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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환호와 침묵의 쌍곡선, 확률형 아이템 이슈는 어떻게 흘러왔나

확률형 아이템 규제 이슈를 둘러싼 사건과 기류 총정리

김승현(다미롱) 2015-04-09 15:10:26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둘러싼 기류가 환호와 환영, 당혹과 침묵이라는 기묘한 쌍곡선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다. K-IDEA가 2014년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안을 발표할 때만 하더라도 반신반의하는 의견은 있을지언정 이를 환영하지 않는 의견은 없었다.

 

하지만 K-IDEA의 침묵 이후 업계, 그리고 국회가 연출한 장면은 이러한 기류를 바꿔놓았다. 급기야 지난 3월 발의된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의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규제 법안임에도(?) 유저들은 환영하고 업계도 대놓고 반대하지 못하는 전례 없는 모습을 그려냈다.

 

도대체 지난 반년 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번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둘러싼 그간의 사건과 여론의 흐름을 한데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2014. 11. 07] K-IDEA, 다시 한 번 확률형 아이템 자율 규제안 발표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다시 떠오른 것은 2014년 11월이었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이하 K-IDEA)는 2014년 11월 7일, '청소년 보호를 위한 게임 업계 자율규제안'을 발표했다. 전체이용가 게임 확률형 콘텐츠의 최종 획득 목록 공개, 확률형 아이템에 현금이나 캐쉬 아이템 포함 금지, 확률형 콘텐츠에 경고 문구 추가, 상설 모니터링 기구 신설 등이 포함된 내용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확률형 아이템 규제의 주요 이슈는 청소년 보호였다. 협회는 자율규제안의 제목부터 ‘청소년 보호’를 내세웠고 적용 대상도 ‘전체이용가’로 한정되었다. 자율규제안 자체도 확률형 아이템의 주요 논란인 ‘사행성’을 막기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보였다.

 

 

이러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확률형 아이템은 유저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은 비즈니스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유저들의 반응은 자율규제 가능성 자체에 대한 의심은 있더라도 대부분 “이제라도 자제한다니 다행이다”라고 의견을 남겼다.

 

물론 K-IDEA의 발표를 믿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K-IDEA(당시 게임산업협회)는 이미 2008년과 2011년,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선언했다가 흐지부지 넘어간 바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K-IDEA가 2014년 공개된 자율규제안은 과거 게임산업협회가 발표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 K-IDEA는 자율규제안을 2015년 상반기 중 안착시키겠다고 발표하며 자신감을 표했다. 다만, K-IDEA는 이후 내부 조율 등을 이유로 자율규제안에 대한 진척사항 공개나 이와 관련된 외부 할동 등을 가지지 않은 채 수면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2015. 02. 27] <마비노기 영웅전> 랜덤박스 확률 조작 논란 발생


 

협회의 발표가 있은 지 3개월 후, 넥슨의 <마비노기 영웅전>이 갑자기 확률형 아이템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주인공은 한정판매 아이템 ‘스칼렛 플루트’ 박스의 구성품인 ‘일렁이는 불 조각’이었다. 일렁이는 불 조각은 스칼렛 플루트를 개봉하면 일정 확률로 얻을 수 있는 토큰 아이템으로, 박스에서 좋지 않은 것이 나와도 일렁이는 불 조각을 모아 희귀 꾸미기 아이템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완화책이었다.

 

문제는 일렁이는 불 조각의 비정상적인 획득 확률이었다. 지난 2월, 한 유저가 인벤토리에 일렁이는 불 조각이 없을 경우 박스에서 무조건 일렁이는 불 조각 아이템이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연이어 다른 유저가 해당 아이템이 인벤토리에 많이 있을수록 뽑기 등장 확률이 떨어진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두 제보는 곧 넥슨이 완화책인 일렁이는 불 조각의 뽑기 확률을 조작해 뽑기를 유도했다는 의혹으로 발전했다.

 


 

이에 넥슨은 일렁이는 불 조각이 100% 나오던 현상이 버그라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일렁이는 불 조각이 많을수록 아이템 획득 확률이 떨어진다는 제보에 대해서는 획득 로그 공개를 통해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이러한 넥슨의 해명에도 유저들의 의심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게시판이나 댓글 등을 통해 이번 사건, 나아가 확률형 아이템 자체에 대한 혐오감을 표했다. 어떤 유저는 이번 사건이 정부의 게임 규제를 불러올 것이다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반감이 최고조에 이른 듯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2015. 03. 09] 새누리당 정우택 “확률형 콘텐츠의 확률, 모두 사전에 공개하라


 

3월 9일,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2014년 K-IDEA가 발표한 자율규제안보다 더 강했다. 전체이용가 게임 대신 모든 게임이 대상으로 되었으며, 확률 공개 대상 또한 확률형 아이템뿐만 아니라 게임 내 모든 확률형 콘텐츠로 확대되었다. 정 의원은 “확률형 아이템이 게임 산업을 갉아먹는다”라고 강하게 발언하며, ‘게임의 사행성 제거’를 발의 이유로 내세웠다.

 


 

유저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많은 유저들이 과거 사례를 이야기하며 정 의원의 법안에 찬성했다. 어떤 유저는 이러한 이 법안이 확률형 아이템 일색인 게임계 비즈니스 모델을 일신할 것이라 기대했고, 어떤 유저는 업계가 그동안 자율규제를 미적거린 탓에 이런 법안까지 발의됐다며 업계의 태도를 탓하기도 했다. 유저들이 게임 관련 규제안을 이토록 뜨겁게 환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반면 개발자들과 업계는 조용했다. 개발자들은 법안이 명시한 ‘모든 확률 콘텐츠의 획득률 공개’라는 조항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우려했다. K-IDEA는 지난해 11월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안을 발표한 후 이런 법안이 발의돼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유저들의 환호 때문인지 어느 쪽도 이러한 의견을 당당히 표하진 못했다. K-IDEA만이 기자들의 물음에 “자율규제에 맡겨 달라”는 입장을 전했을 뿐이었다.

 


 

 

[2015. 03. 26] 16개 게임매체, 확률형 아이템 주제로 토론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논란이 시작된 지 3주 후, 16개 게임매체 기자들이 모여 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본래 업계나 국회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지만 양측의 사양으로 기자들의 토론이 주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공통된 의견은 K-IDEA에서 이전에 공개한 자율규제안보다 더 강력한 자율규제였다. 다만 이에 대한 세부 내용은 달랐다. 모두 자율규제가 이상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자율 규제의 현실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이들은 정우택 의원 규제안의 모호함이 업계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우려했고, 어떤 이들은 확률형 아이템 문제가 업계의 이익이 걸린 이상 현실적으로 자율 규제 자체가 무리라고도 주장했다.

 

다만 이에 대한 유저들의 의견은 보다 강경했다. 기사를 본 유저 대부분은 자율규제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미 한 차례 흐지부지된 자율규제안에 대한 불신, 그리고 계속된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혐오가 원인이었다. 실제로 한 유저는 “개발사는 유저를 을()로만 본다”며 불신을 표했고 어떤 유저는 “법안은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2015. 03. 27] 주연은 없었다, ‘게임은 정치다’ 토론회 개최


 

적극적으로 움직임에 나선 것은 업계가 아닌 학회였다. 한국컴퓨터게임학회와 한국게임학회, 게임인연대는 3월 27일, 서울 중앙대학교에서 확률형 아이템 법안 등을 주제로 ‘게임은 정치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최근 확률형 아이템 이슈를 둘러싼 기류를 그대로 재현했다. 학회와 유저(정확히는 방청객)는 그동안 업계가 그동안 확률형 아이템 문제에 너무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고 질타했다. 한 방청객은 아예 “그동안 업계에서 뽑기 아이템만 만드니 이런 법안까지 나온 것 아니냐”고 강하게 발언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답할 사람은 없었다. 그동안 확률형 아이템 비즈니스 모델을 이끌어 왔던 대형 업체도, 국내 게임사들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K-IDEA도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름 업계를 대변해 나온 곳은 개인개발자나 중소개발사들의 연합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모바일게임협회와 인디게임개발자모임 뿐이었다. 이들은 법안의 위험성과 현실의 어려움에 대해선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방청석에서 들려오는 국내 게임사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불만에는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말한 위험성이나 자정 필요성, 현실적 어려움은 온라인에서 유저들의 냉소만을 불러 일으켰다. 유저들은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의견에는 “이미 6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고 반론했고, 콘텐츠 확률 공개에 대한 우려에는 아예 “상관없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이외에도 “업계가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 “그동안 유저를 너무 우습게 보았다” 등 업계에 동의하지 못하는 의견만 가득했다.

 


 

 

[2015. 04. 08] K-IDEA 강신철 회장 “자율규제안, 한층 강화해서 내놓겠다”


 

그렇다면 지난해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안을 발표했던 K-IDEA는 수면 아래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 물음에 대해 K-IDEA 관계자는 조율 만을 이야기했다. 회원사 간 협의할 것이 많다 보니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미 11월 구체적인 규정까지 공개한 자율공개안에 다시 회원사 간 협의가 필요한 것은 지난 반년 사이 더욱 강해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K-IDEA 강신철 신임 협회장은 8일, 취임 간담회에서 “꾸준히 (자율규제안의 반응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최근 여론이 더 강해진 만큼 이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빠른 시일 내에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K-IDEA 강신철 신임 협회장

 

자율규제안이 강하게 변하는 만큼 업체들과 조율해야 할 것이 다시 늘어났다는 의미다. K-IDEA에서는 최대한 회원사와 다른 게임 관련 단체들과 협의해 채찍보다는 당근을 통한 자발적 참가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러한 K-IDEA의 계획에 유저들의 반응은 아직 싸늘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아직 K-IDEA가 말한 ‘자율이라는 것 자체를 믿지 못했다. 이미 두 차례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유저들은 업체들이 민감해하는 것도, ‘당근’이라는 온화한 유인책도 미덥지 못해하는 눈치다. 그들이 생각하기엔 이미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이슈는 업계가 모두 달려들어 해결해야만 할 안건이기 때문이다.

 

K-IDEA가 목표로 하는 자율규제안 적용 시기는 올해 상반기. 과연 K-IDEA는 새로운 자율규제안으로 유저와 국회, 업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결말까지 2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