시티오브히어로/빌런> <오토어썰트>

3

엔씨소프트 차이나

중국

100

<리니지> <리니지 2>

4

아레나넷

미국

100

게임엔진개발 전문 스튜디오. <길드워>

5

엔씨소프트 차이나 R&D 센터

중국

100

그래픽 기술개발 전문 스튜디오

6

엔씨소프트 재팬

일본

100

웹/인터넷 기술개발 전문 스튜디오

7

엔씨 재팬

일본

60

<리니지> <리니지2> <길드워>

8

엔시타이완

대만

85

<리니지> <리니지2> <길드워>

9

엔씨트루

태국

49

<리니지2> <길드워>


 

2003년                        진정한 MMORPG의 시작. 리니지 2

 

2003년 엔씨소프트는 ‘2년생 징크스’를 겪을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또 한번의 대박을 터트립니다. 바로 <리니지 2>가 탄생한 것이죠. 2년여의 개발기간, 총 개발비 100억이 투입된 <리니지 2>는 무엇보다도 그 엄청난 그래픽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언리얼 엔진 2를 이용한 미려한 그래픽과 부드러운 모션은 가히 충격적이었지요. 오죽하면 게이머들이 <리니지 2>를 플레이하기 위해서 줄줄이 PC를 업그레이드해서, 그래픽카드 등 관련 하드웨어 업체들이 때아닌 호황을 맞기도 했답니다.

 

저 '뽀대'! 지금 봐도 가슴이 뛰는군요.

 

아직 그래픽머드게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던 국산 온라인게임이 진정한 MMORPG로 발전한 것은 <리니지 2>부터라는 의견도 있을 정도입니다. 단일 게임으로서 이처럼 업계와 시장에 동시에 큰 영향을 미친 온라인게임은 <리니지 2>외에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정도가 있을 뿐이겠죠. <리니지 2>는 흥행면에서도 성공적이어서 전세계 총가입자수 1천4백만명에 동시접속자수 30만명, 국내만 따져도 동시접속자 11만명에 회원수 300만명을 기록했습니다.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죠.


 

2004~2007년                                 악재, 또 악재

 

물론 엔씨소프트에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2004년부터 연이은 악재는 2007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지요. 2004년 게임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영등위에서 <리니지 2>가 18세 등급을 받았던 것일 겁니다. 클로즈베타테스트 단계에서 15세 등급을 받았던 <리니지 2>는 유료화와 함께 신청한 재심의에서 PK, 아이템드롭, 캐릭터의 선정성 등의 이유로 18세 등급을 받았습니다. 당시까지 온라인게임은 무조건 15세라는 인식이 있었고, PK나 아이템드롭에 대해 별다른 제재가 없었기에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죠. 또 이 사건으로 인해 아직까지 심각하게 생각되지 않았던 게임중독과 현금거래 등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게임업계 전체가 숨을 죽여야 했었죠.

 

뜨거운 '팬티' 논란(?)을 일으켰던 바로 그 사건이었죠. 국내 게임업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건입니다.

 

2005년에는 야심 차게 내놓은 외산 게임 2종이 국내시장에서 참패합니다. 블리자드 출신 핵심 개발자들이 설립한 아레나넷의 <길드워>는 마케팅 방향이 엉뚱하게도 MMORPG로 맞춰지면서, 또 한국 게이머의 취향과는 동떨어진 게임성 때문에 싸늘한 반응만을 얻었습니다. 또 크립틱스튜디오의 <시티오브히어로>은 국내에 낯선 히어로물을 소재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역시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죠. 물론 해외시장에서의 평가는 두 게임 모두 매우 높았고 특히 <길드워>의 경우 북미/유럽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시장에서 엔씨소프트가 차지하고 있던 비중은 엄청나게 깎여나갔죠. 특히 같은 해 선보인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고, 경쟁사인 넥슨의 캐주얼게임들이 떠오르면서 온라인게임 선두기업 엔씨소프트의 위상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라고 말하면 너무 억측일까요? 아무튼 2006년 엔씨소프트는 캐주얼 게임으로 진출합니다. 게임포털인 플레이엔씨가 탄생한 것이죠. 캐주얼 게임과 하드코어 게임의 중간 단계인 ‘미들코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플레이엔씨는 <액시멈사가> <사커퓨리> <SP JAM> <엑스틸> <스매쉬스타> 등 화려한 라인업을 내세웠습니다. 게다가 ‘젋은한판’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웹보드게임 시장에까지 진출했지요. 결과는? 잘 아시겠지요? 플레이엔씨 사업팀이 해체되고 관련 인원들은 대부분 뿔뿔이 흩어졌지요. 물론 아직 출시되지 않은 게임이 더 많고, 저도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작품들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플레이엔씨 현재의 성적은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기대를 걸었던 플레이엔씨였지만...

 

하지만 가장 큰 악재는 작년에 터진 <리니지> 명의도용 사건일 것입니다. 다른 인터넷업체에서 유출된 개인정보가 <리니지>의 계정도용에 이용되면서, 국내 거의 모든 매체에서 엔씨소프트가 원흉으로 지목된 것이지요. 실제로 정보를 유출한 인터넷업체들에 원론적인 책임이 있었고, 엔씨소프트 외의 게임업체들도 도용사건이 있었음에도 웬일인지 언론에서는 연일 엔씨소프트를 때려댔습니다. 아직도 판결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 결과에 관계 없이 엔씨소프트로서는 기업 이미지에 엄청난 손상을 입었죠. 국내 IT업계의 희망이었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게임중독의 원흉이요, 아이템 현금거래를 조장하고, 명의도용조차 막지 못한 부도덕하고 무능력한 회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이용자들과의 소송, 게임중독 등 바람 잘날 없던 엔씨소프트였지만 회사 이미지에 이렇게까지 타격을 입은 것은 너무나 큰 악재였지요. 심지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바다이야기가 엔씨소프트 게임인줄 알더군요.

 

또 최근에는 <리니지 3> 개발팀이 회사에서 뛰쳐나와 다른 회사를 설립하는 등 암초에 부딪치기도 했고, 여전히 아이템 현금거래나 게임중독 등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선두기업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더 많은 문제에 휩싸이는 것 같습니다.


 

10주년, 그리고 앞으로의 엔씨소프트

 

하지만 엔씨소프트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쌓아왔던 기술 역량과 글로벌 네트워크가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거든요.

 

엔씨소프트는 매년 매출액의 20~30%를 연구개발(R&D)에 쏟고 있습니다. 특히 엔씨소프트 게임들의 그래픽을 책임지는 ‘비주얼센터’는 한국, 미국, 중국 등 3개국에 위치해서 각 지역의 의견을 다양하게 반영해 세계수준의 그래픽을 이끌어내고 있죠. 또 사내에 구축한 엔씨라이브러리에는 세계적인 시각으로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80% 이상의 수입자료, 약 8,000여건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농담으로 경쟁 온라인게임 캐릭터의 팬티색깔까지 모두 갖춰놓고 있다고 할 정도로 막강한 데이터들이 모여있지요. 개인적으로 저도 이곳에서 축구 온라인게임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엔씨소프트는 2008년 강남 삼성동 테헤란로에 15층짜리 R&D센터를, 2010년에는 판교테크노벨리에 판교연구개발센터를 보유하게 됩니다. 이처럼 방대한 연구개발과 그에 관한 지원은 엔씨소프트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지요.

 

올해에는 그 동안 준비해왔던 신작들이 드디어 시장에 선보이게 됩니다. 국내에서는 3년간 개발해온 <아이온>이 연내 상용화를 목표로 막바지 개발작업을 진행하고 있지요. 또 캐주얼게임 <에이트릭스>도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리차드 개리엇의 <타뷸라라사>가 클로즈베타 테스트를 앞두고 있습니다. 역시 연내 상용화가 목표지요. 특히 지난 E3에서 확 바뀐 모습으로 게이머들의 기대를 모았던 <타뷸라라사>가 과연 수년간의 결실을 어떻게 맺을지 기대됩니다.

 

본문에서 수 차례 언급했지만 엔씨소프트는 국내 게임업계의 선두기업, 맏형 격입니다. 그 지위만큼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많았지요. 어떤 산업이나 선두기업의 행보에 따라서 해당하는 기업 전체가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올해 10주년을 맞는 엔씨소프트. 그 동안의 악재와 고민을 훌훌 털어버리고 진정한 선두기업으로서의 성숙한 자세와 멋진 게임을 보여주시길 바라봅니다. 국내 게임업계 종사자의 한 사람으로써 엔씨소프트의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PlayNC/NC10ANN.wmv#]]

엔씨소프트 10주년을 기념해 전세계 직원들이 함께 제작한 특별 영상(플레이를 누르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