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8시 30분의 풍경입니다. 공성전이 시작되기 30분 전. 많은 사람이 몰렸네요. <검은사막>에는 캐릭터끼리 마주치면 충돌 판정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 정도 인파가 몰리면 다니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 유저는 “충돌 판정은 왜 만들었냐”고 불평하기도 하더군요.
오후 8시 50분, 공성전 시작 10분을 남겨 놓고 팀원들이 성 구조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레인저와 소서러는 성벽 위에 올라가 저격할 자리를 잡더군요. 공성전의 기본인 원거리 요격을 위함입니다.
오후 8시 55분, 공성전 시작 전부터 기 싸움이 팽팽하네요. 공성전에는 총 6개의 길드가 참여했습니다. 한 세력당 3개의 길드가 연합을 맺어 두 팀으로 나뉘었습니다.
공성전이 시작되면 모든 참여자는 마을로 워프합니다. 이때 PC가 다운될까 정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공성전을 못하는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네요. 물론 랙이 엄청나게 발생해서 공성전 참여자는 물론 마을에 있는 모든 유저들이 불편을 겪었지만….
달려 달려 달려! 먼저 수호석에 도착해서 수비 태세를 갖추기 위해 모든 팀원이 달려나갑니다. 수호석을 장악하면 성문을 닫을 수 있어 방어전에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편 길드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아시스 용병단, 바다, 올리브 길드는 파괴본능 길드보다 수는 적었지만 레벨이 높은 유저들로 팀을 편성했거든요. 파괴본능 길드가 성문을 닫기 전에 따라서 들어온 정예 병력이 수호석을 탈환하러 공격해 왔습니다.
저 반짝이는 것들은 모두 죽은 유저가 떨어뜨린 아이템들입니다. 빛이 안 들어오는 건물 내부가 황금색으로 빛날 정도로 많은 유저들이 죽어 나갔죠. 어느새 파괴본능 길드는 궁지에 몰립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문을 닫은 탓에 원군이 들어오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죽은 아군들은 모두 마을에서 부활했고, 굳게 닫힌 성문 밖에서 각개전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적을 막아보려 했지만… 정확히 두 번 썰리고 사망했습니다. 알고 보니 파괴본능 길드원들 다수를 상대로 무쌍을 펼친 유저더군요. 이 유저에게 얼마나 많은 길드원이 죽었는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강했습니다.
할 수 없이 마을에서 부활했는데 금방 죽어버리고 맙니다.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순간 머리 위로 화살비가 쏟아졌거든요.
가까스로 화살비에서 벗어나도 성 밖에서 기다리는 적들에게 당할 뿐이었습니다. 죽을 때마다 아이템도 떨어뜨리고….
이 때 길드 마스터가 시작 지점부터 유저들을 모아 차근차근 전진하자는 작전을 지시합니다. 덕분에 부활지점 근처의 상대편을 처치하고 1차 성벽까지 올라갔는데….
어째 물약이 부족해 보이네요? 계속 마시다 보니 100개가 넘는 물약이 1/3만 남았습니다. 아직 공성전 종료까지 1시간이나 남아 있는 상황인데….
문제는 교역품을 돈으로 바꾸려면 무역상인을 만나야 하는데, 무역상인의 위치가 안전지역과 공성전 전투 지역의 경계 선상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행여라도 거래 도중 죽으면 가장 큰 자산을 잃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멀찌감치 돌아가는 길을 택합니다.
구차하게 살아남아 무역상과의 거래를 성사시킵니다.
그리고 물약 100개를 보충하는 데 성공합니다. 다행히 물약상인 주변은 PvP가 안 되는 지역이라 안심하고 물자를 보급할 수 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공성전에서 가장 긴장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공성전이 진행되는 시간에는 일부 안전지대를 제외한 마을 전체가 PvP 지역으로 설정됩니다. 덕분에 공성전에 참여하지 않는 유저들도 공성전 유저들에게 휘말려 사망하고 아이템을 떨어뜨리는 해프닝도 벌어졌고요.
그후 잠시 동안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상대팀이 전력을 가다듬어 반격하려나 보네요.
그때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방패를 든 워리어로 가드를 올린 채 입구를 막아버리면 안 되나요?”라고요.
옳거니, 생각해 보니 <검은사막>에는 캐릭터끼리 부딪치면 충돌 판정이 생겨서 이동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구현돼 있죠. 마을을 다닐 때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던 시스템이었는데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덕분에 마지막 5분을 남겨 놓고 남은 워리어들이 전부 집합해 방패벽을 만들어냅니다.
‘쿵, 쿵, 쿵!’ 상대팀 병력이 최후의 문을 돌파하려 합니다. 성문에서 먼지가 일어날 때마다 숨을 삼키게 될 정도로 긴장되는 상황입니다.
최후의 힘을 짜내 방어전을 펼칩니다. 워리어가 방패로 막는 동안 뒤에서 레인저와 소서러가 원거리 공격을 퍼붓고, 워리어 뒤에 바짝 붙은 자이언트가 큼지막한 도끼를 휘둘러 접근하는 적을 공격합니다.
공성전 종료까지 앞으로 2분!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워리어들이 방어에 성공합니다. 상대팀이 쏟아져 들어올 때, 그 뒤를 추격하던 아군들도 성문 안으로 들어와 합류했거든요. 덕분에 상대팀은 방패벽에 막힌 채 등을 공격당하고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합니다.
<검은사막> 최초의 공성전은 그렇게 마무리됐습니다. 대규모 격전을 펼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는 사람, 아직은 막 싸우는 수준이라 별로였다는 사람, 공성전 때문에 랙이 심했다고 하소연한 사람, 그리고 공성전에 휘말려 영문도 모르고 PK를 당했다는 사람 등, 각자의 경험에 따른 많은 의견이 나왔습니다.
아직 처음, 그것도 완성되지 않은 공성전 콘텐츠다 보니 전반적으로 대규모 격전을 펼치는 재미보다는 문제가 더 두드러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번에 지적된 문제를 수정해 두 번째 공성전이 진행되면 <검은사막>의 공성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평가가 나올 듯합니다.
공성전에 대한 평가는 1차 CBT 체험기에서 다루겠습니다. 그럼 4일차 기행기를 마칩니다. 공성전에 참여한 모든 유저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여담이지만 수리비와 물약값을 계산해 보니 1만 골드 적자더군요. 파산이라니!(…)
다음 기행기는 공성전으로 알거지가 된 필자가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교역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교역 밑천을 마련할 수 있게 행운을 빌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