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반에서 1등을 차지하던 강 모군. 어느 날부터 강군은 부모에게 욕설을 하거나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물론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도 일삼았다. 강군의 부모는 아들이 변한 이유를 모두 게임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전문가 상담결과 문제는 게임이 아닌 강군의 부모에게 있었다. 지나친 간섭과 제재가 아이를 망쳤다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지난 5일 SBS는 스페셜 기획 <부모 vs 학부모 1부 공든 탑이 무너진다>라는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자기 주도성과 얼마나 긴밀한 연관이 있는지 보여준 이 날 방송에서는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원인이 무엇인지,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을 무조건 막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분석했다.
‘학부모’의 행위를 ‘부모’의 역할로 착각하면 안 된다
강군의 사연은 최근 중독법 논란에서 찬성측이 주장하고 있는 극단적 사례와 흡사했다. 강군 부모는 "우등생이었던 아이가 게임에 빠지면서 폭력적으로 변하고 학업까지 중단하며 탈선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강군과 부모의 대화를 지켜본 전문가 의견은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김정희 심리 상담소 소장은 강군은 게임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어 게임으로 회피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성적에 있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그것이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다 보니 게임을 한다든가 아니면 친구를 만나는 등의 회피 수단이 필요했다는 진단이다.
김 소장은 “부모 역할은 때마다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위험할 때만 들어가는 건데 강군 부모는 아이가 행동할 때마다 개입했다. 제재를 반복하면 아이는 도망갈 수밖에 없다. 도망가지 않으면 우울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기 의존, 사람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방송에서는 부모와 자녀 관계에 공부와 성적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100만 명 이상의 네티즌을 대상으로 빅데이터 분석 기법을 도입했다. 분석 결과 청소년은 공부에 대해 ‘답답함’과 ‘부모님께 죄송함’을 드러냈고, 학부모는 ‘부담감’과 ‘속상함’을 가장 많이 나타냈는데, '공부에는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됐다.
송길영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는 “공부에 시간과 돈을 사용한다는 것이 양쪽 모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이쪽에서는 미안하고 저쪽에서는 속상하고. 그게 연결되면서 서로 얼굴을 마주했을 때 웃기 힘든 상황 자체를 사회가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분석에 따르면 학부모와 아이의 갈등은 공부하는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디지털 기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기서도 학부모와 아이들이 디지털기기를 이해하는 방식은 달랐다. 학부모는 디지털기기를 이용하는 행위 자체를, 아이들은 그 안에서 이뤄지는 대인관계 이용하고 있다.
즉, 학부모는 게임이나 컴퓨터,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행위 자체를 공부에 방해된다고 나무라지만, 아이들은 재미보다 이를 대인관계를 맺어가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만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부모가 단절시키는 행위로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송길영 전문가는 “학원과 학교라는 곳들이 생활에서 전체 커리큘럼처럼 짜여 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아이들이) 친구를 만날 방법이 없다. 디지털 기기를 빼앗았을 때 가출을 하는 이유가 단순히 그것을 대안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게 실제 생활에 온전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게임에 빠져도 부모님은 믿어주셨다”, 서울대 합격비법은 ‘자기주도학습’
일반적으로 학부모들은 국내 최고 대학이라고 손꼽히는 서울대학교(이하 서울대) 학생의 공부 특성에 대해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선행학습을 했을 것이다’, ‘부모가 모든 것을 관리해줬을 것이다’ ‘놀지 않고 공부만 했을 것이다’ 등 모든 취미 생활은 배척한 채 부모의 강요대로 공부만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서울대 교육학과 신종호 교수가 서울대 경영학과 13학번 107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이들의 성적패턴은 다양했다. 어릴 때부터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온 학생은 전체 응답자 중 27.8%뿐이었고, 기타 응답을 제외한 55.2%가 고등학교 이후 성적이 향상됐다고 답했다. 그리고 응답자 대부분은 서울대 합격비법으로 ‘자기 주도성’을 꼽았다.
조사결과 학생들의 자기주도성은 부모와의 관계가 밀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경영학과 학생들의 부모 유형을 살펴보면 민주형과 애정형이 가장 많았는데, 이러한 특징은 자기주도학습 집단일 수록 두드러졌다. 인터뷰를 통해 이들은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던 이유에 대해 부모의 믿음을 바탕으로 스스로 공부에 대한 의지가 생겼을 때 성과가 좋았다고 설명했다.
이들 중에는 게임에 빠졌다가 극복한 경우도 많았다. 인터뷰에 참가한 마동한 학생은 중학생 시절 매일 PC방 청소년 출입 가능 시간인 10시까지 게임을 즐겼던 경험을 털어놨고, 유기훈 학생은 3년 동안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게임을 했다고 고백했다.
학부모가 아닌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지켜봤다
그러나 이들의 부모는 강군의 부모와는 달리 게임을 하지 말라고 말리지 않았다. 게임에 빠져도 방에서 PC를 치우거나 나무라지도 않았다. 학생들도 “부모님이 자신을 믿어주면서 신뢰가 생겼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공부에 재미를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불안감이 없었을까? 마동한 학생의 어머니는 “(아이가)PC방을 다니면서 성적은 떨어지고 방황도 했다. 실망은 했지만 아이들에게 내색할 수는 없지 않나. 대신 노력한 것이 있다면 도서관에 일하면서 집에 책을 두었다. 처음에는 쳐다도 안보던 아이가 책을 읽기 시작하더니 자연스럽게 게임을 그만두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부모는 “믿는다는 건 굉장히 힘들다. 어떨 때는 내가 잘하고 있는가 의구심과 불안감이 있다. 하지만 사실 부모 입장에서는 해준 것이 기본적인 것밖에 없는데 아들한테 너무 바라면 안 된다. 그건 내 욕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