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이 끝나자 질문이 들어왔다. "오랫동안 <바람의 나라> 팀에 계시는 이유가 뭔가요?" 박웅석 프로젝트 디렉터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만들다보면 정말 제 아이 같아요. 정이 생깁니다. 계속해서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바람의 나라>는 어느새 스무 살 성인이 되었다. 하지만 박웅석 디렉터를 포함하여 <바람의 나라> 개발팀에게는 여전히 좌충우돌 성장기 어린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 어린이가 더 자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 디스이즈게임 장이슬 기자
■ <바람의 나라>, 변화의 순간들
게임은 하나지만 기억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 박웅석 디렉터는 대문 역할을 했던 로그인 화면을 하나씩 보여주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온 <바람의 나라>는 20주년을 맞아 원작자인 김진 작가의 특별 일러스트와 BI를 공개했다.
박웅석 디렉터는 <바람의 나라>를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순간 여섯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부분무료화 도입이었다. 이전의 요금제는 5레벨까지는 무료고 계속 게임을 이용하려면 다달이 이용권을 결제해야 했다. 그래서 캐릭터를 5레벨까지 키우면 새 캐릭터로 옮기면서도 계속 게임을 하는 유저가 많았다고.
"정액제에서 부분무료로 전환하면, 명확하게 어떤 부분을 제공하고 어떤 것을 어떻게 진행을 할지 계획을 세웁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우려가 있었죠. 다행히 성공적으로 정착시켰고, 지금도 이런 방침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꼽은 것은 서버 통합이다. "긍정적인 시그널은 아니죠." 하지만 서버간 인원 격차를 줄이고 모든 유저가 원활하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3D 애니메이션 도입에 대한 반응도 인상깊은 순간으로 꼽았다. 최신의 기술과 트렌드에 맞춰 <바람의 나라>가 시도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제가 이걸 하면서 욕을 진짜 많이 먹었어요. 이게 정말 바람이냐고." 2D 온라인게임의 대표작이니만큼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바였다.
디렉터가 당황한 것은 새 인트로 화면에 대한 유저들의 반응이었다. 유치하고 창피해서 게임을 켤 수가 없다는 항의가 빗발쳤다. 결국 인트로는 교체되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이펙트 등 소소한 곳에서 3D 그래픽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바람의 나라>는 15주년 기념으로 '천인'이라는 새 캐릭터를 만들었다. 천인은 4년 전에 기획한 캐릭터였지만 여러 시도를 하며 개발하다보니 공개가 늦어졌다고.기존에 존재하는 클래스의 특징을 조금씩 섞은 혼합형 캐릭터로, 역시 유저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다섯 번째로 박 디렉터의 기억에 남는 것은 '최장수 상용화 그래픽 MMORPG'로 기네스에 등재된 것이다. 올해로 20주년을 맞고 매년마다 새로 갱신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가 꼽은 것은 1996년 버전 <바람의 나라> 복각 프로젝트였다. <바람의 나라> 현재 팀은 개발 초 데이터를 전부 보관하고 있지 않았다. 여러 곳을 수소문하며 백업 데이터를 찾았지만 결국 과거 게임 잡지와 부록을 찾아보며 처음부터 만들었다고 한다.
"제가 운전하는 택시를 탄 유저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저와 원탁 테이블에서 같이 토론한 분들은 <바람의 나라>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오래 개발을 하다보면 게임의 중심을 잃고 생각에 한계가 옵니다. 너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유저와 같이 성장하며 큰 그림을 함께 그려보면 더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