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게임 개발자에게 있어 마켓은 기회의 땅이자 한계의 벽이기도 하다. 큰 꿈을 품고 게임을 만들어도,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고 다운로드가 발생하지 않으면 결국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다.
메이저 게임과 마찬가지로 인디게임도 마케팅이 생명줄이다. 아니, 오히려 알려지지 않은 곳의 게임인 만큼 메이저 이상으로 마케팅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인 즉슨 어마어마한 돈을 쓰는 큰 기업들과 맞붙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인디게임 스튜디오 드림엑스데브의 정봉재 대표는 이런 상황에 놓인 인디게임 스튜디오들에게 '돈이 없다면 몸을 굴리라'고 강조한다. 한때 몸담았던 넥슨 사업본부와 신규개발본부를 나와 1인 창업에 뛰어든 지 2년. 그는 어떻게 험난한 인디게임 시장에서 살아남았을까? /디스이즈게임 이승운 기자
■ 큰 생각 없이 일단 뛰어들었다
2014년 한창 창업 붐이 일어나던 시절, 많은 이들이 자신의 회사를 차리며 인디게임 시장에 뛰어들었다. 정봉재 대표의 주변에서도 창업을 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왔다. 당시 유행했던 꿀이랑 버터맛 나는 감자칩처럼, 창업은 일종의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정 대표도 창업 붐을 따랐다. 큰 그림이나 비전 없이. 선릉역에 있는 청년창업재단 D.CAMP에서 혼자서 게임 개발에 집중했다. 당시엔 기세 좋게 창업을 했으니 뭔가 만들어야지 하는 의욕에 불탔다.
그렇게 일단 게임 하나를 완성해봤다. 부패 공무원 등을 두들겨 패는 간단한 게임으로, 사회 부조리 등에 지친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열심히 만드는 것과 만든 다음은 별개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구글과 앱스토어에 게임을 올려도 다운로드 수는 하루에 적게는 1~2건, 많아야 10건 안팎이었다. 오픈 마켓에서 추천해주는 게 아닌 이상 유저들에게 노출시키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3개월을 달려서 게임을 완성했으나 큰 돈이 들어가는 마케팅은 그에겐 무리였다. 자본금이 많았던 것도 아니어서, 어떻게든 돈을 들이지 않고 알리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X배너 광고판을 등에 메는 것이었다. 당시 있던 선릉역에서 가까운 디스이즈게임을 먼저 찾아갔다. (☞관련 기사)
현수막을 등에 멘 괴한(?)이 찾아가니 기자들이 모두 뒤집어졌다. 그리고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인터뷰도 써줬다. 다음은 피켓을 메고 NDC 현장을 찾아갔다. 마침 김정주 회장이 강연하는 날이어서 2천명 정도의 사람이 몰려 있었다.
현수막이나 피켓을 등에 메고 사람들을 찾아다닌다는 게, 사실은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회사를 나와서 혼자 사업하던 중이어서 돈이 없었고, 그 상황에서 게임을 알려야 한다는 열망이 부끄러움보다 컸다. 그래서 당당하게 사람들 사이에 뛰어들 수 있었다.
그렇게 '몸으로 때우고' 나니 2천 건의 다운로드가 발생했다. 만약 마케팅 비용을 지불했다면, 2천 건의 다운로드를 내려면 최소 60만, 보통 700만원 정도의 돈이 든다. 그런데 2천 명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게임을 다운로드했다면 그걸로 이미 700만원에 가까운 가치라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 어떻게든 밥은 먹고 다닐 수 있게 됐다
인터뷰, NDC에서의 기행(?) 등으로 게임과 스튜디오가 알려지고 나니,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이 조금씩 뻗어나오기 시작했다. 흔히들 말하는 "밥은 먹고 다니냐?"다. 덕분에 밥은 먹고 다닐 만하게 됐다.
돈이 들어오니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큰 회사에서 투자를 받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회사의 회의에 참석해서 회의록을 작성하는 일당 10만원짜리 아르바이트도 뛰면서 부족한 돈을 마련했다. 그렇게 다음 작품을 준비했다.
지난번에 2천 다운로드를 찍었으니, 이번엔 1만 다운로드가 목표였다. 심플한 퍼즐 게임을 만들고, 처음으로 각 게임 매체에 보도자료를 보내봤다. 게임 제목은 <내 여친이 된장녀 일리 없어>였다. 여자친구에게 36개월 할부로 차를 선물했더니 할부 8개월만에 이별 통보를 받았다는 게임의 배경 스토리를 풀었다.
보도자료를 재미있게 보냈더니 다양한 매체에서 그걸 따로 기사로 다뤘다. SNS에서 화제가 됐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다운로드 1만 건이 떴다. 게임 주인공의 사연이 불쌍하다며 "혹시 개발자 본인 얘기 아니냐"는 사람도 있었다. 결제도 늘었다.
■ 이렇게 된 이상 10만 다운로드로 간다
전작이 1만건을 돌파하고 나니 점점 욕심이 생겼다. 다음 목표는 10만 다운로드였다.
이번에는 섹시한 여성 캐릭터가 나오고, 화면을 터치할수록 하트가 날아다니는 게임을 만들었다. 반쯤 약을 빨고(?) 만들었더니, 출시한 주의 토요일에 이 게임을 다룬 기사가 네이버 메인에 떴다.
기사가 네이버에 노출된 3시간 안에 7천 다운로드가 발생했다. 아무런 마케팅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오픈 초기에 유저들이 찾아서 7천 명이나 다운로드한 것이었다.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도전한 것이 메이저 업체들의 마케팅, CF였다. 당연히 누구를 섭외하거나 할 정도의 돈은 없었다. 그래서 '직접 나갔다'. 자기 얼굴을 내보내고 CF를 찍는 게 부끄러웠지만, 더 부끄러운 건 열심히 만든 게임을 아무도 다운받지 않아서 망하는 거였다.
어떻게든 CF 영상을 만들고 나니 다양한 매체에서 실어줬다. 그랬더니 게임이 순위에 올라가고, 마켓에서도 제대로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 게임은 결국 20만 다운로드를 찍었다.
■ 당장 실패하더라도 어떻게든 버텨라
인디게임 시장에 뛰어들고 나서, 주변의 인디게임 스튜디오를 돌아봤다. 어떤 스튜디오의 게임은 게임이 정말 잘 만들어져서 마케팅 없이도 입소문으로 뜨기도 하고, 어떤 스튜디오의 게임은 게임이 잘 안 나온 게 부끄러워서 주변에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50 다운로드로 접기도 했다.
정 대표는 "게임이 잘 나올 수도, 못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을 만든 사람은 사람들에게 그걸 플레이시킬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재미 없는 게임이라서 안 좋은 피드백을 받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다음 게임의 양분이 된다. 스스로 포기하는 것보다 훨씬 앞으로 가는 길이다.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인데, 생물체가 급속도로 생겨나기 시작한 건 5억년밖에 안 된다. 주식 시장에서도 오랜 행보를 해온 주식이 급등주가 되어 확 오른다. 오랜 시간을 버텨낸 자에게 기회가 오는 것이다. 그건 인디게임 스튜디오도 마찬가지다. 게임이 실패하더라도 계속해서 출시하고, 피드백을 받고, 인력을 찾고, 자본을 수혈받으며 버티면 기회가 반드시 찾아온다.
인디게임이 무너지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개발비도 그렇고, 마케팅 역시 큰 돈이 들어간다. 처음엔 3달간 라면만 먹으며 버티자고 의기투합해도, 정말로 3달간 라면만 먹어보면 다른 얘기가 나온다. 조직이 와해되고 없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그래서 혼자 돈들이지 않고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은 사전예약도 인디게임에게는 무료로 해주는 곳이 많다. 홍보 영상도 직접 찍을 수 있다. 발품을 팔고 사람을 만나며 게임을 알리는 '0원 마케팅'을 하면 된다.
정 대표는 끝으로 "인디게임에 있어 0원 마케팅은 영혼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영혼을 담으면 게임을 세상에 알릴 수 있을 것이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