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월드오브탱크> 그랜드 파이널(이하 WGL)이 3일간의 대장정 끝에 막을 내렸다.
워게이밍이 창사 이래 최초로 개최한 글로벌 e스포츠 대회인 WGL은 지난 4일부터 6일까지(현지시간) 진행돼 러시아 대표 나비(NAVI) 팀의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총상금 30만 달러 규모인 이번 대회는 여러 면에서 워게이밍의 e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번 WGL을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한국의 e스포츠와는 많은 차이점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워게이밍이 시도하는 e스포츠의 문화적 접근에 한국의 e스포츠 시스템이 합쳐진다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WGL를 현장에서 보고 느낀 점을 정리했다. /바르샤바(폴란드)=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e스포츠 행사가 아닌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같은 문화적 접근
워게이밍은 이번 WGL에서 기존 e스포츠 리그가 진행됐던 것과는 사뭇 다른 시도를 보여줬다. 일단 총상금 30만 달러는 우승팀이 독식하는 것이 아닌, 승자와 패자에게 골고루 나눠지는 파이트머니 방식으로 지급됐다. 이는 전 세계에서 모인 챔피언들을 인정하고 WGL을 통해 또 명예와 자부심을 갖게 만들기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종합격투대회인 UFC처럼 다양한 보너스 지급 방식도 채택했다. 예를 들어 시작 직후 3분 안에 경기를 승리로 마치면 보너스 상금을 지급하는 ‘블리츠’처럼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멋진 경기를 유도하고 관객들이 볼 거리가 나올 수 있도록 다양한 시스템을 마련했다.
관람객들도 경기 중간 쉬는 시간을 이용해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하고 상품을 얻어가는 등 WGL을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참여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호응하고 녹아들었다. 이는 기존 e스포츠 리그 현장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여기에 특정 한 팀을 응원하기보다 각 팀이 멋진 장면을 선보일 때마다 박수를 치고 응원하는 모습은 그들이 특정 팀을 보기보다 WGL을 보러 왔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개최 장소인 폴란드 바르샤바의 중심에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인 멀티키노의 위치도 신의 한 수였다. 거리에 별도의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주말을 맞이해 놀러 나온 아이와 부모, 연인들은 자연스럽게 행사장을 찾았고 WGL 경기를 지켜봤다.
이는 폴란드에 <월드오브탱크>를 즐기는 유저가 많다는 점도 있지만, 단순한 게임 팬들의 e스포츠 행사가 아닌 하나의 문화행사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워게이밍과 바르샤바 시가 노력한 부분도 컸다. 워게이밍이 e스포츠를 계속 문화로 만들어가겠다는 말이 하나씩 실천되고 있는 셈이다.
이변의 연속, 종이 한 장 차이의 실력이 검증된 각 국가의 실력
WGL이 <월드오브탱크>를 즐기는 전 세계 유저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유는 분명하다. 각 지역 서버가 나뉘어 있다 보니 진정한 세계 최강자가 누군지 가늠할 수 없었는데 WGL을 통해 이를 가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사람이 러시아 대표 나비 팀을 우승후보로 꼽았다. 실제로 나비가 보여준 실력은 명불허전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도 넘을 수 없는 벽은 아니었다. 파이널 라운드에서 나비는 유럽 챔피언 버쳐스 프로(Virtus.pro)에게 패하면서 패자조로 떨어졌고 이는 모두에게 이변으로 다가왔다.
결국 최종우승은 패자조에서 올라와 다시 맞붙은 나비가 가져갔지만 2~5세트까지 버쳐스 프로와 나비는 무승부를 기록할 만큼 그들의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어느 한 팀의 일방적인 경기가 아닌, 모든 경기가 흥미진진했고 이는 WGL의 흥행으로 이어졌다. 특히 한국을 대표해서 나간 두 팀은 탈락의 아픔을 맛봤지만 가치 있는 수확을 거두었다.
WGL 첫날 다른 해외 팀들은 한국팀을 꼭 잡고 갈 수 있는 약체 팀으로 평가했다. 마치 2014년 월드컵에서 우리가 꼭 잡아야 할 약체 팀으로 알제리 대표팀을 보는 듯한 시선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러나 NOA는 또 다른 우승후보였던 러시아의 R.R 팀을 만나 1세트를 가져가는 등 이변 아닌 이변을 만들어냈다.
최종 결승전에서 명승부를 펼친 나비 팀(흰색 유니폼)과 버쳐스 프로(노란색 유니폼).
탈락했지만 우승보다 값진 자신감을 얻은 한국 팀
또 하나의 한국대표인 ARETE도 가장 공격적인 전술을 운영하는 팀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상대로부터 철저한 전력분석을 당했고 이는 아쉽게 탈락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ARETE를 탈락시킨 PVP Super Frined는 결승 라운드까지 진출할 정도로 강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한국팀은 세계 정상급 팀들의 장벽에 막힌 것으로 보여지지만,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며 지켜본 바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WGL에서 처음으로 각 지역의 챔피언들을 직접 상대해본 한국팀들이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번 WGL은 트위치TV를 통해 3일 동안 모든 경기가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트위치TV 뷰는 12만을 기록하면서 워게이밍도 WGL을 글로벌 e스포츠로 운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물론 WGL 운영이 완벽했다고 볼 수는 없다.
선수들의 연습공간, 현지 중계팀의 살인적인 일정, 그리고 대회 룰에 따라서 월등한
우세를 보였음에도 무승부로 처리되고 결국 승리를 놓치는 등의 모습은 향후 WGL의 발전을 위해서 보완돼야 할 점들이다. 하지만 처음 열린 WGL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보다는 득이 더 많았던 e스포츠 리그였음은 분명하다.
시간이 지나 워게이밍의 차기작 <월드오브워플레인>과 <월드오브워십>까지 리그전이 개최되어 WGL이 워게이밍 글로벌 리그로 발전했을 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기대되는 이유다.
WGL에서 준비해온 기량을 유감 없이 발휘한 한국대표 NOA 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