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타이밍도 안 맞고, 정책의 효용 검증도 없다.”, “쇠퇴기가 아니라고? 지표와 현실은 다르다.”
2일 국회에서 열린 ‘위기의 게임산업, 대안은 있는가?’ 토론회는 여러모로 다른 국회의원 주최 토론회와는 다른 모양새였습니다. 학계나 업계 등 다양한 토론자들이 작심한 듯 정부 정책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죠. 점잖게 돌려 말하거나 겉껍질만 핥았던 기존의 국회 토론회와는 여러모로 다른 모양새였습니다.
디스이즈게임에서는 이날 토론회에서 오간 솔직담백한 발언들을 정리했습니다. 토론회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한 핵심 발언들만 모았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위정현 교수 “시대착오적인 정부정책, 게임산업 위기 만들었다”
중앙대학교 위정현 교수는 발제에서 작정한 듯 정부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한국 게임산업이 쇠퇴한 것에 대해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뒤늦은 정책 타이밍, 정책 효과를 되짚어 보지 않는 관행, 정보통신진흥원 시절 이후 후퇴하기만 하는 해외진출 지원책 등을 꼽았습니다. 그가 종합한 게임산업 전문가들의 의견을 보면 문화부와 미래부, 복지부의 정책 점수는 100점 만점에 50점을 넘는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입니다.
허나 이러한 것보다 위 교수가 가장 문제시했던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의 그것도 제대로 재현하지 못하는 정책이었습니다.
한국 게임계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 초반. 그 때의 게임산업은 정부가 주도한 인터넷망 확충 정책,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덕에 붐을 일으킨 'PC방' 환경, 그리고 업계가 만든 온라인게임이라는 요소가 한데 녹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위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서로가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지금의 게임산업은 쇠퇴 일로를 걷고 있는데 반해, 정부는 과거만도 못한 정책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미 시장은 성숙기가 끝나고 점점 시들고 있는데, 정부 정책의 내용은 성장기, 성숙기였던 예전과 똑같다는 것이 그의 지적입니다.
이렇게 시장 상황과 정책이 다르니 이전에 만들어졌던 생태계도 점점 무너지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에 맞장구 쳐 줄 환경도, 요인도 없어졌기 때문이죠.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만도 못한 쇠퇴입니다.
위정현 교수는 이런 정부 정책일 비판하며, 과거 ‘게임산업개발원’과 같은 게임 전담 부처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일관성 있는 정책, 시의성 있는 정책을 위해서는 지금처럼 게임이 1/N이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 문화부·미래부 “쇠퇴기는 없다. 다만 플랫폼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
문화부 최성희 과장은 위정현 교수와는 다른 관점으로 현재의 게임산업을 이야기했습니다. 과거 패키지게임에서 온라인게임으로 흐름이 바뀌었듯이, 지금 또한 온라인게임에서 모바일게임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을 뿐이라는 설명이죠.
최성희 과장은 이에 대한 근거로 게임산업이 2013년 -0.3%에서 2014년 2.6%의 성장률을 보인 것을 들었습니다. 게임산업 종사자 수가 5% 가량 줄어든 것도 시장 쇠퇴가 아닌, 온라인게임보다 개발자가 많이 필요 없는 모바일게임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때문에 문화부의 게임산업 진흥책도 당장의 시장상황을 어떻게 한다기 보다는, 가상현실(VR)과 같은 차세대 플랫폼의 성장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문화부는 차세대 플랫폼의 연구개발과 지원을 위해 미래부와 약 700억 원 상당의 자금을 쏟아 부을 예정입니다.
이외에도 중국보다는 동남아나 남미 등 주목 받지 않은 신규 시장 개척, 추후 다가올 멀티 디바이스 환경에 대응하는 유연한 등급분류 시스템 마련 등 문화부의 정책의 적지 않은 수가 미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게임산업이 쇠퇴기라고 하는데 이는 산업구조가 바뀌며 자연히 생기는 현상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출구전략이 아니라 앞으로 각광받을 새로운 게임플랫폼에 힘을 주는 것입니다.” 문화부 최성희 과장의 생각입니다.
미래부 김정삼 과장 또한 문화부와 같은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자꾸 위기라고만 얘기하면 진짜로 위기가 다가온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존 산업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VR과 같은 차세대 플랫폼을 발굴하고 도전하는 것이다”라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 모바일게임협회 “지표와 현실은 다르다! 이대론 중소기업 다 죽고 대기업만 남는다”
한국모바일게임협회 황성익 회장은 이러한 두 부처의 이야기에 “지표와 현실은 다르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황 회장은 “곧 중소개발사가 다 죽어 양극화라는 단어도 못쓰는 시대가 온다”며 중소 개발사의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어려움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이미 대형 게임사 위주로 재편된 시장, 치솟는 마케팅비, 여기에 중량급 해외 게임사의 등장까지….
하지만 그가 가장 문제시하는 것은 중소 개발사를 엉뚱한 곳으로 안내하는 정부 정책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정부 지원사업의 대부분은 개발사에게 (시장에서 잘나가고 있는) RPG, 액션 RPG만 원합니다.
해외 시장의 성숙으로 더이상 나갈 데를 잃어버린 중소 개발사는 정부의 지원이라도 받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RPG, 액션 RPG를 만듭니다. 그 중 태반은 RPG를 만들다가 체력이 부족해서 쓰러지고, 나머지는 다른 게임과 다르지 않은 작품을 시장에 내 쓰러집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 개발사 입장에서는 정부의 진흥책이 와 닿지 않습니다.
설사 정부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해외에 먹힐만한 타이틀을 만들어도 문제입니다. 중국 등 대형시장은 이미 자국 게임을 보호할 각종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는데 반해, 한국 게임시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국내에서는 국내외 대형 게임사에 치이고, 해외에서는 텃세를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이 황성익 회장의 설명입니다.
“문화부는 동남아나 남미 등을 블루 오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왜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큰 시장(중국)을 포기해야 하냐? 중소 개발사들에겐 미래의 거점시장보다 당장 중국시장에 대한 지원이 더 필요하다.” 미래만 보지 말고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는 황성익 회장의 호소입니다.
■ 복지부 “게임중독 피해가 5조 4천억, 진흥 때문에 청소년 소홀히 하면 안된다”
보건복지부 류양지 과장은 토론회에서 게임 진흥 정책이 강제적 셧다운제나 4대 중독법 등 청소년 보호 정책까지 허물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류 과장은 게임산업 진흥책의 필요성에는 동의한 후, “게임산업의 쇠퇴가 가져다 주는 국가적 손해 못지 않게, 게임중독 등으로 인한 손해도 명백한 국가적 손해다. 실제로 지난해 게임중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5조 4천억 원이다.”라고 말하며 진흥책과 별개로 현재 진행 중인 일부 규제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게임을 도박, 알코올, 마약 등과 함께 관리하는 4대 중독법에 대해서도 “게임업계와의 충돌때문에 아직도 법안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필요한 규제가 있다면 해야 한다. 더군다나 4대 중독법은 게임을 정말 마약처럼 국가기 강압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것도 아니다”라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 한국게임학회 “숨바꼭질도 나라가 규제하나? 문제는 중독이 아니라 복지다”
이러한 복지부의 입장에 대해 한국게임학회 이재홍 학회장은 “게임은 그저 숨바꼭질과 같은 놀이일 뿐이다. 놀이를 모니터로 한다고 규제해야 하나?”라며 반박했습니다.
이재홍 학회장은 오히려 보건복지부에게 게임중독보다 아동·청소년 복지가 문제라며 역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청소년의 과몰입 방지는 가정교육의 역할이 큰데, 지금의 한국 사회는 부모들의 맞벌이 때문에 청소년이 유혹에 빠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재홍 학회장은 이러한 환경을 이야기하며 게임과몰입을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복지가 우선시 되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학회장은 이와 함께 청소년 문제만 일어났다 하면 모든 원인을 게임으로 돌리는 기성세대의 프레임도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인식이 청소년 문제를 악화시키고 게임산업의 위기를 크게 만든다며, 이제는 게임을 유해매체가 아닌 하나의 문화이자 예술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