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각으로 2월 2일 8시 30분에 시작된 북미 최대의 스포츠 쇼 ‘슈퍼볼’이 그 막을 내렸습니다. 슈퍼볼은 미식축구 최강 팀을 가리는 경기로, 북미에서는 어떤 TV쇼도 넘지 못할 무시무시한 시청률인 70%정도를 매년 기록할 정도로 초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경기이기도 합니다.
올해 슈퍼볼에서 승리하면서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Vince Lombardi Trophy)를 가져간 주인공은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츠입니다. 뉴 잉글랜드의 우승 장면은 상당히 드라마틱했는데요. 3쿼터까지 14대 24로 뒤지던 뉴 잉글랜드는 마지막 쿼터에서 두 번의 터치다운으로 14점을 득점한 데 이어 상대의 터치다운 기회를 극적으로 막아냈습니다. 결국 뉴 잉글랜드는 28대 24의 역전 드라마를 만들면서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전 세계가 슈퍼볼로 떠들썩한 가운데, 이 극적인 경기 결과를 매우 근사하게 예측해낸 시뮬레이션이 있어 화제입니다. 바로 EA스포츠의 <매든 NFL>입니다.
EA는 슈퍼볼을 앞둔 지난 1월 27일에 자체적인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했는데, 3쿼터까지 14대 24로 뒤지던 뉴 잉글랜드가 두 번의 터치다운으로 역전승을 거둔다고 예측했습니다. 비록 2쿼터까지의 점수는 맞추지 못했지만, 3쿼터 이후의 점수와 4쿼터의 경기 양상, 결과까지 맞춰버린 셈입니다. 이정도면 월드컵을 떠들썩하게 했던 점쟁이 문어 ‘파울’보다 더 정확하죠?
경기 규칙 모방에서 사실적인 데이터 시뮬레이션까지 진화한 스포츠 게임
스포츠 게임은 태생부터 실제 스포츠를 모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과거 8~90년대 8비트, 16비트 게임기 시절에는 하드웨어의 한계로 인해 경기 규칙을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하는 데서 그쳤습니다. 그마저도 완벽하게 만들 수 없어서 듬성듬성 헛점이 보였죠. 축구 게임에서 오프사이드 규칙을 적용하지 못해서 패스 한번에 골을 만들기도 하고, 야구 게임은 타이밍만 맞추면 누구나 홈런을 쳐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현실을 모방하는 스포츠 게임이기에 헛점이 많을수록 유저는 아쉬움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또 ‘이게 내가 아는 그 스포츠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겠죠. 스포츠 게임은 보다 사실적인 느낌을 주기위해 약 20년에 걸쳐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스포츠 게임의 발전 방향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선수의 외형과 경기장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시각적인 발전이고, 또 다른 방향은 데이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구현입니다.
선수의 외형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려 한 예는 다양한 스포츠 게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선수의 얼굴을 본따 캐릭터의 외형을 만들기도 하고, 실제 축구장을 게임 속에 그대로 구현하기도 했습니다.
데이터의 경우에는 스포츠의 특성에 따라 다릅니다. 축구의 경우 실제 스카우터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하고, ‘기록의 스포츠’인 야구는 선수의 기록에 따라 능력치 산정해 사실적인 데이터를 만들기도 합니다.
피파 시리즈의 첫 작품인 <피파 94>의 그래픽입니다. 실제 축구의 규칙을 그대로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20년이 지난 <피파 15>의 그래픽입니다. 선수, 경기장의 그래픽 수준을 끌어올려 실제 중계같은 화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피파 14>의 선수 얼굴 그래픽입니다. 왼쪽이 사진이고, 오른쪽이 게임 내 그래픽인데 크게 차이나지 않을 정도까지 구현했습니다.
야구 게임인 <MVP 베이스볼 온라인>같은 경우, 실제 야구 기록을 이용해 선수 능력치를 산정합니다. 보다 사실적인 데이터를 추구하기 위함이죠.
최근 스포츠 게임은 현실적인 그래픽과 함께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수 개개인의 활약 등을 예측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렇게 스포츠 게임의 시뮬레이션이 정교해지고 사용자들의 호응을 얻자 스포츠 게임 개발사는 각자의 시뮬레이션을 알리는 활동을 펼치기도 합니다. 큰 대회나 경기를 앞두고 앞다투어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스포츠 시뮬레이션의 홍보 전쟁이 불 붙었던 때가 바로 지난 2014년 FIFA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입니다. 당시 축구게임들은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의 경기를 앞두고 자체 시뮬레이션을 통해 경기 예상을 발표했습니다.
이 때 가장 명암이 엇갈린 건 바로 <피파 온라인 3>와 <풋볼데이>였습니다. 두 게임 모두 월드컵 기간 동안 주요 경기 예측 결과를 미리 발표하면서 자신들의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자랑했거든요.
먼저 <피파 온라인 3>는 한국 대 벨기에전을 앞두고 다양한 분석을 곁들인 예측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당시 <피파 온라인 3>는 한국이 1:2로 패배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실제로는 0:1로 패배했으니 결과는 맞춘 셈입니다.
축구 매니지먼트 게임 <풋볼데이>는 대한민국 대표팀이 속한 조별예선 H조의 경기 예측 결과를 미리 발표했는데, 꽤 정확하게 들어맞았습니다. 조별예선 경기 승패는 1경기를 빼고 모두 맞췄고, 6경기 중 3경기의 점수까지 정확하게 맞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풋볼데이>는 독일의 우승을 비롯해 승패 예측 적중률 83%를 기록하면서 시뮬레이션에 대한 이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켰습니다.
데이터에서 진화, 이제는 감정까지 시뮬레이션하는 스포츠 게임
이제 데이터에서 기반한 시뮬레이션 능력은 스포츠 게임이 갖춰야 할 필수 능력이 됐습니다. 스포츠 게임들은 정교한 시뮬레이션에서 만족하지 않고 유저들에게 보다 현실적인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꾸준히 진화하고 있죠.
좀 더 생동감 넘치는 경기 결과를 제공하기 위해 스포츠 게임들은 다양한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공의 사실적인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한 물리엔진 도입, 경기 결과에 따라 반응하는 관객, 야구 게임이라면 각 팀의 응원가를 직접 녹음해 넣는 경우 등이 있겠죠.
마지막으로 <피파> 시리즈의 사례를 소개할까 합니다. <피파 14>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공 움직임을 위한 물리엔진 개선과 경기 중 선수들의 감정 표현을 게임 속에 넣었습니다. 격한 태클을 당한 선수가 화를 낸다거나, 연이어 실점하면 선수단 전체의 정신력이 무너지는 등의 감정적 요소가 게임에 녹아들었습니다. 실제 축구 경기에서도 선수들이 감정 조절에 실패해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 같습니다.
결국 데이터에서 기반한 선수와 공의 움직임에 따른 결과뿐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변화까지 게임 속에 넣은 셈인데요. 앞으로 스포츠 게임들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스포츠의 재미를 전달할 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