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취재

게임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진중권이 말하는 ‘게임의 정치화’

“게이머들이 학습하는 ‘능동성’, 정치와 사회를 바꾼다“

김승현(다미롱) 2015-03-27 19:20:07

‘게임은 도피적인 문화다’ ‘현실에 아무 쓸모 없는 시간 때우기다’ 게임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평하는 이야기다. 과연 이들의 말처럼 게임은 유저들에게 환상만 보여주는 것일까? 진중권 동양대학교 기술미학연구소장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게임은 근대 이후 실종되었던 시민들의 ‘적극성’을 되찾아 준 매체다. 진중권 교수가 27일, ‘게임은 정치다’ 토론회에서 ‘정치의 게임화’ 라는 주제로 발표한 내용을 풀어서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동양대학교 진중권 교수

 

 

‘유저’가 된 시민, 일상을 변화시키려 하다

 

게임과 인터넷의 가장 큰 공통점은 무엇일까? 진중권 교수는 두 매체의 공통점을 ‘상호작용’으로 꼽았다. 인터넷에서는 자신의 의견이나 행동에 대해 실시간으로 피드백이 계속 발생한다. 또 유저는 게임 속에서 자신의 행위에 따라 환경이, 이야기가, 혹은 팀의 승패가 바뀌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의 메커니즘을 현실에 적용시켜 ‘유저’들에게 자신이 무언가를 바꾸고 있다는 ‘실감’을 주는 ‘게이미피케이션’은 그의 말에 따르면 ‘쌍방향 소통’의 가장 진화된 형태다. 근대 이후 실종되었던 놀이와 일상의 합일을 다시 되살린 장치이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 놀이는 노동과 같은 일상과 다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사회가 분업화되고 일상이 진지해지면서 놀이와 일상은 분리되었다. 그리고 시민들은 이러한 분리 속에서 능동성을 잃어갔다. 철저하게 분리된 사회 속에서는 이전과 같은 ‘자신의 영향력’을 체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되고 나의 선택에 따라 세계가 변화한다.  

 

하지만 영상 시대가 개막하고 게임이 대중화되면서 이러한 놀이와 일상의 분리가 다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매체는 게임의 재미요소를 게이미피케이션이라는 형태로 앞다투어 적용하기 시작했다. 시민은 이를 접하며 일상에서도 게임의 재미, 즉 자신의 참여로 인해 바뀌는 무언가를 다시금 체험하게 되었다. 문화의 놀이화, 놀이의 일상화가 시작된 셈이다.

 

진중권 교수가 이를 체감한 것은 2008년 촛불집회였다. 그는 당시 촛불집회를 일컬어 ‘거대한 정치적 MMORPG’라고 표현했다. 집회의 시작에는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표출하고 표현하려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집회의 확장에는 이런 정치적 욕망보다는 ‘나의 행동이 무의미하지 않다’ ‘나로 인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라는 서사적 욕망의 영향이 더 컸다. 

 

자신의 행동이 역사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체감 덕분이었다. 진중권 교수는 이러한 ‘유저’들의 행동은 그들이 평소 익숙했던 ‘게임의 패러다임’에서 비롯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게임이 아이들을 IS로 이끌었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어떤 미래를 그리는가

 

이러한 게이미피케이션의 효과에 최근에는 정치권에서 이러한 장치를 의식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정치의 게임화를 통해 대의민주주의가 유발하기 쉬운 ‘정치적 소외’를 극복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확장시키려는 시도다. <누구나 게임을 한다> 등의 저자인 ‘제인 맥고니걸’은 이러한 사이클을 일컬어 “우리가 게임에서 서사적 대의에 복무하는 법을 배울수록, 현실에서 서사적 노력에 더 많이 기여하게 될지 모른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지난 해에는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일명 IS)가 비디오게임을 이용해 테러리스트를 양성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이외에도 극단주의적인 정치사상이 게임을 홍보물로 이용하는 등 게이미피케이션을 이용한 부정적인 사례는 종종 발견된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사례를 일컬어 게임의 폭력성이 현실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진중권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도구에게 선악을 물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긍정적인 사례, 부정적인 사례 모두 게임, 즉 ‘게이미피케이션’은 도구로써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진 교수는 이에 대해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해 구축하려 하는 이상향에 대한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게 선으로 보이는 것이 남에게는 악으로 보일 수 있다. 세상 모든 도구가 그러하듯, 게이미피케이션 또한 오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게임의 폭력성 논란

 

 

일각에서는 게이미피케이션의 선악이 아닌, 정치가 게임화, 혹은 역으로 게임이 정치화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전자는 정치가 게임과 결합해 정치라는 행위 자체의 무게를 없앨 것을 염려한다. 후자는 게임이, 일상이 정치화됨에 따라 게임의 순기능인 ‘즐거움’이 사라지고 모두가 매사 무거움이 시달릴 것을 경계한다.

 

진중권 교수는 이러한 의견 모두를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추세 자체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며 이를 긍정적으로 이용할 것을 요구했다. 진 교수는 “이미 사람들은 게임 등을 통해 스스로 ‘이야기’에 영향을 끼치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이야기하며, 고민해야 할 것은 이러한 '서사시’적인 문화가 영웅주의가 판치는 과거의 문화로 회귀하지 않고, 모두의 참여로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가는 흐름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