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아웃>, <크라이시스>, <페르시아의 왕자> 등 인기 게임 음악을 작곡한 작곡가 '이논 주르(Inon Zur)'가 NDC 강연장을 찾았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강연 동안, 이논 주르는 자신이 작업한 음악 샘플을 들려주면서 화려한 PT보다는 청중과 함께 눈과 귀로 듣는 인상 깊은 강연을 펼쳤다.
이논 주르는 위에서 나열한 게임들, 그리고 다양한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독특한 음악을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면서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익숙한데 독창적인 느낌이다.
그는 강연을 통해 ‘독창적인 음악’에 대해 설명했다. 충분한 독창성을 부여 하면서, 청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을 만든 배경들을 들려주었다. 이논 주르가 말하는 독창적인 음악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 디스이즈게임 정혁진 기자
“이번 게임 음악은 가장 독창적으로 만들어주세요.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으로 해주시구요. 단, 부담감은 갖지 마세요.”
물론 나와 작업하는 분들이 저런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많은 업체와 작업을 할 때 되도록 독창적인 작업을 통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과연 ‘독창적인 음악’은 무엇일까? 그러기 위해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 강연을 하다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무대를 나가버린다면 ‘굉장히’ 독창적이겠지. 하지만 이것은 엉뚱한 것이다. 그래서 독창적이라는 목적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독창적이더라도 본래 목적에는 맞아야 하니까.
게임 음악은 당시 상황에 빠져들 수 있는 노래여야 한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그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보는 사이, 음악은 감정 요소를 부여한다. 최상의 게임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물론 너무 특이해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것이 독창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음악은 서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최상의 독창적인 음악은 15~20% 정도가 독창성이 반영되어야 하고 나머지는 평범해야 한다. 음악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 소통하려면 어느 정도 친숙할 수 있는 접합점이 있어야 하니까.
독창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는 새로운 것을 악기로 활용하거나 조합하는 법도 있겠다. 지금부터 작업했던 몇 가지 음성을 예로 들려 드리겠다.
먼저 ‘두두크(duduk, 아르메니아 지방의 악기, 모양이 오보에와 흡사)’를 활용한 음성이다. 약간 색다른 접목이었는데, 메인 작업은 현악기로 했으나 그 위에 두두크를 입혀서 약간 색다른 샘플이 나올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표현한 사례다. 작업 했던 한 콘텐츠 중에 항상 술에 취해 있는 선장의 상황을 반영했던 곡이 있다. 바다괴물로부터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구출하는 상황에 닥쳤고, 선장은 자신을 바다에 던져서 구하고 바다괴물에 자신을 던지는 상황이었다. 보통 이런 때는 커다란 긴박감이 감도는 마이너 코드의 음악이 등장한다. 많은 이들이 예상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접근을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 선장은 옛날 행진곡을 즐겨 들었고 그래서 선장이 바다에 뛰어들 때 조금 신나는, 행진곡 느낌의 음악을 삽입했다. 비극적인 상황에서 주는, 어떻게 보면 선장이 가장 좋아했던 음악이 그 상황에서 나오는 것은 조금 색다른 느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에서는 독창성 있는 음악이 사용되는 경우가 드물다. 나도 할리우드를 경험했지만, 대형 영화를 보면 대부분 90% 이상의 음악작업은 기존에 있던 것을 그대로 쓴다. 조금 더 과감할 필요가 있는데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로 위험을 감수해야겠지. 힘들지만 그래야 한다.
진정으로 독창성 있는 음악작업을 하려면 계속 조사하는 것이 좋다. 정말 의외의 곳, 의외의 소리를. 그런 것들을 가지고 흥미로운 음악을 만들고자 노력해보라. 동시에 플레이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꿔봐야 한다.
지금 들려주는 음성은 활로 기타를 켜 본 소리다. 첫 번째 음성은 오리지널 음성이고, 두 번째는 이를 믹싱한 음성이다. 이 음성은 <폴아웃4>에 나오기도 했다. 약간의 피아노 소리도 가미됐다.
어느 날은 화가 나서 의자를 막 찼던 적이 있는데, 갑자기 그 소리가 조금 독특하게 들렸다. 그래서 이를 소리로 만들어봤다. 줌 플레이어로 녹음했다. 타악기 같지만 타악기가 아닌 시도였다.
다음은 직접 ‘자울’을 통해 부른 음성을 들려주겠다. 맥주를 두, 세잔 하고 녹음했던 것인데 피아노 등과 함께 조금 색다르게 믹싱을 해봤다(웃음).
이런 것들을 활용하면서 기존 악기를 비전통적으로, 아니면 비전통적인 악기를 전통적으로 바꾸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다음은 피아노를 내리칠 때 들리는 음성과 피아노를 긁는 소리와 함께 믹싱했다. <폴아웃4>에 사용됐다.
또 다른 예는, 난 사실 연주를 잘 못하는데 <폴아웃4>에 작업했던 음악 중 오카리나를 활용한 음성이 있다. 초반에 패드로 두드리는 음성이 나오다가 오카리나 소리가 나온다. 전통적인 소리와 인공적인 소리가 안맞는 것 같으면서 미묘하게 맞는다. 이런 것이 위에서 말한 15~20%의 독창성이 될 수 있겠다. 이 외에도 베이스 사운드를 드럼으로 활용하는 등 색다른 시도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번 음성은 활로 연주한 기타에 어코디언 등을 효과로 가공한 음성이다. 역시 <폴아웃4>에 사용됐다. <폴아웃4>는 어려운 게임이었다. 차별화된 다양한 요소를 만들어야 했다. 특히 <폴아웃4>는 게임 중에서 모든 소리에 색다른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여러분 중에는 게임을 위해 최적화된 사운드를 만들어야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독창성도 있어야겠지. 나는 과거 <사이베리아3> 주제곡을 작업할 당시, 오케스트라도 있고 많은 효과들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독창적인 요소를 사용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하나의 ‘언어’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지브리시’라는 언어다. 물론 세상에는 없다. 내가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다. 많은 이들이 들으면 의미는 모르지만 언어로 들리기 때문에 호기심이 유발됐다.
15년 전 게임 음악을 작곡할 때 4명의 가수를 모셨던 적이 있다. 다들 노래를 부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 나는 소리를 질러보라던지, 울어보라던지 발구르기, 소리지르며 눈물을 흘려보라는 등 조금 황당한 주문들을 했다. 물론 이해를 시키기는 했지만. 여기에 클래식 오케스트라를 합성해 조금 색다른 음악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고 싶다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독창성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알아서 소통이 가능한 것이되 그 중에서 일부 색다른 시도를 했을 때 여러분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소통도 하며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고 동시에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시도를 할 수 있으니까.