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릇파릇한 신입 시절, 술자리의 실수 때문에 두고두고 괴로웠던 적이 있나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일에 호기 있게 신청했다가 감사인사를 듣긴커녕 코가 꿰어 호구 노릇을 한 적은 없으신가요?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독이 되기도 하고, 한 번의 실수가 평생 가는 낙인이 될 수도 있죠. 근로자의 날을 맞아 게임 속 노동자(?) 캐릭터 5명을 모아봤습니다. 이들의 삶을 교훈 삼아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준비합시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주사는 상사가 없는 곳에서, <클로저스>의 ‘김유정’
술은 마법의 음료입니다. 적절히 활용하면 기분도 좋아지고 서먹했던 사이도 급속도로 가까워지지만, 반대로 너무 남용하면 몸도 상하고 마음도 상하고 인간관계와 사회생활도 파탄 나기 딱 좋습니다.
여기 한 명의 애주가가 있습니다. 30대라는 젊은 나이에 ‘유니온’이라는 거대 조직의 간부직을 코 앞에 둔 사람 김유정. 하지만 이 친구, 술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 옥의 티입니다. 술을 너무너무 좋아해 가끔 눈 앞의 상사가 상사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요.
결국 회식 때 인사불성 상태로 부장 멱살 잡은 것이 화근이 돼, 간부를 앞둔 사무직이 직접 요원을 관리해야 하는 현장직 중간관리자가 되고 말았죠. 상부에서는 문제아 관리를 위해 ‘우수한’ 인력이 필요하다곤 말하는데, ‘문제아 관리’ 자체가 당사자에겐 불이익 아닐까요?
물론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현장직 또한 사무직 못지 않게 지구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한 보직입니다. 허나 <클로저스>에서 김유정이 검은양 팀에서 겪는 일을 보면 이런 입에 발린 말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말 잘 안 듣지, 위에서 내려오는 지원은 쥐꼬리만하지, 직속 상사는 맨날 추파만 던지고 자기 말은 들어 처먹지도 않습니다. 그야말로 고생하는 중간 관리자 캐릭터의 표본과도 같습니다. 어찌나 고생이 심한지 본인을 이 지경으로 만든 술을 다시 입에 댈 정도로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허구한 날 맥주로 스트레스를 달래지만 위안은 그 순간뿐. 오히려 맥주로 무너지는 몸매가 다시 한 번 스트레스를 주네요. 설상가상으로 그녀가 관리하는 검은양 팀에는 <클로저스> 최고의 섹시 아이콘인 서유리가 있어 그를 더 괴롭힙니다.
그리고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멋진 성과를 내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줘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김유정이 우수한 인력은 맞나 봅니다.
■ 한 번 얕보이면 끝장!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가몬’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꼭 한 번씩 모두가 꺼리지만 꼭 누군가는 수행해야 하는 업무가 생기곤 합니다. 이런 일을 멋지게 처리하면 주변의 신임도 얻고 커리어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죠. 하지만 조심하세요. 잘못했다가는 코가 꿰이니까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가몬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가 게임에서 맡은 역할은 초보 도적들의 훔치기 대상이 되어 주는 것. 참고로 훔치기는 적대적인 상대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캐릭터는 반드시 해당 진영과 관계가 ‘중립’ 이하이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신청자가 없었던 것일까요? 가몬은 이 일(?)만 10년 가까이 계속 하게 됐죠.
허나 대도시 한 가운데 ‘노란색’ 이름이 거슬렸던 것일까요? 정작 도적들보다 다른 캐릭터들이 가몬에게 더 관심을 가집니다. 눈 앞에 노란색 몬스터(?)가 있으니 초보도 한 대 치고 고레벨도 한 대 치고, 언데드가 고기 먹으려고 한 대 치고, 심심하니 그냥 한 대 치고…. 가몬이 최고 레벨을 찍어도 그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예 유저들이 공격대를 꾸려 공략해오기 시작했죠.
오그리마에 침략한(?) 죽음의 기사를 홀로 맞설 정도로 용기 있는 사나이 가몬은 유저들의 동네북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오죽하면 정작 도적 유저들이 퀘스트 좀 하게 가몬 좀 그만 죽이라고 하소연 할 정도로요.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가 <판다리아의 안개>에서 가로쉬의 반란에 분연히 맞서 싸운 덕에 오그리마의 영웅으로 거듭났다는 것이죠. 이제는 이름도 ‘동맹’인 녹색으로 바뀌었고 더 이상 초보 도적들에게 털리는 역할도 아닙니다. 오히려 주둔지 여관을 순회하며 퀘스트를 주는 영웅(?) NPC로 거듭났죠.
■ 군대든 사회든 중간만 갑시다,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건설로봇’
대한민국 군대에는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훌륭한 격언이 있습니다. 튀지 말고 뒤쳐지지도 말고 얌전히 중간만 가라. 허나 2500년 대 코프룰루 섹터에는 이 격언이 전해지진 못했나 봅니다. 일단 ‘건설로봇’은 이 말을 모르는 것 같거든요.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건설로봇은 팔방미인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친구입니다. 당장 일꾼 본연의 임무만 하더라도 광물과 가스라는 서로 다른 종류의 자원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채취합니다. 여기에 건물도 지을 줄 알고 기계 장치를 고칠 줄도 알죠. 광부이자 건축가, 기술자인 셈입니다.
허나 건설로봇의 진가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 친구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우월한 체력이죠! 시리즈 모두 3개 종족 일꾼 중 가장 높은 체력을 가진데다가 심지어 <스타크래프트2>에서는 공병 주제에(?) 전투병인 해병과 같은 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스타크래프트> 시절에는 해병보다도 체력이 높았죠.
허나 사람이 너무 잘나면 몸이 피곤한 법입니다. 높으신 분들의 생각은 똑같죠. '뭐? 값도 싼데 튼튼하기까지 하다고? 전투로 돌려!' 너무도 우월한 성능을 감추지 못한 탓에 싼값에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것이 바로 건설로봇의 인생입니다. 적이 쳐들어왔을 때 병력으로 차출되거나 전쟁터 한 가운데서 건물을 짓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때로는 해병과 함께 적진으로 돌격기도 하고, 심지어 코 앞에 저글링이나 광전사가 있는데도 맞아가며 벙커를 짓기도 합니다. 더 서러운 것은 이렇게 고생하며 지은 벙커에 들어갈 수도 없다는 것이죠. 오히려 벙커를 위한 ‘고기방패’가 되지나 않으면 다행입니다. 이쯤 되면 몸이 피곤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요단강물이 눈 앞에서 넘실대는 수준입니다.
아아, 건설로봇이 국군 전통의 격언만 알았다면 이런 비참한 꼴을 당하진 않았을 텐데요. 오늘도 코프룰루 섹터 어딘가에서 스러져 갈 건설로봇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 업무상 실수는 웃음으로 넘겨라(?), <마비노기> ‘퍼거스’
에린에서 전해지는 무기파괴자(?)의 이야기를 아시나요? <마비노기> 퍼거스는 수리를 담당하는 대장장이 주제에 수리 실패로 유명한 NPC입니다.
이쯤 되면 대장장이로서의 생활은 끝장일 것 같죠? 그런데 이 친구, 생각보다 인기가 좋습니다. 유저들의 애증이 담긴 수많은 UCC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아예 <마비노기> 시리즈의 상징이 돼 <마비노기 영웅전>과 <마비노기 듀얼>에도 출연하죠. <마비노기>의 마스코트인 ‘나오’도 하지 못한 3관왕 달성입니다.
물론 퍼거스가 처음부터 이렇게 인기인(?)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귀한 무기를 깨트렸다는 죄목 때문에 유저들의 증오를 한 몸에 받았죠. NPC를 때릴 수 있는 버그가 발생했을 때 가장 많이 유저들에게 공격 당했을 정도로요.
허나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퍼거스는 떳떳합니다. 엄청 비싼 무기가 실패했더라도 '허허' 웃으며 능청스럽게 수리 실패 사실을 고했죠. 때로는 도구를 탓하며, 때로는 영롱한 달빛을 탓하며, 때로는 너무 운이 좋아 자신의 운까지 빼앗아 간 유저를 탓하기도 하면서요.
처음에는 기가 막혔던 유저들이었지만 <마비노기> 서비스가 두 자릿수에 이르자 점점 그의 마성(?)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웃으며 퍼거스의 수리 실패 경험을 이야기하고, 또 퍼거스를 각종 2차 창작에 써먹을 정도로요. 모두 퍼거스의 해맑은(?) 웃음 덕분입니다.
역시 업무 실력이 별로이어도 넉살만 좋으면 사람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군요.
■ 뒤처리는 철저하게, <파이널 판타지 7> ‘세피로스’
<파이널 판타지 7>의 세피로스를 기억하시나요? 신라 컴퍼니 굴지의 솔저이자,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와 신문에 나오는 유명인입니다. 일반인, 아니 다른 솔저와도 격을 달리하는 강함, 그리고 멋들어진 외모까지. 말 그대로 영웅 캐릭터라는 말이 모자라지 않죠.
이런 그가 어느 날 사춘기(?)가 다가왔나 봅니다. 갑자기 출생의 비밀을 미친 듯이 파헤치더니, 급기야 신세계의 신(…)이 되겠다는 야심까지 품고 맙니다. 뭐, 좋아요. 실제로 세피로스는 정말 특별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캐릭터였고, 그의 실력 또한 평범한 이들은 상대조차 되지 않았으니까요. 이렇게 잘난 사람이 신이 되겠다는데 이것을 마냥 중2병(?)으로 매도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근데 이 친구. 자기 실력을 너무 과신했던 것인지 끝마무리가 영 허술합니다. 그리고 허술한 끝마무리는 수많은 신세계의 신 지망생들에게 패배의 상징이나 다름없죠.
니블헤임에서 일개 일반병사인 클라우드에게 한 방 먹은 것이야 그가 예상치 못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그 뒤의 일 처리도 깔끔했던 것은 아니죠. 아무리 그가 클라우드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더라도 다 사용했으면 깔끔하게 청소했어야죠. 괜히 폼만 잡고 가버리니 나중에 부활한 클라우드에게 또다시 발목을 잡혀버리죠.
더 비참한 것은 이렇게 발목 잡힐 때의 모습이 신라 컴퍼니 시절의 멋들어진 검은 코트가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상한’ 센스의 복장이라는 것이죠. 설상가상으로 최종보스전의 세피로스는 이전까지의 ‘포스’와 달리, 몇 턴 만에 요단강을 건너는 허약한 모습. 허술한 뒷마무리 때문에 ‘흑역사’만 양산하는 세피로스입니다.
클라우드가 하찮다고 무시하지 않고 확실히 뒷마무리 했다면 자신의 목적도 이루고 팬들에겐 솔져 시절의 멋진 모습만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누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