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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NDC14] 야생의 땅: 듀랑고, “문명처럼 변수가 부딪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양승명 리드디자이너, 모바일게임의 다음 혁신 강연 정리

안정빈(한낮) 2014-05-28 11:15:35
<야생의 땅: 듀랑고>는 야생 서바이벌을 다룬 모바일 MMORPG다. 그리고 <문명>이나 <심시티>처럼 자동으로 생성되는 맵을, <풋볼매니저>처럼 다양한 변수가 부딪히며 의외의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게임이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며 모바일에서는 지금까지 시도된 적 없는 방식의 게임이기도 하다.

이처럼 독특한 방식의 게임 <야생의 땅: 듀랑고>를 넥슨에서는 어떻게 개발을 결심하게 됐을까? 결론은 간단하다. 기술의 발전이 모바일에서도 계산 프로세스 위주의 게임개발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런게임이나 반복되는 퍼즐 위주의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새로운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NDC14 화제의 게임인 <야생의 땅: 듀랑고>. 넥슨 양승명 리드 디자이너에게 <야생의 땅: 듀랑고>의 개발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게임의 생태계에 대한 내용들을 들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넥슨의 양승명 리드디자이너

양승명 리드 디자이너는 먼저 게임을 크게 4가지로 구분했다. 데이터 중심의 게임과 소셜 프로세스 중심의 게임, 랜덤 프로세스 중심의 게임, 마지막으로 계산 프로세스 중심의 게임이다. 

모든 게임은 데이터와 프로세스를 섞어서 정보를 전달한다. 여기서 데이터는 미리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들, 그래픽이나 영상, 컷신 등이고 프로세스는 실제로 유저가 무언가 플레이를 하게 만드는 콘텐츠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어떻게 조합했고, 발전시켰느냐에 따라 게임을 구분하는 셈이다.


대부분의 게임은 데이터와 프로세스 구간이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데이터는 말 그대로 정해진 데이터가 그대로 나오는 구간, 프로세스는 미리 짜놓은 규칙 속에서 직접 플레이가 가능한 구간이다.


데이터 중심의 게임


데이터 중심의 게임은 컷신과 스테이지가 번갈아 나오는 일반적인 콘솔게임 형식이다. <언차티드>나 <모던워페어> 시리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인트로나 컷신은 100% 데이터로만 이뤄져 있으며 프로세스로 구성된 각 스테이지 사이에 데이터가 들어간다.

데이터 중심의 게임은 데이터를 보여주는 것을 더 중시하며 프로세스는 이를 보조하는 역할만을 맡는다. 예를 들어 유저가 아무리 빨리 적을 죽이더라도 정작 데이터 구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유저의 행동을 ‘클리어했느냐 못했느냐’의 1비트로 축약하는 게임이다.

데이터 중심의 게임은 그만큼 전통적인 미디어에 가깝다. 영화나 소설 등에 능한 사람들이 이끌어가기 쉬우며 강렬한 몰입감과 임팩트를 줄 수 있다. 다만 데이터는 일일이 아티스트가 만들어야 하는 만큼 개발비용이 높고, 매번 데이터 구간이 같은 만큼 반복 플레이를 거의 하지 않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헤비레인>처럼 다중 스토리와 멀티엔딩 등의 요소를 채택하고 프로세스에서 유저의 선택이나 행동에 따라 데이터가 조금씩 달라지는 구성의 게임도 등장하고 있다.






소셜 프로세스 중심의 게임


소셜 프로세스 중심의 게임은 전통적인 방식의 MMORPG에 해당한다. 데이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적고 대부분의 프로세스가 유저 간의 상호작용에 맞춰져 있다. 과거의 대규모 MMORPG는 물론 <리그 오브 레전드>나 <서든어택> 등 매번 다른 유저와 경쟁하는 PVP 기반의 게임도 이에 해당한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자체가 콘텐츠가 되고, 다음 플레이를 예측할 수 없는 만큼 반복플레이가 원활하다. 같은 프로세스라도 매번 다른 상황을 즐길 수 있으니까. 다만 다른 사람에 의해 생기는 경험이 꼭 유쾌한 것만은 아니므로 스트레스가 쌓이기 쉽고, 결국 이를 견딜 수 있는 사람만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최근의 소셜 프로세스 중심의 게임은 상대적으로 데이터 비중을 높이고 소셜 프로세스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MORPG나 싱글플레이, 스토리 등이 강조된 MMORPG가 이에 해당한다. 이 경우 데이터 중심의 게임과 비슷하게 비용이 치솟고 반복 플레이가 되레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다.






랜덤 프로세스 중심의 게임


데이터보다는 프로세스에 집중한 건 같지만, 프로세스를 ‘랜덤’으로 풀어낸 게임도 있다. <디아블로> 같은 게임들이다. 랜덤 보상의 매력을 이용해서 같은 몬스터를 수백 번 처치해도 약간씩 다른 경험을 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개발됐기 때문에 비용에 비해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소셜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적으며 확률 분석과 밸런싱만 잘 잡는다면 무한에 가까운 플레이도 가능하다. 랜덤하게 등장하는 퍼즐을 맞추는 간단한 모바일 퍼즐게임 등도 여기에 해당한다. 다만 조심해서 사용하지 않을 경우 단순히 랜덤보상을 이용해 사람의 판단력을 어뷰징하는 게임으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계산 프로세스 중심의 게임


마지막으로 계산 프로세스 중심의 게임은 <풋볼매니저>나 <심시티> <문명>처럼 주로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많이 보이는 방식이다. 프로세스에 높은 비중을 두되 프로세스에서 많은 계산량을 통해서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는 게임들이다. 

할 때마다 게임의 양상이 달라지고. 학습에 의해 게임을 점점 더 정교하게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반복플레이의 가능성도 높다. 확률에 의한 보상을 추구하는 랜덤 프로세스 게임과 달리 자신이 능숙할수록 확실히 좋은 결과를 얻는 구조를 갖고 있다. 다만 게임의 많은 부분을 이해해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학습곡선이 너무 높다. 

그래서 계산 프로세스의 게임들은 대부분 현실에서 익히 알고 있는 룰을 기반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게임이 많은 편이다. 유명 게임은 손에 꼽힐 만큼 만들기 어렵다는 것도 단점이다. 그리고 <야생의 땅: 듀랑고>가 선택한 방식 역시 이 방식이다.






모바일에서 구현이 가능해진 계산 프로세스


<야생의 땅: 듀랑고>는 왜 모바일게임으로는 보기 드물게 계산프로세스 중심을 택한 걸까? 양승명 리드 디자이너의 설명은 “서버 기술의 발달로 모바일에서도 원활한 계산프로세스의 구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계산프로세스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실제 물리연산을 게임에 적용시킨 프로세스부터,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다수의 에이전트(유닛)에 의한 상호작용이 벌어지는 에이전트 기반 시뮬레이션(심시티), 특정 개체가 지능이 있는 것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인공지능(심즈), 정해진 규칙에 의해 환경을 생성하는 절차적 생성방식(문명) 등이다. 

어느 것이든 상당한 CPU 자원을 필요로 한다. 초창기 모바일 CPU와 배터리, 네트워크, 용량 등의 제약에 다양한 게임을 만드는데 제약이 심했다. 데이터 중심의 게임을 만들기에는 영상이 들어갈 용량이 부족했고, 계산 프로세스 중심의 게임을 만들기에는 CPU의 제한이 심했다. 소셜 프로세스 중심의 게임을 만들기에는 네트워크 요금과 환경이 문제가 됐다.

그래서 모바일게임의 주류는 결국 <퍼즐앤드래곤> <애니팡> <캔디크러시 사가> 등 단순한 규칙에 랜덤 프로세스를 더한 게임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클라우드 기술과 분산서버 기술이 발전하고. 낮은 비용으로 서버 CPU와 저장공간 활용이 가능해지면서 계산 프로세스 자체를 서버로 옮겨서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모바일에서 계산 프로세스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제약이 사라진 것이다.

양승명 리드디자이너는 “모바일게임의 초창기가 랜덤 프로세스였다면 계산 프로세스 게임이 새로운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논리적인 규칙으로 생성, 유지되는 지형과 생태계

 
<야생의 땅: 듀랑고>는 <문명>처럼 절차적 생성 방식에 따른 계산 프로세스를 도입했다. 지형과 기후는 논리적인 규칙에 따라 자동으로 생성되고, 지형과 기후에 맞춰 동식물의 분포도 자동으로 이뤄진다. 

여기에 욕구 기반의 동물 시뮬레이션을 도입해서 온도와 습도, 번식 패턴 등에 따라 자연스럽게 동물과 식물이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야생의 땅: 듀랑고>에 나오는 모든 동식물은 욕구에 맞춰서 행동한다. 특정 지역에는 특정 몬스터만 사는 경우는 결코 없으며, 목이 마르면 물가로 모이고 배가 고프면 사냥에 임한다. 

덕분에 실제 프로토타입에서도 자연히 인과관계에 따라 생태계가 구성된다. 예를 들어 초창기 시뮬레이션에는 먹을 게 떨어진 초식공룡들이 맵 끝까지 먹이를 찾아오고, 여기서 육식공룡들이 초식공룡을 학살하며 거대한 무덤이 생기는 현상도 벌어졌다. 



플레이어가 월드에 미친 영향도 그대로 계산 프로세스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나무를 베고 나면 그 자리에 새로운 나무가 자랄 수도 있고, 옆자리의 나무 품종이 새롭게 싹을 내릴 수도 있다. 특정 식물을 모두 베어버린다면 해당 식물이 멸종할 수도 있을 것이고, 울타리나 담장 등을 만들어서 통행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지속적인 소셜과 계산 프로세스의 누적을 통해서 풍부한 창발성(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 현상)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관건은 ‘예측과 제어’ 하는 사람도 재미있는 게임을 위한 노력


다만 계산프로세스를 이용한 게임에는 함정이 있다. <야생의 땅: 듀랑고>의 개발팀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일단 예측이 어렵다. 게임 상태가 의도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제약을 두지 않는다면 플레이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의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다만 제약이 너무 심하면 자유도와 창발성을 막는 만큼 이 부분에서 적절한 조절이 필요하다. <야생의 땅: 듀랑고>에서는 한 지역의 식물 수를 제어하거나 하는 제약 등을 고려 중이다.

배우기가 어렵다는 것도 단점이다. 계산프로세스 중심의 게임에서 유저가 역이용 혹은 학습할 수 없는 룰은 랜덤이나 마찬가지다. 유저가 최대한 단계적으로 게임을 많이 익혀가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일단 계산프로세스의 초기 진입장벽 자체가 낮은 편은 아니다.



계산 프로세스에 집중한 게임은 맞지만, 데이터나, 랜덤 프로세스, 소셜 프로세스 부분에서도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다. 최근 게임수준에 맞추려면 그래픽과 모션 등의 데이터가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야 하고, 흥미로운 탐험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랜덤보상도 필요하다. 유저간의 거래 등   상호작용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도 고민 중인 부분이다.

양승명 리드 디자이너는 “계산 프로세스 게임의 경우 개미집 신드롬에 주의해야 한다. 밖에서 개미집을 보면 재미있지만 정작 안에 있는 개미들은 죽을 맛인 경우가 많다. 플레이어가 실제로 어떻게 느끼는지 항상 주시하며 재미있는 경험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나가겠다”며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