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중독법은 4대 중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이다. 특히 4대 중독에는 마약∙알코올∙도박을 비롯해 게임이 거론되면서 사회적인 논란에 휩싸였다. 게임업계를 비롯한 중독법 반대 측에서는 ‘게임중독’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중독법으로 인해 게임이 부정적 낙인이 찍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27일 NDC14 강단에 오른 김지연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 박사 역시 어떻게 ‘인터넷 게임중독’이라는 용어가 과학적으로 학계의 검증을 받지 않은 채 이토록 널리 사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게임중독’이 법률적∙사회적 용어로 인정받게 된 과정을 되짚어봤다. /디스이즈게임 송예원 기자
‘게임중독’이라는 용어는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된다. 일부 심리학자들이 ‘물질남용장애’ (Substance Abuse Disorder) 진단기준을 응용해 ‘인터넷 중독장애’라는 용어와 진단 기준을 도입한 이후 ‘행위중독’(behavioral addictions) 개념으로 확장됐다.
그러나 김지연 박사는 ‘행위중독’이라는 용어 자체에 오류가 많다고 지적했다. ‘행위중독’이라는 말은 우선 개념 정의상 취약한 부분이 있다. 의학적으로 중독 개념은 본래 약물처럼 섭취하거나 체내로 주입되는 물질에 대한 의존을 의미한다.
그런데 게임 등의 기술 사용 행위는 신체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발생하므로 상충한다. 또한 ‘행위중독’이라는 증상의 보편적 인과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예를 들어 진단기준 항목에서 ‘인터넷/게임 이용시간’과 사회적응 정도 간의 상관성을 찾으려 했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이렇듯 인터넷 게임중독 척도는 타당성도 낮고 임의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는 ‘책 중독’, ‘연애 중독’, ‘인간 중독’과 같은 은유적인 문학적 표현이라는 게 김 박사의 설명이다. 실제 하지는 않으나 강조의 의미 또는 주위를 환기시키려는 의도에서 사용되고 있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명백하지도 않은 이 용어는 어떻게 확산했을까? 국내 유입의 시작은 1990년대 후반 심리학 및 교육학 분야 연구 논문에 등장하면서다. 특히 2001년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에 의거 ‘건전한 정보문화 확산 및 인터넷 중독실태 조사 예방 및 해소 사업’을 시작하고 2002년 ‘인터넷중독 실태조사’를 실시한 영향도 컸다.
이렇듯 정부에서 계속 사용하다 보니 이와 관련한 규제 법안이 제출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법안으로 2009년 ‘국가정보화기본법 제30조에 ‘인터넷 중독’이 포함되면서 문학적인 지위에서 법률적인 지위를 갖게 됐다. 법적으로 인터넷은 중독적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역시 이 용어에 대해 학계의 합의가 없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법률적인 정의가 완성되자 국가 예산을 투입해 인터넷중독을 진단하거나 인터넷 중독률 감소계획과 사업을 진행해야만 했다. 실제로 인터넷 전체 사용자 10% 내외의 ‘인터넷중독’ 비율이 존재한다고 매년 발표하기도 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라는 정부기관의 이러한 발표는 대중매체를 통해 재생산되었고 대중들에게는 익숙하고 당연한 용어로 승격됐다. ‘인터넷중독’ 또는 ‘게임중독’이 존재하는 것으로 사회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은유적인 표현에 불과했던 용어가 법률적 지위 획득을 거쳐 결국 사회적 지위 획득까지 발전한 모양새다. 그 결과는 2011년 ‘셧다운제’를 도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김지연 박사의 주장이다.
물론 반대하거나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게임중독에 대응하여 ‘게임과몰입’이라는 대안적 용어가 등장했다. 게임중독은 표현이 개인적이고 병리적 증상을 지시하는 해석이라는 비판을 하면서 사회분석틀이 필요함을 제시했다.
문화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게임중독이라는 말을 대체할 ‘게임과몰입’이라는 용어를 법률적으로 사용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미 법률적으로 ‘중독’이라고 인정받은 표현을 ‘과몰입’이라고 바꿔야 할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라는 요구를 해왔다.
따라서 현재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는 과몰입과 중독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과몰입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중독개념의 문제를 정확하게 비판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독자적 분석틀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분석틀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과몰입 중독 진단 기준이 기존 중독 모델에서 대부분의 항목을 빌려왔다. 또한, 과몰입에 대한 개념 정의 자체도 Addiction, indulgence 등 다양하게 표기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하지만 김지연 박사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중독’ 용어 사용자들이나 ‘과몰입’ 용어 사용자들 모두 무엇인가 새로운 변형이 발생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양측 모두 용어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부족함은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 사회적으로 새로운 현상의 해석에 기여했다.
김 박사는 “중독 용어 사용자들은 인터넷/게임 기술이 단순한 도구에 머물지 않음을 경고했다. 반면 과몰입 용어 사용자들은 그 오류를 지적하며 비판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