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이하 중독법) 공청회가 법안 찬성 의견에만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치우쳐 진행됐다. 이번 중독법 공청회는 개최 전부터 참석 패널 배분이 공평치 않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참석한 패널을 보면 반수 이상이 법안에 찬성 의견을 표현한 사람이거나 중독법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다.
‘중독법’ 관련 공청회 일정 및 참가자 명단.(중독법 찬성 측 패널은 붉은색, 반대 측 패널은 푸른색)
실제로 진행된 공청회에서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윤명숙 교수는 ‘중독의 폐해와 사회경제적 파급’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4대 중독으로 규정한 마약, 알코올, 도박, 게임 중독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문제는 예시로 든 자료들이다.
윤 교수는 게임 중독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인터넷 중독’ 관련 통계 자료를 보여준 뒤 ‘인터넷 게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교묘하게 인터넷 중독을 게임 중독으로 만들었다. 그가 게임 중독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제시한 것은 게임에 빠져 존속 살해를 저질렀다는 등 인과관계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기사들이었다.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윤명숙 교수
윤 교수가 제시한 자료. 게임 중독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인터넷 중독 관련 통계자료를 예시로 들었다.
윤 교수가 제시한 자료는 게임도 4대 중독이 맞다고 주장했던 중독정신의학회가 배포한 ‘중독에 대한 100가지 오해와 진실’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 특히 게임 중독에 대한 근거 자료로 인터넷 중독 관련 통계 자료를 인용한 것이나 인과관계가 잘못된 기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같다. (관련기사: 중독정신의학회 “게임도 4대 중독이 맞다” 주장해 논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는 “도박이나 알코올처럼 게임도 과도한 자극과 보상을 주는 만큼,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며 중독법을 지지하고 나섰다. 주제 발표를 진행한 두 명의 참가자는 모두 법안을 지지했을 뿐, 법안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한 사람들이 없었다.
공청회 마지막 순서인 전체 토론에서도 진행자의 치우친 태도가 드러났다. 토론 진행을 맡은 인천성모병원 정신과 기선완 교수는 미리 내빈으로 참석한 찬성 측 참가자들에게 먼저 발언권을 주는가 하면, 본인이 직접 찬성 의견을 제시하는 등 사회자로서 균형을 잃은 태도를 보였다.
인천성모병원 정신과 기선완 교수
자유 토론 시간에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가 “게임은 콘텐츠가 한정돼 있어 모두 즐기고 나면 스스로 그만두게 된다. 4대 중독을 규정하는 데 왜 게임이 들어가는가?”라고 묻자 기 교수는 “정신과 의사들이 중독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업계에서 중독이 아니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법에 대한 구제적인 의견을 제시하라”고 말했다.
이어서 김 대표가 “게임 중독을 이야기하면서 인터넷 중독을 게임과 동시에 놓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통계를 인용할 때 왜 인터넷 중독 자료를 인용해 놓고 게임 중독을 다루느냐”고 지적하자 기 교수는 “말꼬리 잡지 말라”며 면박을 주었다.
김 대표의 발언에 대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가 “게임을 일반적인 중독물질로 규정하는 순간 아이들에게 게임을 권하면 안 되는 상황이 된다”고 거들자 기 교수는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 이중규 과장에게 답변 기회를 준 뒤, 이동연 교수의 반박을 묵살하기도 했다.
사회자에게 면박을 받은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
사회자에게 반론의 기회를 묵살당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이날 공청회는 정신과 의사들을 참석시켜 중독 관련 의견에 대한 권위를 세우는 한편, 아이건강국민연대 등 주최측의 입맛에 맞는 패널을 배치하며 중독법 찬성 의견에만 힘을 실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토론 자리에서 사회자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등 계속 중독법 찬성 의견에만 힘을 싣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