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천 폴리곤에 화면 속의 모든 것을 담아내야 했고, 텍스쳐매핑 기술을 이용하기 위해 소련 붕괴 이후 흘러나온 군사기술까지도 손을 댔다. 일본의 전설적인 게임개발자, 스즈키 유가 말하는 <버추어 파이터>의 개발비화다.
지금은 당연한 3D 그래픽 하나를 구현하기 위해 90년대에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까? 3D 캐릭터를 싸우게 만든다는 기획이 통과되기까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을까? 대학생활부터 <버추어파이터>의 개발까지. 그의 게임일대기를 들어보자.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스즈키 유는 대학교서 3D 건축을 졸업논문으로 썼다. 당시에는 컴퓨터 능력이 떨어져서 3D 계산이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특히 둥글고, 관절이 많은 것들일수록 만들기가 어려웠는데 그의 꿈은 해후(바다달팽이)를 3D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1983년 세가에 입사했을 때, 이미 세가에는 유사 3D게임이 많았다. 데이터나 게임 내부는 3D로 구성돼있지만 표현만은 2D로 하는 방식이다. 지금도 종종 활용되는 방식이다. 그러다 92년 처음으로 3D처리가 가능한 칩인 모델1이 완성됐다. 3D게임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스즈키 유는 이를 활용해서 그의 첫 3D게임인 <버추얼레이싱>을 만들었다. 30프레임으로 움직이고 6천 폴리곤까지만 표현할 수 있었던 모델1의 한계상 그는 6천 폴리곤 속에 모든 그래픽을 담아야 했다. 자연히 폴리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연구가 시작됐다.
스즈키 유가 생각한 3D 그래픽의 발전 방향. 마지막에 위치한 것은 그가 구현하고 싶은 해후(바다달팽이)다.
그 와중에 그는 인체의 움직임을 만드는데 도전했다. 자동차를 정비하는 피트워크 장면에 다양한 인간모형을 넣었고, 그 움직임을 실험했다. 충분한 인체실험(?)을 해봤으니 이제는 3D 캐릭터를 이용해서 게임을 만들어보자고 결정했다. <버추어파이터>의 시작이다.
개발은 시작됐지만 기획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일단 장르가 문제였다. 3D 캐릭터를 사용하기로 했지만 럭비를 만들려면 한 팀에 15명씩 30명, 축구를 만들려면 한 팀에 11명씩 22명의 캐릭터가 필요하다. 6천 폴리곤의 한계를 가진 모델1으로는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스즈키 유는 2개의 인체만으로 플레이가 가능한 ‘대전격투’게임을 그의 차기작으로 택했다.
<버추어 레이싱>에서 피트워크로 3D 인체의 초기 모델을 만들었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 스즈키 유의 <버추어파이터> 개발 노하우
당시 시장은 <스트리트파이터2>가 격투게임의 왕좌에 군림하던 시절이다. 이후에도 격투게임은 쏟아졌지만 어느 것도 <스트리트파이터2>를 넘지는 못했다. 격투게임의 시장은 여전히 넓었지만 스즈키 유는 <스트리트파이터2>를 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다만 그때의 스즈키 유는 게임제작 경험이 없었다. 평소에 게임을 하지도 않는다. 성공한 3D 격투게임이 없다는 주변 반대로 심했다. 그래도 너무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업무용 게임을 만들 때 사용하는 5개의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개발을 추진했다.
시장가치, 차별화, 평균게임시간, 인터페이스, 반복도의 5가지 항목으로 나뉜 체크리스트는 지금도 스즈키 유가 사용하고 있다. 시장가치는 문제가 없었다. 전세계적으로 격투게임이 많았고 시장도 컸으니까. 세계 최초의 3D 격투게임이니까 차별화도 문제가 없었다.
격투게임을 위한 5가지 체크리스트.
평균플레이 시간은 조금 많은 고민이 들어갔다. 스즈키 유는 <버추어파이터>가 하루 수입으로 최고가 되면 게임센터에 더 잘 팔릴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평균플레이 시간을 3분 이내로 설정했다. 하루에 200게임, 대전으로 따지면 400게임. 거기에 200엔의 플레이비용을 감안하면 하루 8만엔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구조다. 이것은 <버추어파이터> 기획의 목표 중 하나가 됐다.
인터페이스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게 좋을 거라 생각했다. 당시 가장 성공한 <스트리트파이터2>는 버튼이 6개가 있었다. 그래서 이와 다른 방향성을 고민했다. 버튼을 되도록 2개로 줄이면 좋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 아예 확 늘려버리자고 생각했다.
아래는 스즈키 유가 당시 고민했던 버튼방식 중 일부다. 버튼을 패널 가득하게 배치하고 특정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이리저리 문지르는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스마트폰의 스와이프 조작을 크게 늘린 방식이다.
오른쪽이 많은 버튼을 놓는 방식이다. 스와이프처럼 손으로 훑어서 조작한다.
막 눌러도 기술이 나가는 건 처음부터 ‘계획’한 시스템이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게 반복도다. 반복에서 중요한 건 패자다. 승자는 자연스럽게 다음 판으로 넘어가니까 그들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다만 패자는 큰 차이로 질 경우 다음 게임에 도전하지 않게 된다. 아케이드는 주변에서 보는 사람이 많다 보니 게임에서 질 때 창피함이 더하다.
그래서 스즈키 유는 조금만 더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게임을 개발했다. 랭킹 1위의 승률을 75% 정도가 되도록 설정하고, 하위에 있는 유저도 운이 따르면 이길 수 있도록 했다.
일단 커맨드 입력 방식의 스킬을 없앴고, 어린이나 청소부 아주머니들을 모셔다가 게임기 앞에 앉히고 버튼을 막 두들기게 했다. 그리고 그 마구잡이로 두들긴 데이터를 샘플링해서 공통된 패턴에 유용한 기술들을 할당했다. 버튼만 막 눌러도 우연히 기술이 나가서 운이 좋으면 상대방을 이기게 만든 것이다.
청소부 아주머니, 여직원, 어린이까지 대상이 됐다.
인터페이스는 최대한 심플함을 유지했다. 버튼을 6개에서 2개로 줄이고 가드 버튼을 추가했다. 적은 버튼으로도 많은 기술이 나올 수 있도록, 상대방과의 거리에 맞춰 적당한 기술이 구현되게 만들었다. 같은 주먹이라도 상대와 가까우면 자동으로 잽이 나오고 상대와 멀면 스트레이트가 나와서 주먹이 상대에 닿는 방식이다. 연속기도 PPP만 눌러도 상대에게 다가가면서 공격이 나오도록 여러 가지 연구를 했다.
스즈키 유가 생각한 <버추어파이터>의 기본은 가위바위보다. 가드는 타격을 이기고, 잡기가 가드를 이기고, 타격은 다시 잡기를 이긴다. 커맨드입력 게임이 아니라 상대가 어떤 기술을 쓸 지 읽어서 이기는 수를 내는 게임이라 생각했다.
여기에 상중하 어디에서 공격이 오느냐를 보고 대전하는 게임. 가드의 기능을 레버에서 분리해 버튼으로 추가함으로써 보다 알기 쉽게 가위바위보 시스템이 마련됐다.
가위바위보의 물고 물리는 조작
PPP만으로도 캐릭터가 이동하며 상대를 공격한다.
권법 연습을 통해 만들어진 <버추어파이터>의 리얼리티
스즈키 유는 <버추어파이터>의 개발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도 이야기했다. <버추어파이터 2> 덕분에 모션 디자이너라는 직종이 도입됐다. 그전까지는 그런 직종이 없었다. 그만큼 좋은, 훌륭한 모션을 만들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3D에 이미지를 덧씌워 입체감을 강조하던 텍스쳐 매핑조차 없었던 시절인 만큼 모션을 좋게 해야만 리얼리티가 살아났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책상 위 작업을 집어치우고 모든 직원들이 권법 연습을 했다. 킥이나 펀치를 잘할 수 있게 된 사람부터 책상으로 돌아가서 일을 시작했다. 그 결과 충분히 향상된 리얼리티를 얻을 수 있었다.
그가 <버추어파이터>의 리얼리티를 확신하게 된 곳은 아케이드의 로케테스트 현장이었다. <버추어파이터>의 개발이 끝나갈 때 게임센터의 로케테스트를 진행했는데, 당시 스즈키 유는 뒤에 숨어서 사람들의 플레이를 몰래 살펴봤다. 근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화면을 보며 ‘아야!’ ‘아파!’ 등의 반응을 보였고, 스즈키 유는 그 순간 이 게임이 통하겠구나하는 확신을 가졌다.
당시 3D 격투게임은 절대 성공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격투게임은 적당한 캐릭터 간의 거리가 중요한데 2D는 거리를 간단히 알 수 있지만 3D는 그게 어렵다. 그래서 <버추어파이터>는 카메라가 자동적으로 캐릭터를 쫓아가면서 직선에서 30도 이상 캐릭터가 벗어나지 않도록 개발했다. 3D임에도 거리를 쉽게 예측할 수 있었고 3D 징크스도 깼다.
만들다, 훈련하다, 다시 만들다가
소련의 붕괴 덕분에 발전한 <버추어파이터2>
1994년에 세가는 <버추어파이터2>를 출시했다. <버추어파이터2>를 기획하던 시기에는 모델1에서 모델2로 보드가 교체됐다. 덕분에 30만 폴리곤까지 폴리곤을 사용할 수 있었고, 모션 캡쳐 기법도 도입했다. 여기에 체격차이가 있는 캐릭터를 넣어서 캐릭터 다양성을 늘리게 노력했다. 모두 그에 따른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버추어파이터2>에서 그래픽은 60프레임으로 향상됐다. 다만 프레임이 늘면서 프레임마다 표현할 수 있는 폴리곤은 5천으로 줄었다. 그래서 이미지를 폴리곤에 덧씌우는 실시간 텍스쳐 매핑 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해서 그래픽 향상을 꾀했다.
텍스쳐매핑은 사실 소련의 군사용 기술이었다. 그게 소련이 해체되면서 민간기업으로 흘러갔고, 세가는 이를 공동으로 개발하며 활용했다. 당시에 텍스쳐 매핑이 가능한 칩 1개에 2억엔을 호가하던 시절이다. 세가는 양산을 통해 칩의 가격을 50불까지 떨어트리는데 성공했고, 텍스쳐 매핑은 <버추어파이터2>의 본격적인 기술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모션캡쳐를 활용한 <버추어파이터2>
이 밖에도 60프레임으로 움직이는 캐릭터를 위해서는 모든 작업처리를 1천분의 16초 내로 끝내야 했고, 상중하의 공격방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체격 차이에 따라 공격방향을 보정하는 기술도 필요했다. <버추어파이터>는 언제나 당시 최신 기술에 대한 도전이었다는 게 스즈키 유의 이야기다.
캐릭터는 리온과 슌리가 출시됐고. 게임 시스템에서는 카운터 어택이 도입됐다. 개발팀들이 소림사까지 가서 뼈에 금이 가는 혹독한 과정을 겪은 후에야 중국 취재를 마치고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모션캡쳐 기술이 개발되면서 ‘취권’처럼 복잡한 모션도 만들 수 있게 된 것도 <버추어파이터2> 시기부터다.
스즈키 유의 당시 모습. 위의 사진 오른쪽이 스즈키 유다.
실패로 끝난 <버추어파이터3>의 도전. 더욱 빨라진 기술의 발전
96년에 세가는 <버추어파이터3>를 런칭했다. 그때부터는 모델3를 사용했는데 1백만 폴리곤을 처리할 수 있었고, 텍스쳐 컬러나 자연광의 계산 등도 가능하게 됐다. 비나 눈, 의복의 움직임 등도 계산할 수 있었다. 눈에 띄는 기술의 발전이다.
게임적인 면에서 가장 큰 변화는 이제 링이 아닌 곳에서도 전투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지형의 기복이 있는 곳에서도 싸움이 가능해졌고, 격투표현도 더 복잡해졌다. 다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버추어파이터>의 구성에서는 상중하의 판정이 중요한데 지형지물에 따라서 상중하의 계산이 복잡해졌다. 평평한 지형에서는 중단 공격인데, 상대가 위로 올라가 있으면 자연히 하단 공격이 되니까 상중하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더 많아졌다.
지형에 따라 공격 위치가 바뀐다.
결국 후속작인 <버추어파이터4>에서는 지형의 굴곡을 없애게 됐다. 여러 도전을 많이 한 <버추어파이터>가 실패를 한 부분이다. 이후 <버추어파이터>시리즈는 96년도에 <버추어파이터 키즈>를, 2001년에는 <버추어파이터4>를 발표했고, <버추어파이터4>까지 기획과 개발을 맡던 스즈키 유도 세계관을 감수하고 작업을 총괄하는 프로듀서의 자리로 옮겨났다.
이후 스즈키 유는 세가를 퇴사했고, <버추어파이터>시리즈는 R&D팀에서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스즈키 유는 90년 이후 몰라보게 발전한 기술을 추억하며 꼭 자신이 아니어도 <버추어파이터>의 진화는 계속 이어져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아래는 스즈키 유와의 일문일답이다.
<버추어파이터1>과 <버추어파이터5>의 파이 모습 변화
TIG> 현재 어떤 일을 진행 중인가?
YS넷이라는 곳에서 기획과 프로듀서를 담당하고 있다. 기획은 모바일 아케이드 콘솔 안 따지고 하고 있고, 3개 게임을 개발 중이다.
TIG> <버추어파이터>라는 이름의 계기가 있다면?
90년대 무렵에 버추얼 리얼리티, 가상현실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시기여서 여기서 나왔다. 가공의 선수라는 뜻으로 <버추얼파이터>라고 짓고 싶었는데 버추얼 자체가 등록 상표로 등록이 되어있어서 L을 빼고 버추어라고 지었다.
TIG> 자면서 프로그래밍 했다는 일설이 있는데 진짜인가?
일단 난 프로그래밍을 계속 해오던 사람이다. 꿈에서 보는 때도 있다. <버추어파이터>만 생각하고 살다 보면 꿈에서 나오기도 한다. 꿈에 프로그래밍이 나타나서 이걸 현실에서 옮기기 위해 침대 옆에 노트 등을 비치해놓고 있다. 꿈을 그대로 옮겨 놓으려 했던 것도 사실이고 가끔 꿈에서 해결책이 나온 적도 있다.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자면 <버추어파이터>의 튜닝을 하던 시절에 제프리와 울프가 좀처럼 밸런스를 맞추기 어려웠다. 매번 약하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는데 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제프리와 울프가 우는 꿈까지 꾼 적이 있다. 우습지만 누구든 하나만 생각하고 있으면 그렇게 꿈을 꿀 거라 생각한다.
그가 추구하는 3D 그래픽 궁극의 목표. 해후다.
TIG> 버추어가 세계 최초의 3D 격투라고 볼 수 있는데, 왜 3D를 만들었나?
격투게임을 처음으로 만든 이유라면 근본적으로 대학교 때 3D에 흥미를 갖게 됐다. 그래서 3D 내에서 가급적이면 어려운 것에 도전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마침 게임 회사에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게임 시장에 알 맞는 게 아니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게임 마켓에 적절하면서도 기술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것. 그게 인체를 사용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다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제일 만들고 싶은 건 해후라는 연체 동물이다. 근데 연체동물과 대전해봐야 그 게임이 잘 팔리겠나?
TIG> 이건 꼭 이루고 싶다는 게 있다면?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쉔무 3>를 만들어 달라고 몇 년째 듣고 있다. 여건만 되면 해보고 싶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했던 것 같은데. 그 이외의 분야를 보자면 게임업계의 기술이나 영상은 굉장하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게임 이외의 세상으로 뛰쳐나가는 시도를 하고 싶다.
게임의 노하우가 이미 애니 등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이 밖에도 융합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항상 새로운 걸 하고 싶다. 그냥 새로운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극적이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