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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KGC] 게임 사운드, 개발의 끝이 아닌 시작부터 함께하자

빅밴드 이동빈 PM의 ‘3D 리얼 그래픽 야구게임을 위한 사운드 제작기’

김승현(다미롱) 2013-09-27 14:13:21
태초(?)에 개발자가 직접 게임 사운드를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분업이 자연스러워진 2013년. 대형 게임사에도 사운드 제작팀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게임사는 개발 막바지에 사운드 작업을 외주로 돌려버린다. 사운드를 제작하는 이들이 개발사 밖에 있는 만큼 이전과 같은 긴밀한 의사교환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개발자는 음악가를 모르고, 음악가는 개발자를 모르는 시대. 게임 사운드 전문 제작업체 ‘빅밴드의 이동빈 PM은 공게임즈의 <이사만루2013 KBO>에 들어가는 사운드를 제작하며 개발사와 부딪히고 소통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풀어냈다.

그는 왜 계약서에도 없던 보컬 곡을 자진해서 만들고 직접 노래까지 부르게 되었을까? 이동빈 PM이 26일 KGC 2013에서 발표한 ‘3D 리얼 그래픽 모바일 야구게임을 위한 사운드 제작기’를 들어 보자.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빅밴드 이동빈 PM


‘공수교대송’ 같은 BGM? 차라리 보컬 곡은 어때?


“혹시 MBC Sports+의 <insideball>(일명 공수교대송)을 아시는 분 있나요?”

이동빈 PM은 질문과 함께 강연을 시작했다. 지스타 2012를 앞둔 지난해 10월. 그는 공게임즈로부터 모바일 리얼 야구게임 <이사만루2013 KBO>의 게임 사운드 제작 의뢰를 받았다. 요구사항은 실사풍 그래픽처럼 현장감 넘치는 30초짜리 BGM 10곡. 오프닝곡은 MBC Sports+의 <insideball>과 같은 분위기를 원했다.



일반적으로 게임 개발에 있어 사운드 작업은 그 중요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사운드 제작팀이 없는 대부분의 개발사는 게임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외주 제작사에게 사운드 작업을 의뢰한다. 사운드를 의뢰받은 입장에서는 자연히 테스트 일정이나 론칭 일정에 치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 촉박하니 개발사와의 소통도 줄어든다. 이는 공게임즈와 인연이 없었던 빅밴드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처음에 30초짜리 BGM 10곡을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 도대체 이걸 어떻게 게임에 적용할지 의문이었어요. 하지만 공게임즈와 데면데면한 사이에서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하긴 힘들었죠. 더군다나 당장 지스타 버전을 위한 사운드를 준비해야 했기에 시간도 부족했고요. 결국 처음에는 의문을 접어둔 채 요구에만 맞춰 BGM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이사만루2013 KBO> 지스타 체험버전에 쓰일 BGM 4곡이 완성됐다. 하지만 <이사만루2013 KBO> 지스타 버전에 실제로 쓰인 빅밴드의 곡은 4곡 중 1곡에 불과했다. 다른 3곡은 공게임즈와 이전에 작업했던 한 프리랜서의 것이었다.

“복잡했죠. 만든 곡의 1/4만 쓰였다는 사실에 당황하기도 했고, 공게임즈가 얼마든지 더 좋은 패(?)로 갈아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위기감도 들었어요. 하지만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작곡가로서의 자존심이었어요. 처음에 아니다 싶은 게 있었을 때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했다면 이런 일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저를 괴롭혔죠.”



지스타가 끝난 후 이 PM은 마음을 고쳐먹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공게임즈에 역으로 제안했다. 주문받은 BGM 10곡은 필요한 것만 남기고, 일률적으로 30초에 맞춰진 BGM 길이도 테마나 쓰임에 맞게 전부 변경했다. 그리고 추가로 제안한 것이 당시 스포츠 채널에서 유행했던 주제곡이었다. 많은 BGM으로 흐름을 끊는 것보다, 차라리 필요한 곳에서 보컬 곡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게 빅밴드의 생각이었다.

물론 친분도 없는 개발사 PD가 제안한 것을 부정하고 역제안을 한다는 부담도 컸다. 하지만 이러한 부담보다는 지스타에서 느낀 위기감, 그리고 작곡가로서의 자존심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 PM은 계약에도 없던 보컬 곡까지 직접 작곡하고 녹음해서 공게임즈를 찾아갔다.

“물론 아마추어인 제가 부른 노래가 어떻게 좋은 반응을 얻었겠어요. 그래도 곡 반응은 나빴지만, 제안 자체는 좋게 받아줬습니다. 직접 노래까지 부른 보람이 있었죠.”

이동빈 PM이 직접 작사·작곡·녹음한 <이사만루2013 KBO> 주제가 초안

공게임즈의 긍정적인 반응에 고무된 이 PM은 빅밴드의 제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주제가를 3곡이나 더 작곡했다. 그중 한 곡은 실제 가수가 부른 느낌을 주기 위해 아는 가수 지망생에 녹음을 부탁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개발사인 공게임즈는 물론이고 퍼블리셔인 게임빌까지 모두 결과에 만족, 나중에는 주제가 녹음을 위해 부활’의 보컬로 유명한 정동하를 섭외하기까지 했다.

“BGM 작업 건수도 줄었고 계약 외의 작업도 많았지만, 고생한 덕분에 개발사와 사운드 제작자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추후 작업할 BGM에 있어서도 개발사와 더 긴밀히 의견을 나눌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이죠.”

‘부활’의 정동하가 부른 <이사만루2013 KBO> 주제가

현장 없는 현장 사운드, 현실에 없는 현장 사운드 만들기


<이사만루2013 KBO>의 본격적인 사운드 작업이 시작된 시점은 지스타가 끝난 지난해 12월이었다. 사운드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현장감을 내기 위해서는 실제 야구장에서 사운드를 녹음하는 것이 최고였지만, 작업에 들어간 12월은 프로야구 시즌이 지난 시기였다. 그리고 <이사만루2013 KBO>의 출시 예정일은 다음 해 인 2013년 프로야구 시즌 개막일이었다.

“심판 사운드 같은 것은 오히려 편했죠. KBO 소속 심판들의 바지 가랑이를 붙잡고 부탁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그렇게 녹음했고요.(웃음) 하지만 진정한 난관은 구단 응원가였습니다. 수천, 수만 명이 부르는 응원가를 한겨울에 어떻게 녹음해야 할까요? 시범경기도 WBC 때문에 늦춰진 상황에서요.”



이 PM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빅밴드 내부 인원들을 녹음실에 몰아넣고 구단 응원가를 불러 보기도 했다. 하지만 열 명이 채 되지 않은 인원으로 야구장의 응원가를 재현하기는 무리였다. 그래서 고민 끝에 대학생 파트타이머 50명을 고용했다. 파트타이머를 고용하는 이상 추가 지출이 필연적이었지만, 현장감 있는 사운드를 위해 공게임즈를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결국 250만 원의 추가비용으로 50명의 인원이 운동장에 모였다. 현장감 있는 사운드를 위해 현장을 직접 만든 셈이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한겨울, 동국대 운동장에 대학생 50명이 모여 프로야구 응원가를 열창했습니다. 실제 야구장에 비하면 너무도 소규모였지만, 녹음하고 사운드를 만드는 입장에선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죠. 실제 야구장의 음량은 아니었지만, 50명의 목소리라면 후보정으로 어떻게든 해볼 수 있으니까요. 다만 원래대로라면 이런 녹음은 녹음실에서 해야 하지만, 한국엔 5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스튜디오가 없어 운동장에서 녹음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파트타이머 50명이 부른 두산 베어스 응원가. 앞이 보정 전, 뒤가 보정 후.

추운 날씨에 추가비용까지 들여가며 고생했지만, 문제는 효과음이었다. 공을 던지거나 칠 때 들리는 사운드를 녹음하기 위해서는 매우 넓은 공간의 녹음실이 필요했다. 하지만 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녹음실도 없는 한국에서 공을 마음껏 던지고 칠 수 있는 녹음실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해외에서 시판되는 사운드 소스를 구매해 변형시키는 작업을 거쳤다. 이렇게 가까스로 효과음이 구현되니 이젠 현실성과 게임성 사이의 밸런스가 발목을 잡았다.



“공을 치는 소리를 갖고 갔더니 ‘우리가 원하는 건 목탁 소리가 아니에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웃음) 현실성 있는 사운드 구현에만 신경 쓰다 보니 게임 사운드에 필요한 포인트를 간과한 것이 문제였죠. 실제 야구장에서 야수가 공을 던질 때 팔 휘두르는 소리와 공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날까요? 하지만 게임에서는 이런 과장이 필요하죠. 아무리 현실성을 살린다고 하더라도, 게임에 필요한 과장을 놓치면 재미까지 잃게 되잖아요.”

이렇게 공게임즈의 피드백을 받아 사운드를 수정하고 추가로 녹음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선 실제 야구경기에선 없지만, 게임의 재미나 유저의 이해를 위해 추가된 요소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게임즈와 빅밴드가 고생 끝에 완성한 결과물을 살펴보자.

<이사만루2013 KBO> 플레이 영상

이 PM은 마지막으로 사운드 기획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강연을 끝마쳤다.

“많은 개발사가 사운드를 전문 제작업체에 맡깁니다. 하지만 아무리 상세한 요청을 한다고 해도 양쪽이 상상하는 느낌을 조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시간에 쫓길 때는 더 그렇죠. 하지만 사운드 제작을 기획 단계부터 전문업체와 함께 진행한다면 어떨까요? 게임 기획 단계부터 전문업체와 의견을 조율하면 <이사만루2013 KBO>처럼 멋진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요? 사운드 제작이 게임 개발의 끝이 아닌, 게임 개발의 처음과 끝을 함께하는 과정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