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모든 실패가 성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며 수백, 수천 번의 실패를 하지만 이를 성공으로 바꾸지 못한다. 터틀크림 박선용 대표는 이를 이야기하며 실패가 아니라 실패에 대한 반성이야 말로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했다.
개발자들의 성공을 위해 인디개발자 4인이 NDC에 모였다. 너무도 참신한(?) 게임을 만들어 재미를 놓친 터틀크림 박선용 대표, 개발의 재미만 추구하다가 유저의 재미를 잃은 노븐 김동현 CCO, 주변 요구만 들어주다가 프로젝트를 폭파시킨 골드로쉬 김현석 대표, 그리고 너무도 민주적인 개발과정 때문에 프로젝트를 엎은 도톰치게임즈 김현석 대표까지. 4명의 솔직담백한 ‘개발 흑역사’를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너무 특이했나? 장르 문법까지 파괴한 <먹이주기 디펜스>
터틀크림 박선용 대표는 그가 과거 개발했던 <먹이주기 디펜스>의 실패 사례를 이야기했다. <먹이주기 디펜스>는 디펜스 게임으로서는 몰려오는 유닛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중 특정 유닛을 살려 목적지까지 보내기도 해야 하는 작품이었다. 왜 디펜스 게임은 모든 적을 처치해야 할까라는 의문에서 나온 탄생한 작품이었다.
콘셉트도 근사했다. 목적지에는 커다란 알이 있고 유저는 몰려드는(?) 영양소 중 특정 영양소만 살려 알에게 보내야 한다. 미션을 얼마나 훌륭하게 성공시켰느냐에 따라 알에서 부화하는 몬스터의 강함도 달라지고, 이렇게 부화시킨 몬스터는 다음 미션부터 타워로 활용되었다.
박선용 대표는 여기에 조금 더 직관성을 살리기 위해 영양소와 알, 타워의 3개의 속성을 부여해 서로 물고 물리는 상성을 만들었다. 파란색 영양소를 살리려면 파란색 영양소에 약한 붉은색 타워를 건설하는 식이다.
허나 막상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나니 밸런스를 맞추기 너무 어려웠다. 타워디펜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타워도 강해지고 적도 많이 등장하는 장르다. 그런데 여기에 특정 몬스터를 살려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되자 도저히 밸런스를 맞출 수 없었다. 나중에는 미션 목적을 위해 자신이 지은 타워를 부수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일반적으로 타워디펜스 유저들은 극도로 효율을 추구한다. 애초에 타워디펜스라는 장르가 최소한의 자원을 이용해 최적의 방어진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발전되었기 떄문이다. 이런 장르의 유저들에게 목표를 위해 내 타워를 부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재미였다.
박선용 대표는 <먹이주기 디펜스>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참신함의 덫’에 대해 이야기했다. 개발자라면 누구나 남들은 시도하지 않는 참신한 무언가를 시도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것이 과해 기존 장르의 문법을 파괴하면 유저들은 참신함 대신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이미 있던 장르를 조금씩만 바꾸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기존 장르의 문법을 부수며 참신함을 시도하는 방법도 있다. 아예 유저들이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이 시도를 위해서는 기존 장르 게임을 만드는 것 이상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 개발이 즐거운 게임과 플레이가 즐거운 게임은 다르다
노븐 김동현 CCO는 개발의 즐거움에 빠져 플레이의 즐거움을 놓쳤던 사례를 이야기했다. 김동현 CCO는 스마트폰 붐이 일어나던 시절, 화면을 터치해 돌아다니는 벌레를 잡는 게임을 만든 적이 있었다.
이러한 장르는 이미 외국은 물론 국내에서 많이 존재했었다. 때문에 김동현 CCO는 여기에 자신만의 요소를 더했다. 바로 유저의 패턴을 학습해 점점 회피 효율이 높아지는 인공지능을 더한 것이다. 인공지능은 유저의 반응 속도, 터치 패턴 등을 파악해 점점 회피 패턴을 늘려갔다. 인공지능의 성능이 올라갈 때마다 개발의 즐거움도 배로 뛰었다.
김동현 CCO는 이를 통해 유저가 몬스터에 약이 올라 몬스터를 보다 잘 잡기 위해 고민하기를 원했다. 개발자가 만든 인공지능과 유저의 수싸움이 목표였다. 하지만 막상 프로토타입이 나오니 플레이 한 사람 모두 게임이 너무 어려워 포기하고 말았다.
그 때 김동현 CCO는 과거 시드 마이어가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개발자는 유저에게 시련을 주는 존재다. 하지만 그 시련은 항상 유저가 이길 수 있는 시련이어야 한다” 김동현 CCO의 인공지능은 유저를 난처하게 하는 시련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정도는 없었다. 인공지능은 끝없이 똑똑해졌고 유저는 이를 이기지 못해 게임에서 떨어져 나갔다. 게임을 해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가 만든 인공지능은 유저들이 이런 장르에서 기대했던 것과 정 반대의 경험만을 제공했다. 그동안 출시된 이런 방식의 게임은 모두 화면에 몬스터가 쏟아지고 유저는 빨리 터치해 이들을 처치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몬스터 인공지능이 너무 똑똑하다 보니 무쌍(?)을 펼치기는커녕, 유저 대부분이 몬스터에게 말라 죽었다. 앞서 박선용 대표가 말했던 장르 문법의 파괴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학습형 인공지능은 무용지물인 것일까? 김동현 CCO는 이러한 물음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실제로 <레프트 포 데드>나 <철권> 시리즈처럼 적절한 인공지능으로 게임의 긴장감을 유지한 게임도 많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긴장감이 넘지 못할 시련이 되지 않게끔 제어하는 장치다.
■ 사공이 많으니 게임이 폭파! 사공은 계약서 도장 찍은 사공만 진짜다
골드로쉬의 김현석 대표는 과거 그가 ‘직장인’이던 시절의 사례를 이야기했다. 과거 그가 일했던 회사는 게임개발이 아니라 아트 외주나 CS 등으로 먹고 살던 회사였다. 나중에 여유가 생겨 게임개발을 시도하려 조직까지 꾸렸지만 임원진의 반대로 무산됐다. 회사가 그동안 했던 일은 2 ~ 3개월이면 수익이 나왔는데, 게임 개발은 최소 연 단위로 투자만 계속 해야 하니 수익성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런 환경에서 개발팀의 지상과제는 최대한 빨리 성과를 보여 ‘게임개발도 할만 합니다’라는 것을 임원진에게 어필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한 개발사가 그가 일하던 회사에 요상한 게임 기획서 하나를 보여줬다. 한 게임 안에 리듬게임과 스포츠, 격투, 농장 경영, 연애 등이 모두 모여있는 게임이었다. 이 회사는 이 기획서를 내밀며 3개월이면 게임 만들 수 있으니 30억 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상식적으로 말도 되지 않는 요구였지만 임원진은 혹했다. 다행히 그 개발사와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김 대표가 있던 개발조직에게 이런 게임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주문이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이사진을 설득해, 그나마 빨리 만들 수 있는 연애 시뮬레이션을 먼저 개발하겠다고 제안했다.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회사 돈 쓰기 싫었던 이사진은 중국인 투자자를 찾아왔다. 투자자가 요구한 것은 중국에 맞춘 화풍과 연애 시뮬레이션 안에 ‘PVP와 오토’(…) 추가, 그리고 VIP 방식 도입이었다. 돈이 왕이라고 개발진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것을 다 추가했다. 그런데 투자자가 갑자기 투자를 포기했다. 대만에서 나온 미소녀 옷갈아입기 게임을 보곤 다른 회사에서 연예 시뮬레이션이 이미 나왔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
임원진은 다른 투자자를 찾았다. 이번 투자자는 대만에서 나온 그 게임을 그대로 배끼라고 요구했다. 개발진은 그 말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존심을 살리고자 그런 요구가 없을 다른 투자자를 찾았다.
다시 3명의 투자자가 왔다. 한 명은 게임에 GPS 연동 기능을 넣으면 투자하겠다고 말했고 다른 한 명은 옷 갈아 입히기 파트에 쇼핑몰 연동 기능을 넣으면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한 명은 자신들이 판권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의 등장인물과 스토리를 적용시키면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개발진은 이들의 요구를 다 받아들이곤 경매를 붙였다. 경매는 쇼핑몰 요구했던 투자자가 개발비의 10배를 약속하며 끝났다. 대박이었다.
그런데 한 달 뒤. 갑자기 포털 사이트 뉴스에 그들의 투자자가 게임사업에서 철수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확인해보니 한국 지사 직원은 이미 모두 잘려 있었다. 김 대표는 다시 투자자를 잃었다. 그의 손에 남은 것은 그동안 개발한 연예시뮬레이션 + 옷 갈아 입히기 + PVP + 오토 + 중국선호 이미지 + 쇼핑몰 연동 + 뽑기 + VIP 시스템라는 ‘괴작’ 뿐. 결국 그 프로젝트는 그렇게 보류됐다.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김동현 대표는 너무도 많았던 사공을 이야기했다. 실제로 이 게임 하나 만드는데만 하더라도 개발진 외에 게임을 모르는 임원진, 사업을 위한 개발 요청, (수많은) 투자자의 요청, 개발 도중 투자처 변경, 투자자나 퍼블리셔의 내부사정, 시장상황 등이 영향을 줬다. 김 대표의 솔직한 마음으로는 쓸데없는(?) 자존심과 개발철학도 프로젝트 드롭에 한몫 했던 것 같다.
김 대표는 이 사례를 이야기하며 프로젝트를 시작할 떄는 항상 시장 기회나 수익보다는 무엇보다 프로젝트의 생존을 염두에 두라고 조언했다. 특히 개발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계약’이다. 진정한 투자자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 나타난다.
■ 모두가 책임자면 아무도 책임자가 아니다
도톰치게임즈의 장석규 대표는 과거 그가 처음으로 인디에 도전했던 <포춘카드 온라인>의 사례를 이야기했다. 때는 온라인게임이 막 태동되던 2001년. 장석규 대표는 지인 5 ~ 7명과 모여 온라인 SRPG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당시에는 제목에 ‘온라인’만 있으면 성공하던 시절이었고 SRPG는 그가 좋아하던 장르였다.
장 대표에겐 SRPG의 온라인화라는 것 외에도 꿈이 있었다. 그것은 이렇게 지인끼리 만든 작품을 성공시켜 팀 단위로 대형 게임사에 들어가는 것. 이를 위해 그와 동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개발을 시작했다. 개발비를 아끼기 위해 온라인으로 만나 자료와 의견을 교환했다. 생계는 다들 각자 알아서 해결했다.
시장은 너무 어려웠다. 당시는 지금처럼 오픈마켓도 없었고 당연히 결제 모듈이나 서버도 알아서 만들어야 했다. 지금이야 게임엔진도 무료가 넘친다지만 그 때는 어지간한 돈이 없다면 자체 엔진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였다. 더군다나 개발을 시작한 지 2년정도 지나자 온라인게임 시장에는 게임도 많아지고 대기업도 많아졌다. 지금의 모바일 시장처럼 마케팅 없이는 뜰 수 없는 시대였다.
설상가상으로 팀의 구성도 탄탄하진 못했다. 무엇보다 리더가 없었다. 너무(?) 민주적인 환경에서 개발하다 보니 시스템은 절조 없이 늘어났고 개발방향은 항상 모호했다. 여기에 핵심 개발진은 회사 생활과 개발을 겸하다 보니 개발 효율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까지 이러니 개발진은 생계를 위해 프로젝트를 포기하곤 뿔뿔이 흩어졌다.
장석규 대표는 그 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3가지 교훈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온라인 개발을 선택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온라인 상에서 의견을 나누고 데이터를 교환하는 것은 직접 만나서 일을 진행하는 것의 배 이상으로 시간을 소모한다. 의사소통이란 단순 글이 아닌 목소리와 표정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리더의 부제다. 지인 기반으로 만들어졌던 팀은 확실한 리더가 없었고 이는 개발일정이나 개발방향이 관리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장 대표는 이러한 아쉬움을 강조하며 개발팀이 있다면 누군가 하나는 꼭 총대를 매 리더가 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장 대표의 이 시도는 전혀 의미가 없었을까? 그것은 아니다. 장 대표가 만들고 있는 <포춘> 시리즈는 당시의 리소스를 통해 탄생할 수 있었고, 장 대표 본인도 당시엔 그림 밖에 모르는 원화가였지만 2년의 개발 덕에 UI나 웹디자인 등의 지식을 넓힐 수 있었다. 이 자산은 훗날 그로 하여금 다양한 경험을 쌓게 했고 지금의 인디개발자 장석규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