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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밸브 전속 경제학자, 유럽 경제위기 극복의 중심에 서다

그리스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게이브 뉴웰이 스카웃했던 경제학자

임상훈(시몬) 2015-02-26 02:43:43

미국과 영국 주식시장이 24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기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고,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 타결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날 가장 환호한 것은 그리스 투자자였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이 그리스의 개혁안을 수용했다는 소식에 그리스 증시는 9.81% 급등했다. 은행주도 폭등했다. 피레우스은행이 20%, 그리스국립은행과 알파은행은 각각 17% 올랐다. 


난데없이 디스이즈게임에서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냐고?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의 중심에 '게임'과 관련된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대표로, 유로그룹에서 유럽 각국의 재무장관과 열정적으로 협상을 벌인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Yanis Varoufakis, 아래 사진)이 그 주인공이다.


그리스 아테네 출신인 바루파키스는 영국 에식스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가 됐고, 호주 시드니 대학에서 경제학 강사를 했다. 2000년 그리스로 돌아온 뒤 아테네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스스로를 '자유주의적 마르크시스트'라고 부르는 그는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경제관을 펼쳐 유명세를 탔다.

 

이 블로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게임업계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밸브의 창업자이자 대표 게이브 뉴웰(Gabe Newell)이었다.

 

2011년 10월 바루파키스는 뉴웰로부터 온 이메일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했던 게임이 <스페이스 인베이더>였던 그는 밸브가 어떤 곳인지, 뉴웰이 어떤 인물인 줄 몰랐다. 처음엔 사기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상경제에 대한 이야기, 특히 서로 다른 두 개의 가상 경제를 통합하는 내용에 특별히 관심이 갔다. 블로그에 유로존의 문제와 그리스의 유로존 가입 등에 관해 글을 써왔던 터였다.

 

며칠 뒤 그는 열네 살 조카로부터 밸브가 '신 같은 회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해 11월 학회 참석 차 미국에 간 그는 이틀 간 밸브에 쳐박혔다. 비록 게임은 잘 몰랐지만, 모든 데이터가 기록되고, 수치를 조절해 실험해 볼 수 있는 환경은 '경제학자의 꿈'이었다. 그는 바로 밸브의 '전속 경제학자'(an economist in residence)가 됐다. 2012년 3월부터 6월까지 밸브에 머무르며 가상 경제의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런데, 바루파키스는 어떻게 그리스 재무장관이 됐을까? 

 

유로존 가입 이후 그리스에 경제 위기가 찾아왔다. 채무를 갚을 능력이 없어진 2010년, IMF와 EU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IMF 외환위기 시절 우리나라처럼, 채권단의 요구에 따라 긴축재정을 했다. 경제규모는 25% 줄었고, 실업률은 26%가 됐다. 

 

일반인은 살기가 더 어려워졌는데, 세금은 더 걷고, 연금은 확 줄였다. 빈부격차는 벌어졌다. 자살자가 늘어났다. 사람들은 뿔이 났다. 2015년 1월 말 선거에서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시리자 좌파연합'이 압승을 거뒀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당수가 수상이 됐다. 그가 연합정부 구성을 완료하자마자 채무 구조 재협상의 중책을 맡을 재무장관으로 낙점한 인물이 야니스 바루파키스다. 

 

 

바루파키스는 유로존 출범 때부터 통화통합의 부작용을 거론해 왔다. 긴축경제를 '재정적 물고문'이라고 부르며 국가 경제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 따라서, 채권자인 유럽 각국에서는 시리자 좌파연합의 집권과 바루파키스의 입각에 대해 걱정했다. 

 

다행히 탈세 방지 및 부패 척결을 골자로 하는 그리스의 개혁안이 유로그룹에 수용됐다. 개혁안은 자본가에 대한 과세와 지하경제 단속을 통해 재정 수입 확충과, 보험이 없는 실업자층에 주거,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인도주의적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바루파키스는 유럽의 '섹시 아이콘'이 됐다. 채권단과의 공식 협상에서도 넥타이를 매지 않고 위 단추를 풀어헤친 채 셔츠를 바지 밖으로 꺼내 입는 파격적인 옷차림을 즐긴다. 아예 가죽점퍼 차림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처음엔 불쾌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반응이 바뀌었다. 독일공영방송 ZDF 진행자들은 “섹시하다”, “카리스마 넘친다”, “조각 같은 외모”라며 칭찬하기에 바쁘다. 그리스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디벨트지도 “골치 아프지만 스타가 탄생한 건 분명하다”고 인정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포르투갈 사회당 이자벨 모레이라 의원은 페이스북에 ‘젠장, 그리스 재무장관 너무 섹시한데’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면서 “영화배우 브루스 윌리스처럼 멋진 바루파키스 장관에게 여성 숭배자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전했다.

 

 

​그나저나, 그리스의 경제 위기를 복지 탓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직 있다면, 아래 뉴스를 꼭 보기 바란다. 잘못된 프레임에서 벗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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